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이 아닌 영영 사라져버린, 되찾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상실감
몇 년 전부터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나름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요즘 소설 책 한 권을 겨우 읽는다. 그것도 이 독서모임 때문에. 그것 마저 독서모임 일주일 전, 부리나케 읽고, 독후감은 쓰기를 주저하곤 했다. 나름 본인의 나태함과 게으름을 이기고, 써내려간 짧은 단상들을 브런치에도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외롭다. 나이를 먹을 수록, 사는게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이해받을 수도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면 그 외로움의 슬픔이 좀 옅어진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란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 공허하고 삭막한 분위기가 좋다. 각각의 완벽한 타인이, 늦은 밤 한 공간에 모여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연대감을 준다고 할까.
이 소설을 읽으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봤을때와 같은 위로감을 받았다. 상실을 겪는 삶이 나만 겪는 것이 아니구나, 같이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무력해지는 삶은 세상 어디에도 있구나와 같은 것 말이다. 균열 없이 평안해 보이는 삶에도, 또는 그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생각들과 감정의 파고들이 흐르는 것일까. (그러면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영유해 나가는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ㅋㅋ)
처음에는 이 소설이 각각의 단편인 줄 몰랐다.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유기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공간이 동일하고, 인물들의 삶이 보통의 일상과 비슷해서였을까.뭐랄까. 알고보면 바로 코너를 돌면 있는 근처에 사는데 생활패턴이 달라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반대로 혹은 아침 출근길마다 마주치는 정말 얼굴만 아는, 그런 존재들 처럼 느껴졌다. 막, 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매월 그렇듯 이 책도 번갯불 콩구워 먹듯이 읽고 보니, 정확한 인물들의 이름과 지명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한가지, 동네 작은 구멍 가게에 하릴 없이 앉아 '포솔레'스프를 먹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수를 줄이고, 수프를 한스푼 떠먹으면, 헛헛한 속을 뜨끈하게 뎁혀주지 않을까. 결국 그 식당도 사라졌지만...
Ps.
1. 나의 포솔레는 무엇이였을까? 짧지만 포솔레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2. 대부분의 주인공이 40대인데, 육아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육아가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이구나라고 느꼈다.
3. 독서모임의 어떤 분이 '사라진 것들'이란 결국 깊고 진하게 내 마음속에 남은 것이라고 했다. 상실하고 싶지 않은 그 무엇들. 결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끝끝내 기억하고 싶은 그 장소, 그 음식, 그 사람, 그 때의 나.
4. 최근에 2024 서울국제도서전으로 앤드루 포터가 한국에 왔다. 기사를 링크한다. 그도 육아하느라, 참 바빴던 것 같다. 큰 서사가 없이, 오히려 일상의 찰나의 순간을 다뤄줘서 좋았다.
한국서 8년 만에 역주행… 단편은 찰나의 순간을 깊이 파고들어야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