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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네치카 Nov 25. 2020

신부는 안 울어도, 내가 운 명축사

고운 신부의 눈에는 따뜻한 애정이 가득했다. 눈물은 나만의 것으로.

 30대 중반에 어느새 다다른 나에게, 이제 결혼식의 모든 광경은 흔하다. 나를 초대해준 분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몇 번 와 본 결혼식장, 사회자 분만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짓궂은 진행, 신랑 신부만의

소중한 언약식도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이제 나는 심드렁하다. 청첩장을 받으면, 그와 나의 가까움의 척도를

잠시 재단하며 참석 유무와 축의금 비용의 정도를 고심할 뿐이다. 참석하게 된다면, 그 결혼식장에 가본 적이 있는지, 아 밥이 맛있었구나를 곱씹을 뿐.

 

너는 신부고, 나는 하객이다.

 물론 가까운 내 친구의 결혼식은 다르다. (이제 가까운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식을 올렸고, 정말 몇 남지 않았다.) 인생의 남은 여정을 누군가와 걸어가겠다는 이 큰 결심은 어째, 나이 먹을수록 더 어렵다. 그런 것을 알기에

가까운 이의 결혼 결정은 더 마음이 가고, 축복하게 된다. 최근에 내 대학동창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 결혼식을 통보받은 것은 6개월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축사 부탁을 하는 친구에게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평소 말주변에 자신이 있는 나는, 한 번쯤 축사를 꼭 해보고 싶었다. (이러다가 내 가까운 지인이 모두 결혼하여, 축사할 기회가 곧 사라질 것 같다는 것도 나에게 큰 위기감으로 다가왔다.)

 축사를 준비하며, 네이버에 "명축사"를 검색도 해보고 유투버도 열심히 찾아봤다. 신부가 울기도 하고, 친구가 울기도 하였다. 나는 내 친구를 사랑하지만, 눈물은 날 것 같지 않았다. 왜냐면, 거기서 홀로 축사를 읊을 내가 더 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자고로 해학과 유머를 사랑하는 한 민족으로서, 센스 있고 하객 모두 행복한 축사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자신만만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친구의 결혼식이 이주 앞으로 다가왔다. 결혼을 한 절친 중의 한 명이 걱정을 해 주기 시작했다. 결혼식은 인생에 한 번뿐인( 서로가 서로에게는 한 번뿐이다.) 큰 행사이며, 부모님들과 친지들이 참석하는 인륜지대사라는 것이다. 즉, 결혼식 와중에 사고는 있어서는 안 되며, 다소 재미가 없더라도 안정적인 진행이 더 중요하다는 요지였다. 결혼을 한 친구의 조언을 들으니 써 놓은 축사도 없으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유투버 동영상들처럼 감동적인 축사는 할 자신도 없었다. 갑자기 아득해졌다. 아!  나는 지독히 재미없으며, 5분의 시간마저도 역겁같이 느껴지는, 밥 먹는 것을 지연시키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본인만 즐거운 축사로 남아야 하는가.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쉽게 절망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나는 내 사랑하는 친구에게 축사를 명목으로 백화점에서 옷과 친구의 남은 세간살이를 덥석 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양심이, 힘껏 노력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친구의 결혼식을 겨우 3일 앞두고, 벼락치기하듯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감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 축사 주요 포인트 정리]

              1. 처음 만난 날 첫인상 ( 친구의 첫인상의 좋은 점 극대화)

              2. 뉴욕에서의 일화 (사고 쳐도 라면 끓여 준 친구의 관대함 극대화)

              3. 명언 ( 결혼생활에 대한 명언!!!)

              * 이슈 : 결혼식인데, 신랑에 대한 언급은 없음.


일단 위와 같이 정리하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신랑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신랑분을 2D인 사진으로만 뵈어서 3D로 입체적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진실한 자리에서 가벼운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아 고심 중이었다. 또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결혼 생활도 안 해본 내가 어쭙잖게 결혼에 대한 명언을 나열하는 게

우습게 느껴졌고, 그건 주례분의 영역으로 내가 침범하는 것은 상도덕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내 다정한 친구는 축사 BGM을 골라달라고 했다. 아! 축사에도 BGM이 있구나. 친구는 음악만 들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배경음악을 제안했다. 나는 눈물은 뽑을 자신이 없어, 좀 더 밝은 BGM을 요청했다. 친구는 신랑 분과 상의 후 후, 처음보다는 발랄한 BGM은 미술관 옆 동물원 OST인 "과천 가는 길"을 제안했다.  깨끗한 발랄함이 나의 낭랑한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듯했다. '미술관 옆 동물원' 이 신랑분의 인생영화라고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고민이 사라졌다.

3. 명언을 '미술관  동물원' 사랑에 대한 대사로 변경하게 되면, 자연스레 신랑 분과 엮이는 코드가 생기는 것이었다. 비로소 나의 마음에는 안정이 찾아오고, 떨어졌던 자신감은 물오를  올라왔다. 미술관  동물원은 나도 좋아하는 영화였고, 사랑서서히 물들어간다는 대사의 포인트와  친구의 러브스토리와도  어울렸기 때문이다. 컴퓨터 앞에 앉은 나는 일필휘지로 축사를  내려갔고,  자신에게 취했다.

사랑스러움이 영화화 되면 "미술관 옆 동물원"


 그리고 당일, 내 소중한 친구가 새로운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날. 친구가 사준 꼬까옷을 입고 축사를 입으로 되뇌며,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2D로 뵙던 신랑을 3D로 처음 뵈니, 갑자기 떨렸다.  또한 결혼식장에서 나는 하객을 보고 축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뒤를 등지고 신랑 신부를 보며 축사를 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갑자기 멘붕이 왔다. 나는 xx야 하는 편지 형식의 축사가 간지러워 다소 라디오 사연을 읽어주는 DJ 풍의 축사였기 때문이다. 또한 나의 강건한 뒷모습을 모든 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미미하지만 나에겐 거대한 고민도 뒷따랐다. 축가 리허설을 보는데 아로하가 감미롭게 들렸다. 나의 축사는 이대로 묻힐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했고, 나를 다독이며 임무 완수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목적을 변경했다.

 주례 다음 일정으로 대기 중인데, 주례분이 유쾌했다. 떨리고 불안하던 내 마음도 같이 즐거워졌다. 그러면서 이 축사를 하게 된 본연의 목적을 되돌아봤다. 이것은 A+을 받아야 하는 리포트도 아니고, 당월 달성해야 하는 매출 목표도 아니다. 내 사랑하는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하기 위한 자리일 뿐이다. 그러자 마음이 안정되고 담담해졌다.

 

 단상에 올라, 인자한 친구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긴장감에 축사를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마음을 다 잡고, 내 글의 리듬을 타기 시작하자, 감정 표현 추임새도 넣으며 축사를 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는구나! 달성 감에 취해 있을 때, 착하고 착한 내 친구의 편안하고 예쁜 미소가 무언가 감동스러웠다. 내가 키워서 시집보내는 것도 아닌데, 이 감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끝맺음 말에 다다러서는, 떨리는 목소리가 울음으로 터져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친구 얼굴을 봐도 눈에 살짝 보이는 눈물뿐인데, 나는 왜 이렇게 서럽게 울음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오려고 하는가. 부담시럽게. 결국 나는 울음 결에 끝말을 가까스로 남기고 단상을 뛰어내려 왔다. 그 앞에서 엉엉 나만 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밑에 대기 중이시던, 카메라 찍는 분이 웃으며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민망함이 앞섰지만, 어쨌든 남이 잘했다고 하니 차오르는 뿌듯함이란. 나중에 후일담으로 들은 얘긴데, 내가 울 때 맘 여린 하객들도 눈물이 났고,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숨죽여있던 자신감이 고개를 뻣뻣히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진심을 담담히 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었겠어. 나의 축사는 충분히 넘치도록 진심이었고, 진실했으니 ( 진실된 장소였으니까 말이다).  그 마음이 잘 전달되었던 것이다 라며 나 자신을 칭찬하며 내 인생 첫 축사의 임무는 완료되었다. "미션 컴플릿"


 그동안 청첩장을 받았을 때의 나의 태도를 반성해본다. 그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진실된 자리이므로, 축의금 걱정, 밥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말이다. 가장 소중한 순간에 초대된 이로서의 순수한 마음만을 가지고 축하해 주기로. 그 결혼식에 축가나, 축사를 준비해 가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으로, 축하해야겠다.


* 하기는 명문은 아니지만, 나름 뿌듯함을 느낀 내가 사랑하는 친구에게 쓴 축사로, 전문을 공개한다.

  무대용 스크립트이므로, 맞춤법이 다르고 어법이 안맞아도 심심한 이해를 구한다.


라이브 버전과 다소 다르다.


안녕하세요
오늘 더욱 잘생긴 신랑분의 오늘따라 유난히 아름다운 신부 00의 수많은 친구 중에 하나인 000 입니다.
먼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이런 뜻 깊고 아름다운 자리에 진심으로 축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 신랑신부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저는 친구 00을 어언 15년 전 대학교 1학년 때 만났습니다. 당시 차가웠던 공기, 어색한 분위기, 낯선 교정 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물론 저의 친구 00의 애띠던 얼굴도요. 지방에서 왔다는 00은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귀여운 패딩을 입고 있었습니다. 저도 같은 스무살이면서 00이 참 귀엽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얼굴이 참 말갛고 분위기가 단정해서,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 인상이 좋은 사람은 쉽게 잊혀지지 않잖아요. 어떤 이는 첫인상과 달리 실망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만나면 만날수록 더 좋아지기도 하는데요. 00은 만나면 만날수록, 첫인상 그대로 혹은 더 좋아지는, 심지어 가끔은 반하는 친구였습니다.    
 저희는 그렇게 대학교 시절을 같이 때로는 즐겁게 때로는 험난하게 관통해서, 저는 회사로 00은 회사에서 다시 공부하러 미국으로 갑니다. 00을 보고 싶은 마음에, 사실 미국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가 적응을 다하기도 전에 미국을 찾았는데요. 공부하러 간 곳이기에 사실 본인도 힘들고, 어려울 수 있는데 회사생활에 지친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때도 추운 겨울이었는데, 추운 와중에도 뉴욕 이곳 저곳을 저를 끌고 다니면서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노력하더라구요. 하루는 제가 미국까지 가서 아침에 라면을 끓여 먹겠다고 친구 룸메이트의 그릇을 홀랑 태워버리기도 했는데요. 관대한 00은 그 잔해물을 모두 손수 치우며, 괜찮냐고 물어주고 라면을 손수 끓여주었습니다. 화도 낼 법한데,00은 볼멘소리조차 하지 않았어요.   00은 그런 사람입니다. 저는 항상 생각해요. 00은 참 좋은 사람이라고요. 00은 항상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쉽게 화내지 않아요.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도 한결같습니다. 공부에서나, 일에서나, 사랑에서나 항상 진심으로 대하고 성실하게 마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멋진 신랑과 미래를 기약하는 자리에, 이렇게나 신랑신부를 사랑하는 많은 하객들 앞에 지금처럼 서 있는 걸 겁니다.
 지금 나오는 BGM은 여기 계신 신랑분이 골라주셨는데요. 저도 좋아하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의 배경음악입니다. 저는 신랑분을 사실 오늘 처음 직접 뵈요. 그 전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친구에게 들었습니다. 00과 신랑 분이 처음 만나서 지금 이자리에 오기 되기까지 많은 에피소드와 감정의 교류가 있었을 겁니다. 00은 지금 신랑분을 만나면 만날 수록 더 좋아진다고 했어요. 이 얘기, 제가 앞에서 얘기했던 신부의 인상과 동일하지 않나요? 만나면 만날수록,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더 좋아지고 애틋해지는 사람이라니, 이보다 더 완벽한 상대가 서로에게 있을까요?
 미술관 옆 동물원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사랑이란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 가는 것인 줄은 몰랐다구요. 서로에게 서로가 물들어 버리는 일, 미술관을 좋아하는 여자가 동물원을 좋아하는 남자 옆에 서서 함께 인생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약속을 하는 이 장소. 이 장소에 있다는 것이 00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로서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결혼이라는 일 앞에 많은 인생 선배들과 어른들이 이 부부에게 조언과 당부를 해 주실 겁니다. 그래서 친구인 저는 온전히 축하하는 마음만 가득담아 보내려고 합니다. 00아 진심으로 결혼 축하하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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