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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기쁨 Oct 23. 2020

브랜드 [셉틱탱크 septic tank]를 준비하며

 


 안녕하세요. 저는 30살의 패션 디자이너이며 현재 '정화조'라는 의미의 브랜드 '셉틱 탱크(septic tank)'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고, 적당하다면 적당한 3년 반의 회사 생활 동안 저에게 있어 옷이 어떤 의미인지 찾고자 늘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옷에 대한 저의 가치관을 브랜드 활동으로 풀어낼 핵심을 찾게 되어 이른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출발하게 된 저의 브랜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합니다.


 한창 머릿속에서 환경과 옷에 대한 연결고리를 떠올릴 때, 우연히 거래처에서 들은 염색 공장과 정화조에 관련된 대화로 '정화조, 정화조 같은 브랜드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죠.


 패션은 어느 정도의 허영이 존재합니다. 저는 타고나길 허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그간 패션을 업으로 삼으며 멘탈 관리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한 겹이라도 더 포장되는 것을 참기 어려웠죠. 자존감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옷은 너무나도 사랑합니다. 할 수 없게 되면 살아갈 이유가 없을 만큼입니다. 미학적인 것을 추구함과 동시에 그 이상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옷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옷을 사랑하게 된 이유와 대중은 거리가 조금은 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TV를 보다 그런 경험이 있으시죠, 물 부족 국가 혹은 기아 후원광고나, 당장 한국에서도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층 아이들의 사연을 보고 전화기를 드는 일.


 어릴 때부터 제 코가 석자임에도 적은 금액으로 후원을 해오면서 '후원'이나 '기부'의 의미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생할 수 있고 자립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생각하는 '도움의 손길'이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만족을 위한 위선이라 하는 이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돕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혹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 벗고 나서거나 문제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핵심에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가다가 결국 더욱 성장하고 나아지는 , 바로 그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움 자체가 필요하지 않도록 바꾸는 일은 금전적이든 시간이든 어느 누구의, 단체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에게 이런 부분을 건드리는 건 정말이지 겁나고 두려운 부분이었죠. 단순히 친환경 인증을 받은 원단을 사용해서 옷을 만들고, 친환경 브랜드라고 광고하기엔 제조업은 어떤 형태로든 환경에 무리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게 당장의 먹거리를 없애거나 삶에 큰 영향을 주지 않기에 행동하는 법도 잘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모르고 지나쳐왔던 플라스틱 배출법 같은 정보를 주변에서 누군가 알려주면, 그 뒤로는 머릿속에 뭔가 나의 행동을 바꾸는 작은 제어 시스템이 생겨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제조업에서 이런 부분들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제시해준다면, 사람들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겠지요.

또 '좋은' 친환경 제품을 찾아 쓰고 싶어도 선택지가 부족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판매자 전체가 친환경으로 방향성을 틀 때 거대한 변화를 이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지속 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에 대한 국내외 패션산업계의 다양한 연구와 시도들을 보면서, 어떠한 장벽에 부딪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이 일을 준비하며 작은 스타트업이 직면하는 한계들에 부딪혔죠. 조금만 생각의 꼬리를 물면 모두가 도달하게 되는 방법들은 엇비슷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성과 실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패션을 뛰어넘어 모든 제조업이 협업하여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면, 단순 경쟁이 아닌 함께 성장하는 친환경 시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해서 저의 순수하고 뜬구름 같은 아이디어는 검증의 단계가 필요했습니다.

단순히 매체에서 볼 수 있던 정보가 아니라 직접 발로 뛰고 다양한 정보들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일 말이죠.


 우선 다양한 기사와 논문들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대표적인 친환경 브랜드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연구원과 스타트업, 기관, 쓰레기 소각업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단순 일회성 프로젝트나 마케팅이 아닌 '진짜' 몇 년간 이 일에 뛰어든 위인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장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 아득한 일을, 남들은 보지 못하는 기회와 가능성을 가늠하고서 몇 년을 뛰어드는 기업과 사람을 목격했고, 아직도 제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이들 모두가 표면 위로 떠오르도록, 그리고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도록 소개하고 모으며 친환경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일이 브랜드를 진행하며 이루고 싶은 최종적 바람이 되었습니다.


 시작은 패션으로, 나아가 생활에 필요한 많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선택지를 늘려가는 것을 목표로 달려가 보려 합니다. 하나씩 차근히 부딪히고 깨지면서 나름의 설계를 따라가다 보면 좋은 대안을 줄 수 있는 브랜드가 되지 않을까요? 셉틱 탱크의 이름으로 하나둘씩 소개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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