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영 Jan 08. 2018

야누스, 인간실격 그리고 뱅앤올룹슨

세상이란 결국 개인이다

송구영신(送舊迎新) 그리고 야누스(Janus)

2017년 12월 31일.

일 년 중 마지막인 이 날. 우리는 이 날을 의미있게 보내길 원한다. 교회에서는 송구영신(送舊迎新) 예배를 드리며 지나간 한 해동안 감사했던 일들과 반성해야 할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다짐할 것들, 그리고 변함없을 그 가치에 대해 설교를 듣는다. 종각에서는 타종소리를 담기 위한 인파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기도 하고, 동해바다, 지리산 노고단에도 새해 첫 일출을 담기 위한 눈동자들이 모여든다.


사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태양이 떠오르고, 어제 흘러간 바람이 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날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가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달력에 숫자가 바뀌는 것이지만, 그것은 왠지 가슴을 뛰게하고 마음을 새롭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삶의 연속된 선 상에서 큰 변화 없는 하루하루일 뿐임에도 해가 바뀌고 달이 바뀌는 것은 지나간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에도 힘을 실어준다.


1월이라는 것. 한 해의 마지막 날이자 새해를 맞이하는 이 날 목사님의 설교에 가장 먼저 등장한 인물은 공교롭게도 성경 속 인물이 아닌 로마신화 속 '야누스(Janus)'라는 신이였다. 야누스는 로마신화 속 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두개의 얼굴을 앞뒤로 가지고 있다. 고대 로마인들은 문에는 앞뒤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 여겨 이와같이 야누스 신을 형상화 했다. 앞뒤가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문(Door)의 이중성을 뜻한다. 문이라는 것은 같은 의미로 출입구(出入口)로서 밖에서 보면 들어가는 입구(入口)가 되며 동시에 안에서는 밖으로 나가는 출구(出口)가 된다. 끝(Finish)과 동시에 시작(Begin)이 되며, 시작과 동시에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나간 해의 끝과 맞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해의 시작인 1월. 1월을 뜻하는 영어단어 'January' 도 야누스 신을 의미하는 라틴어 'Januarius' 로부터 유래하였다. 그 어느 누구도 해가 바뀌고, 1월이 오는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불가항력한 기점이지만, 일자와 연도의 전환 기점을 통해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고,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다이어트의 결심을, 취업의 결심을, 효도의 결심을 그리고 지난해의 이루지 못한 아쉬움의 반성을 하게 된다. 이러한 주기적인 성찰의 기회는 자아를 잃지 않도록 하는 마치 제도적 장치와 같아서 우리의 삶을 매우 견고하게 유지시켜준다.



인간실격(人間失格)

인생 가운데 '야누스(Janus)의 문'이 비단 해가 바뀌는 1월의 문턱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로 5살이 되는 아들 이레는 3월이 되면 유치원에 가게 될 예정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의 품을 떠나 작은 공동체이자 사회로 들어가는 것이다. 거창하게 의미부여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에겐 살아 온 인생의 수많은 이벤트 중에서 어쩌면 가장 크고 두려운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 문턱을 넘고 나면 분명 조금 더 성장할 것이다.

나의 인생에도 수많은 야누스의 문이 있었다. 입학과 졸업, 연애와 결별, 입대과 전역,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까지.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이벤트는 나에게 이전의 것들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기회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지금껏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자아를 점검할 기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일본 쇼와(昭和) 시대의 대표적인 낭만파 작가 다자이오사무(だざいおさむ)의 소설 [인간실격(人間失格)]에는 자아성찰을 일으키는 삶의 이벤트들 속에서 혼란과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며 스스로를 '인간실격'이라 판정하는 주인공 요조가 등장한다. 이 소설은, 작가인 다자이오사무의 삶 자체가 다섯 차례의 자살시도로 마무리 될 만큼 정상적이지 않고 혼란스러웠던 자아를 투영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있다. 일본 쇼와 시대 자체가 번영 > 전쟁 > 패배 > 재건 > 부흥의 굉장한 과도기로서, 어쩌면 일본역사에서 가장 큰 패배와 동시에 가장 큰 향수의 대상이 되는 시기인 만큼 이 시기의 정착시키지 못한 자아의 시대적 공감을 이루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광대짓'으로 대변되는 소설 속 주인공 요조의 소년기인 '첫번째 수기'에서 그의 모습은 정말 순수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악의 없는 기만으로 사람들의 웃음에 기꺼이 헌신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나의 소년기와도 닮아보였다. 엉뚱한 말로써 친구들을 웃기고, 글로써 선생님을 웃음짓게 만드는... 전형적인 개구장이의 모습이다.  때로는 일부러 넘어지고, 다 알면서도 틀리고, 글을 읽으때면 일부러 빨리 읽거나, 한템포 늦게 읽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폭소를 유발하는.. 하지만 속으로는 다 안다는 듯한 진지함을 숨긴채 말이다. 요조는 타인의 웃음에 대하여 매우 헌신적이었다. 피곤하고 귀찮아도, 타인의 기대(설령 그 기대가 주관적인 판단이라 할지라도)를 결코 저버리지 않고, 기꺼이 응해줬다. 그의 이런 헌신의 이유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부유한 부모님 덕에 어릴 적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고, 삶에서 그가 딱히 갈증을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이 행복했고, 나보단 오히려 남들이 행복하길 바랬다. 타인의 웃음에 목말라하기 시작한 이유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순수함은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게된다. 그것은 그의 '두번째 수기'인 청소년기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세번째 수기'인 청년기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인간의 순수성은 그야말로 자아의 성공적 성찰임과 동시에 무엇에든 쉽게 물들 수 있는 백지상태와도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약함과는 분명 다르다. 만일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정제수(Pure water)가 있는데 여기에 미량의 불순물을 넣는다면 더이상 그것은 정제수로 쓸 수 없다. 액체 상태의 분자구조에 불순물이 개입되면서 성분의 배열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이 얼어 고체상태가 되면 그 위에 불순물이 떨어져도 자신의 분자배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유지할 수 있다. 물론 녹으면 다시 섞이겠지만, 녹지 않도록 유지한다면 물질의 순수한 정체성(Identity)을 지킬 수 있다. 무엇이든지간에 외부적 요소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정체성을 회복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통해 결정(結晶)을 이룰 수가 있다. 그것이 사람이든, 어떤 물건이든, 무형의 존재이든 마찬가지다.



Bang & Olufsen

성공한 기업들은 대부분 자신들만의 독자성(Identity)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애플社(Apple Inc.) 라고 할 수 있다.  애플社는 1976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에 의해 설립된 컴퓨터 회사로 매킨토시로 시작하여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는 환상적인 라인업을 구축하여 현재까지도 Mobile & IT 분야의 트렌드를 이끌어오고 있다.


어려운 시기들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Steve Jobs)라는 천재적이고 괴짜스러운 CEO가 가진 기업의 독자성을 향한 강한 집념이 오늘에 이르렀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에게 영향을 준 여러가지 환경이 있었겠지만, 잡스가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세우는데에 있어서 롤 모델로 삼았다고 까지 이야기하는 브랜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뱅앤올룹슨'이다.


1925년, 피터 뱅(Peter Boas Bang)과 스벤드 올룹슨(Svend Olufsen)에 의해 설립된 뱅앤올룹슨(Bang & Olufsen)은 덴마크의 오디오 전문기업이다. '애플'만큼 대중적인 브랜드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 나름대로의 아이덴티티를 오랜시간 고수하고 있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라디오를 만들기 시작해 오디오로 지경을 넓히면서 이들이 추구했던 바는 다름이 아니라 정직한 음악적 재현(Reproduction)이었다. 다른 오디오 브랜드에서 독특한 이퀼라이저(Equalizer)를 통해 자신만의 음악적 재해석(Reinterpretation)을 하고, 이를 통해 브랜드만의 음색을 추구하는 것에 비하면 참 특징없는게 특징(?)이라 할 만하다. 뱅앤올룹슨은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지키기 위해 제품을 테스트하고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테크니컬한 기준보다는 인지 음향학적인 측면에서 음원이 가진 독창성(Originality)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보여왔다. 패브릭과 아노다이즈드 알루미늄을 두르고 북유럽 특유의 따뜻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톤의 컬러감으로 무장한 뱅앤올룹슨은 디자인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성(Identity)를 드러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폐쇄적인 음악적 고집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학창시절 뱅앤올룹슨을 동경하며, 돈이 없어서 뱅앤올룹슨 헤드폰이 나온 잡지사진을 오려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는 스티브잡스의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실제로 아이폰의 디자인에 대해 발표할 때, 뱅앤올룹슨의 디자인으로 부터 영감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그가 롤 모델로 삼았던 것은 뱅앤올룹슨의 디자인 보다도 그들이 자신의 독자성을 지키기 위해 펼쳐왔던 폐쇄적인 정책이다.


변화에 과감했지만,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 것.
자유를 표방하지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실제로 애플이 그동안 고객들에게 제품을 팔면서 펼쳐왔던 정책들을 보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해서 이러한 부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러한 정책이 놀랍도록 완성도 높은 제품들을 대중에게 선보여왔기 때문이다. 애플 아이팟(iPod)의 이어버드(Earbuds)를 통해 듣는 음원의 기본 이퀼라이저가 클래식에 최적화 되어있는 것도 뱅앤올룹슨의 독자성과 동일한 맥락이다.


종합하자면, 두 기업이 지금껏 보여왔던 모습은 변화와 혁신에 대하여서는 자유로움을 표방하지만, 지켜야할 가치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장벽(Barrier)을 세우면서 까지 고수해 온 결과이며, 그 가치라는 것은 순수 예술적 가치에 근접해있다는 것이다.



마무리

2005년 개봉한 영화 '웰컴투 동막골'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깊은 산중에 있는 외딴 마을은 바깥세상과 교류가 없다보니, 전쟁이 났음에도 알 길이 전혀없는 상태였다.  실제로 그 당시에는 그런 마을들이 존재 했었다고 한다.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깊은 산 속 절에 머무는 것 처럼 말이다. 지금 대통령이 누군지, 버스 요금은 얼마인지, 나는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오지같은 곳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은 채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말해, 피아식별을 할 수 없는 그런 상태와도 같다. 정글에서 피아식별을 할 수 없게 된 동물은 다른 짐승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해와 달,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토록 시간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의 정체성, 나아가 부족과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 외부의 침략과 혹은 유입으로부터 독자성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우리는 매번 새해를 맞이하고, 하루, 한 달의 변화에 대해 무덤덤하지만, 이것들은 우리 일상을 '역사'라고 하는 거대한 연장선상 위에 올려놓으며, 민족의 독자성, 인류의 정체성을 후대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일본 작가 다자이오사무는 그의 소설 [인간실격]을 통해 '세상은 결국 개인이다'는 소회를 밝혔다. 작중 발견할 수 있는 한 인간의, 세상을 향한, 사투와 같았던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

자유와 혁신을 표방한 동시에 폐쇄적으로 가치를 지켜 온 두 기업의 모습.

이 모두가 로마 신화 속 문을 지키는 야누스 신과 같이, 양면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온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아닐까. 그것은 과거를 살아왔고, 지금을 살고있는 나에게 또한 정확히 필요한 모습이라 생각한다.


최근, 회사에서 승진시험을 준비하며 공부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저항하며 괴로워하는 날 돕겠다고, 고참 과장님들이 근처 백화점에 데려간 적이 있다. 맛있는 걸 먹일 요량으로 갔지만 날 사로잡은 곳은 고급 식당이 아닌, 백화점 1층 명품 코너에 위치한 뱅앤올룹슨 매장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쳐 가던 중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이끌려 들어갔고 그곳에서 전자기기답지 않은 스피커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특히 차가울 수 있는 금속의 표면을 가공하여 무광 상태의 고급스러운 마감이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아노다이즈드(Anodized) 공법처리된 알루미늄이라고 했다. 찾아보니, 알루미늄의 표면을 가공하여 산화되는 것으로부터 강한 내성을 가지도록 만든 것이란다. 뱅앤올룹슨은 이 분야에 대해 수준급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 출시되었던 아이폰의 뒷면처럼 이 산화피막은 스크래치에 취약했다. 다만 이것을 약점이 아닌 자연스러운 Aging, 숙성되어가는 멋이라고 매장 직원이 설명했다. 직원의 표현하는 솜씨에 감탄했지만, 지금 새해를 맞이하는 나에게 정확한 말인 것 같다. 지켜야 할 나만의 순수한 가치를 고수하며 동시에 흘려 보낼만한 것들은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것. 이 모든 것이 새해를 맞이하는, 또 지혜롭게 나이들어가는 방법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산타클로스에 대한 과학적(?) 접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