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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치카 Jan 31. 2021

겨울 연가를 알만한 나이   

겨울, 내 마음의 추위도 다 내 것이니까 꼬옥 안아줄 것이다.

  나는 손이 차다. 무심코 내 손을 잡은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손이 왜 이렇게 차냐고, 그러면 웃으면서 기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는 대답한다. 하나는 " 내 맘이 차가운가 보지, 차가운 사람이라 그래" 혹은 " 원래 맘이 따뜻한 사람이 손은 무지 차"라고 말이다. 이렇게 차가운 손 때문에 나는 온도가 떨어지고, 바람이 강해지는 계절 초입에 들어서면 긴장한다. 장갑과 핫팩이 없으면 나기 어려운 계절이 나에게 "겨울"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하와이에 태어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나만 이런 건 아닌 것 같다. 추위, 바람, 길어지는 밤 등 겨울의 기본값은 인간이 생존하기에 좀 더 어려운 조건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보통 겨울은 4계절 중 봄을 만나기 위한 시련의 나날들로 극복하고 견뎌내야 하는 시기로 자주 표현된다. 그래서 나도 은연중 매년 겨울 바라곤 했었다. 패딩 말고 예쁜 코트를 입고 다닐 수 있는 좀 너그러운 겨울이기를, 겨울이 아닌 것처럼 이번 겨울이 지나가기를 하고 말이다. 이런 생각에 자그마하게나 균열이 간 건, 러시아 린마 교수님 의 걱정 어린 이야기에서였다. 내가 겪은 겨울의 러시아는 나에게 너무 춥고 혹독했다. 스타킹을 신고 항상 청바지를 입었다. 모자는 필수였고, 길거리를 걷다 추위로 머리가 아파 다음 블록까지 걷지 못하고 바로 옆 상점에 들어가 몸을 녹이던 추위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선생님은 요즘 너무 따뜻해져서 걱정이라고 하셨다. 예전 러시아는 정말 추웠다고 북극곰은 어떻게 사냐며 걱정하시는 말에 아 북극곰 입장은 그렇겠구나 싶었다. 추워야지 사는 존재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겨울이 겨울 같아야지 생존할 수 있는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콜라는 기호식품일 뿐이다. 북극곰에게는 추위와 빙하가 필요하다.

 사실, 추위가 싫어서 그렇지 겨울과 나의 접점은 꽤 있다. 나는 무려 겨울에 태어났다.(그래서 나는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이라고 시작하는 노래를 좋아한다.) 겨울에는 내 생일이 있고, 일 년에 한 번 전 세계 모든 지구인이 착해진다는 크리스마스도 있다. 새하얀 눈이 오는 정경은, 다음날 출근길의 사투는 망각하고, 매번 나를 행복하게 한다. 추위는 싫지만, 춥고 겨울이 긴 러시아 관련 전공을 하고, 손이 시려 스키장은 잘 못 가지만, 스키를 잘 타는 사람들은 동경한다. 드라마 마니아인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에 겨울연가도 있다. 내가 학창 시절에 한 드라마인데, 바람머리 파마하기 전 고딩 때 배용준이 어린 마음에도 멋있었던 기억이 난다. 극 중 두 배우가 유치하게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눈 사람을 만드는 장면, 엇갈리고 흔들리는 감정들이 새하얀 설원과 내리는 눈으로 낭만성이 극대화 됐었던 장면들이 기억난다. 윤석호 PD님 특유의 감수성과 비극을 좋아하는데, "겨울" 이 주는 배경 때문이랄까 시리즈 중에 아릿한 감정이 제일 잘 묻어나서 좋아한다. 따뜻한 햇살 맞으며 하는 산책도, 내뱉는 내 숨마저 무더운 여름에 바다여행도 좋아하지만, 추운 겨울날 따뜻한 전기요에 앉아 가족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귤 까먹는 아늑함도 좋아한다. 그리고 어둠의 긴 밤은, 외로움이고 고독일 수 있지만 그래서 내 심연에 집중할 수 있고, 깊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 나는 종종 러시아가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해낸 데에는, 긴 겨울이 한몫한 것이 아닐까 싶다는 나만의 추측을 한다.)

 픽사 애니메이션을 참 좋아하는데 그중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를 보고, 어쩐지 사계절로 치면 "겨울이"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영화 속에서 "슬픔이"는 초반 부정적 감정으로 묘사되지만, 영화 끝에 가서는 "슬픔"이 소중한 감정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인생에 항상 "기쁨"만이 가득 찰 수 없고, 항상 기쁠 수 있다면, 그게 과연 "기쁨"으로 느껴질까? 춥고, 바람 부는 겨울 우리는 내 몸의 온도만큼, 내 마음의 온도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와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충실하고 집중할 시간 말이다. 간혹 내리는 눈은 우리 마음을 더 말랑말랑하게 하며, 날카로운 전 애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때로는 너무 춥고 매섭지만, 이 추위가 생존에 필요한 존재들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지내고 만나는 봄은 얼마나 따스하게 느껴지고 반가울 것인가! ‘인사이드 아웃’ 마지막 즈음에 기쁨이가, 슬픔이를 꽈악 안아주는 장면이 있다. 나도 이제 겨울을, 내 마음의 추위도 다 내 것이니까 꼬옥 안아주기로 한다. 내 인생의 소중한 하나의 동반자이다. 핫팩은 쿠팡에서 쟁이고, 장갑은 자주 짝짝이로 잃어버리니 예쁜 가죽 장갑 하나, 막 끼고 다닐 장갑만 든든히 준비해 놓으면 될 뿐이다.

기쁨만큼 슬픔도 소중하다. 의미 없는 존재는 없다. 겨울은 겨울대로 의미가 있다.


 내 마음은, 내 손처럼 어느 나날에는 차갑고, 또 어느 나날에는 내 손과 달리 장작 때는 아랫목처럼 펄펄 끓을 것이다. 모든 나날들에는 모두 저마다의 의미와 때가 있다. 왠 추운 겨울에 유치하게 남이섬까지 가서 눈사람이나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요즘 감성으로는 눈집게로 오리나 하트를 만들것이다.) 헤어지네 마네 눈물 바람을 짓는지, 그럼에도 나의 지나온 나날과, 그 사람의 순탄치 않았던 지난날들까지도 사랑하겠다고 하는 겨울 연가를 알만한 나이가 되었다.


Ps. 그럼,, 사실 충분히 차고 넘치니 문제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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