보고의 가장 좋은 점은 납기가 있다는 것이다. 즉 끝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가 끝났다. 지지난 주말, 티비 예능을 보며 깔깔대면서도 문득문득 한숨을 쉬게 했던, 그리고 지난 주말은 밥만 먹고 일에만 몰두하는 평일보다 워크 앤 발란스가 지켜지지 않게 나를 혹독하게 좀먹었던 보고가 끝났다. 나를 잘 아는 동료나 상사가 이 글을 보았다면, 그렇게까지 과장되게 말할 일이냐며 조금 우습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느끼는 보고에 대한 압박감은 무거웠고, 내가 해내야 할 보고의 퀄리티에 대한 역량의 부족함이 컸다. 보고하는 순간 허공에 뱉어지던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내가 느끼는 그 보고에 대한
소회는 그랬다.
바야흐로 어설프던 신입의 시기를 지나, 연차 좀 된다는 대리급이다. 장단이 알아서 맞춰지고, 손놀림이 알아서 돌아가는 회사 맞춤형이 될 법도 한데, 나는 솔직히도 아직도,어렵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중간에 팀을 바꾸기도 했고, 원래 무엇이든 엉덩이로 해내는 (노력과 시간으로) 조금 우둔한 타입이어서 그렇다. 그런 주제에 욕심은 커서, 그 간극에서 늘 심적으로 시달리는 병약한 타입이다. 이 욕심도 나름 고고하다. 내가 맡은 바는 제대로 탁월하게 아주 멋지게 해내겠다는 욕심이다. 인센티브를 받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 부분은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니고, 그렇게 관심이 크지 않다. 내가 늘 나를 시달리며 몰아치게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서 오는 만족감이다. 이게 영 채워지지 않을 때 느끼는 조급함과 불안함은 상상 초월이다.
시중에는 일을 잘하는 방법, 보고를 잘하는 법, 메일도 잘 쓰는 법도 알려준다. 나 같은 이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문제는 나는 신입사원이 아니라, 그래도 구를 대로 구른 연차 되는 사람이라 내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문제 파악을 잘한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잘하는 것과 항상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다.
쓰다 보니,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일까 봐 또 걱정 이라 TMI로 덧붙이자면, 그래도 이래저래 버티며 대기업 생활을 견뎌내는 중이다. ( 사실, 일 잘 하는 사람은 TMI가 필요 없다. 그 누구도 다 일잘러 인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이 다 좋을 순 없겠지만, 나는 나의 동료와 상사를 존경한다. 유능하며 완전 꼰대도 없다. 배울 점도 많다. 상대적으로 그래서 열등감이 들 때도 많은 것이다.
(이 감정은 고등학교 때부터 왜 떠나지 않는 것인가)
보고 얘기로 돌아가서, 보고를 잘하는 사람은 보고의 목적이 분명하다. Simple is the best라는 말처럼 간결하다. 그 이외의 것은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보조 장치일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때, 가장 설득력이 높을 수밖에 없다. 상사가 시켜서 하는 보고 일지라도, 내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어려운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나의 생각을 담아내려면, 맡은 일에 대한 경험과 부단한 고민이 이전에 먼저 수반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매번 보고가 버거운 나약한 직장인이지만, 내가 자신이 있는 보고는, 입대는 시람들에 대한 무한생성 버전이 만들어내는 짜증이 컸다면, 내가 자신이 없는 보고는 표류하는 배의 선장 같은 막막함이 컸다.
출근이 있으면 퇴근이 있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언젠가 존재하듯, 보고의 가장 좋은 점은 납기가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 파일 제목에 Final을 박을 때의 희열을 모든 직장인들은 알 것이다. 보고의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Follow up 할 사항은 생겨난다. 일은 연속적으로 흘러가기 마련이고 보고는 끝날때는 일단 끝난다. 보고 끝난 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맥주 한 캔 할 때의 그 시원함이란!
아는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찐행복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보고가 내 인생에 남았을까. 명확하고 심플한 일 잘러는 도대체 언제 되는 것인가! 내일 보고 Follow up할 것을 아주 조금 걱정하며, 잠드는 행복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