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처음 떠났던 유럽 패키지여행은 날카로운 추억을 남겼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지에서의 이국의 언어로 들리는 낯선 소리와, 나를 지나쳐가는 무수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한 복판에 서 있을 때, 묘한 해방감을 좋아한다. 나의 첫 해외 자유 여행은 러시아 교환학생 시절 유럽 여행이다. 이탈리아 일주, 서유럽 국가 여행, 핀란드와 발트 3국 여행을 다녔다. 돈 없고, 스마트폰 없던 시절인데 해외에 있어, 나는 "유럽 100배 즐기기" 이런 책도 없었다. 친구들은 유레일 패스로 유럽을 여행 갈 때, 나는 러시아 열차를 타고 저가항공을 타고, 심지어 프랑스/영국은 도버해협을 밤에 배 타고 넘어갔다. 그 당시에도, 유럽에 한국 민박은 존재했고, 유학생활 한식이 그리웠던 나는 한국 민박과, Inn인데 Hotel이라고 명명된 숙소를 번갈아가며 묵었었다. 제대로 된 첫 유럽 자유 여행에서 많은 경험을 했던 건지, 그 뒤로도 나는 늘 어디로나 비행기표만 끊고 주말이면, 휴일이면 즐겨 떠나곤 했었다.
회사를 어느덧 꽤 다닌 나는, 2년 전 가을, 장기 휴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효도 좀 해봐야지! 하는 착한 마음으로 효도 여행을 기획하였다. ( 이것이 얼마나, 쉽게 생각한 여행이었는지는 스페인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 ). 엄마는 주변 친구분들과 동남아, 중국 등은 패키지로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유럽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엄마가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엄마와 유럽여행을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나는 가을날, 코엑스에서 열린 패키지 투어의 산실 같은 박람회로 향하였다. 사실 자유 여행이 편한 나는 엄마와 자유여행을 가도 됐었다. 그런데, 무언가 엄마를 데리고 10일 넘게 내가 재밌게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내가 길을 헤매면 어떡하지'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우게 되면 엄마는 괜찮을까' 등등이다. 더 깊은 속내는, 나도 쉬러 가는 여행인데, 엄마와의 여행에 있어 가이드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겉으로만 효도여행이었던 거다.
아무튼, 나는 업계 2위라는 유럽 패키지여행을 덜컥 계약했고, 스페인/포르투갈 10일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첫 유럽 여행을 떠나는 엄마는, 소녀같이 설레 했다. 예쁜 모자, 나풀나풀 스카프, 지난번 여행에서 사 온 번쩍번쩍 선글라스가 캐리어 속으로 들어갔다. 여기에 엄마는, 밥이 걱정되었는지 햇반, 컵라면, 통조림 반찬 등을 챙겼다. 내가 혼자 여행 갔다면, 절대 챙기지 않을 것들이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꽤 큰 캐리어 두 개를 가지고 XX 투어의 모집장소로 모였다.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인솔자가 있다는 것을. 키 크고 늘씬한 언니(예쁘면 언니다.)는 청순한 외모로, 안내해 주기 시작했다. 자유여행을 수십 번도 더 간 나는, 심드렁했지만, 패키지에서는 말 잘 들어야 한다는 엄마의 충고를 새기며 행동반경을 잘 지키려 노력했다.
스페인에 도착했는데,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내가 할 건 짐 들고 버스 타는 일 밖에 없었다. 외국에 왔는데, 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지방에 온 느낌이랄까. 도착 시간이 밤이라 어두컴컴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바르셀로나 외곽의 한 호텔에 짐을 풀고, 다소 겁먹은 엄마를 데리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외곽이라 그런지 호텔 근처 가게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아, 이런 게 패키지여행의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동트자마자 짐을 싸서, 버스를 탔다. 장장 10일 동안, 나는 매일매일 다른 호텔에서 잤다. 매일같이 그 큰 캐리어를 풀었다 싸고, 다시 푸는 것이 연속인 정처 없는 여행길. 그제야 알았다. 이렇기 때문에 10일 만에 스페인, 포르투갈 이 여정을 다 돌아볼 수 있는 거구나!
[내가 느낀 유럽 패키지 특징]
겨우 한 번 갔다 오고서 느낀, 단편적인 내 감상이지만, 내가 느낀 "어서 와 유럽 패키지는 처음이지, 수학여행 편"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하기와 같이 남긴다.
1. 수학여행이다 : 내리는 곳에 내리고, 모이라는 시간에 제
때 모여야 한다. 다른 건, 가는 명소마다 가이드분이 마이크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는 점이다. 더 많은 것을 속성으로 알아갈 수 있다.
2. 버스: 하루 4~5시간은 평균 탄다. 목베개가 없이 버티기 힘들다. 얼마나 많이 버스를 타는지, 가는 고속도로마다 휴게소는 꼭 한번 들른다. 나는 스페인/포르투갈 투어가 아니라 스페인/포르투갈 휴게소 투어를 한 느낌.
3. 음식 : 다시는 유럽 패키지는 가지 않으리라라고 마음먹게 한 제일 큰 요인. 아니 유럽에 맛있고, 분위기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매일 먹는 건 빵 쪼가리, 한번 특식이라고 먹는 건, 명동에 외국인 대상 음식점에 들른 느낌. 심지어 그곳에서 한국 모든 투어 회사의 여행객들을 만날 수 있음
4. 인간관계 : 어른들은 쉽게 친해지시고, 쉽게 "결혼했어요?"라는 질문을 하심. 서로서로 본인 자식, 며느리 자랑도 이틀 후면 자연스레 봇물이 터짐.
예시 )한 아주머니께서, 본인 아들 XX대학 졸업하여, XX에서 일한다고 자연스레 말씀을 흘림. 우리 엄마도 갑자기 내 대학과, 회사를 밝히기 시작함 ( 엄마 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지만 꿀 먹은 벙어리로 버스 창가에 기댐)
5. 투어 투어 투어 : 모든 투어는 + 비용이 듬, 원래 현지 비용을 알고 있는 나는 속에 불길이 일지만, 자중하라는 엄마의 말에 50%만 참여함, (그래도 세비야에서 본, 플라멩코는 꽤 괜찮았음)
6. 사진 : 엄마는 나를 무척 사랑하지만, 큰 얼굴, 짧은 다리 그대로 현실성에 입각하여 나를 담아줌. 가끔은 얼굴에 역광이 져있고 심지어는 위에서 찍어서 현실보다 피사체를 격하시킴.
사진에 대해서는, 엄마와 쌓인 에피소드가 있다. 스페인 여행 둘째 날 (첫날밤에 도착했으니, 실제로는 첫날) 몬세라트라는 언덕에 있는 수도원에 갔다. 오래된 핸드폰을 가지고 있던 나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갔다. 수도원에 올라가, 엄마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 했는데 손에 짐이 많았던 엄마는 그걸 돌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렌즈는 나갔다. 무려 여행 첫날에!!! 말이다. 순간 화가 난 나는, 하루 종일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했고, 엄마는 낯선 타지에서 하나뿐인 딸의 타박이 서러웠던지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여행 내내, 엄마는 미안했던지 내 오래된 핸드폰으로도 예쁘게 사진 찍어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셨다. 돌아보니, 내가 너무 철없었고, 너무 모질었다. 유럽여행 내내,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동행한 아주머니들 심부름까지 해주는 나를 엄마가 은연중에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매일같이 새벽에 짐을 싸고, 버스를 타는 강행군 속에 엄마가 더 지칠 법도 한데, 그 새벽마다 비타민을 나에게 챙겨주었다. 말만 효도여행이었지, 엄마에 대한 진짜 애정과 배려심은 부족했다.
그렇게 긴 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엄마랑 나랑 한국에서 먹은 첫 끼는 칼칼하고 매운 김치찌개였다. 엄마는 김치찌개를 먹으며 당장 카메라 서비스를 받으라고도 했다. 스페인에서 내내 먹던 딱딱한 빵과 올리브 오일이 맛있지만, 입에 물리다고도 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이 많은 곳인데, 아쉬웠다. 다음에는 정말 효도 여행을 가고 싶다. 엄마가 좋아하는 로마의 휴일의 배경인 로마에도 가고, 바티칸에도 가고 싶다. 이탈리아는 여러 번 가본 곳이라, 내게도 좀 더 수월할 것이다.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도 마셔보고, 저녁에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음악을 즐기며 와인도 마실 것이다. 그러니, 어서 이 코로나 정국이 끝나야 한다. 내가 다시 엄마에게 멋진 유럽 여행을 선물할 수 있게 말이다.
PS. 이탈리아는 엄마와, 스페인은 애인과! 다시 한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