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주영 Mar 04. 2021

의전(儀典, Protocol)이란

바른 경영과 혁신은 반드시 의전을 없애야 가능한 것일까?

의전은 나쁜 것?

최근 회사 내 바른경영과 관련하여 불필요한 의전을 줄여야 한다는 등의 의견들이 내비쳐지고 있다. '혁신(革新)'이라는 왠지 좋아보이는 이 단어를 필두로 하여 그동안의 의전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고 평가하는 말들이 많았다. 익명 소셜 네트워크 중의 하나인 블라인드(Blind)에서는 의전을 중요시하는 건 소위 우리사회의 꼰대층이 되었다는 것처럼 치부되었다. 이들이 말하는 의전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점심식사 혹은 회식자리에서 입사 순으로 막내들이 해왔던 허드렛일 정도로 여긴게 아닐까. 그러나 의전이란 반드시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 조금 의문이 든다.


나도 입사 초기에 선배들의 그런 분주한 움직임들을 보며 의전이란 불필요하고 없애야 하는 허례허식같은 것이라 여겼다. 치기어린 마음도 없지 않았겠으나, 그런 과도한 의전은 소위 윗사람 기분 맞춰서 알랑방구 뀌기 위한 준비동작 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였을 때에도 후배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을 하지마라고 말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관습들을 하나씩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모든 의전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요즘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가 매체 속에서 화려한 의전을 접하는 경우는 언제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국가의 원수, 즉 대통령급의 행사 속 임을 알 수 있다. 경호원들의 날카로운 모습과 수행원들의 발빠른 분주함 속에 물흐르듯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대통령과 국빈의 모습을 보며 불편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언젠가 우리 회사 빌딩 앞 을지로에도 갑자기 모든 신호가 통제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십수대의 싸이카(순찰용 모터사이클)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곧이어 경광등을 켠 시커먼 승용차들이 빠른 속도로 줄지어 지나갔고 사거리의 신호등은 정상화 되어 멈춰있던 교통흐름이 재개된 바 있다. 잘 몰랐지만, 옆에 있던 선배 말로는 대통령 일행이 지나간 것일거라고 했다. 이것은 과도한 의전일까? 대통령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VIP 지나가실 때까지 일반 국민들은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난 잘 모르겠으나, 대통령이라는 직책으로 인한 대테러방침으로 안전의 측면을 고려한 면도 있을지 모르고, 해야할 일이 많은 관직인 만큼 시간을 절약하는 것이 국익에 반하지 않는 것이라서 일수도 있겠다. 난 후자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왜냐하면 멈추지 않는다고 해도 동선이 그렇게 대중에 노출되는 것이 오히려 안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대테러 위협이 전혀없을 법한 우리 회사의 CEO가 출입할 때에도 로비와 임원실에서는 엘리베이터와 또 차량을 항시 대기시켜놓는 것으로 보아 여러모로 이익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돌아돌아 생각해봤다.


2019년 미국 트럼프대통령 방한 당시 경호행렬 (출처 : 뉴스핌)


아무튼 의전이라는 것은 단편적으로 보면 불편하고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것이 없어지기는 커녕 이것을 전담하는 비서조직을 둘정도로 이것은 조직의 이익에 어떤 식으로나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뉴스 기사에서 사거리에 'X자형 횡단보도'를 두고 운전자들이 불필요하고 불편하다고 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절약과 효율을 중시하는 우리 아버지께서도 운전중에 늘 신호등이 너무 자주 있거나, 신호가 짧게 되어서 한번에 통과하지 못하실 때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이건 낭비나 다름없다.'며 탁상행정을 질타하시곤 했는데 이런 X자형 횡단보도는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정지선에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아주 나쁜 행정적 조치인 셈이다. 그러나 보행자의 기준에서 볼 때 'X자형 횡단보도'는 우회전 차량과의 접촉사고율을 낮추며 두 번의 신호에 걸쳐 건너가야 할 것을 한번에 건널 수 있는 아주 안전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도로 위에 모든 교통체계는 안전과 효율을 고려하여 오랫동안 그리고 많은 고민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기 때문에 운전자들은 그것을 신뢰하고 규정에 따라야만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만일 어떤 운전자가 나는 신호를 지키는 것이 불편하고 답답하다고 해서 지키지 않는다면 곧바로 사고가 날 것이다. 따라서 신호와 규정속도, 일방통행, 도로교통 표지판 등은 운전자가 반드시 숙지하고 따라주어야 하는 것이다. 의전이란 이렇듯 동시에 벌어지는 많은 동선들이 질서정연함 속에 막힘없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신호등과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신호등이 아무리 이렇게 좋은 것이라고 해도 고속도로에서는 필요없는 것이다. 고속도로에는 신호등이 아닌 과속단속카메라가 필요하다. 지나친 과속으로 교통사고가 유발되었을 때에는 고속으로 달려야할 차들이 멈추어서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에 맞는 의전은 효과적이나 고려하지 않은 의전의 붙여넣기는 동선을 해치고 효율을 떨어뜨리며 낭비를 유발한다. 우리는 아무리 좋아 보이는 의전이라고 해도 그러한 잘못된 의전과 관행을 찾아 없애는 노력을 해야한다.


용인시 수지구청역 사거리에 설치된 'X자형 횡단보도' (출처:용인시 블로그)


인식의 개선이 필요한 시점

의전 자체에 대한 노력도 해야하지만, 우리는 조직에서 구성원들이 의전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노력도 해야한다. 정말 필요하고 해야하는 일이지만 구성원의 동의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엔 조직의 결집성을 방해하는 요소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전에 관하여 찾아보던 중 외교부 홈페이지에 있는 재미있는 사례를 한 가지 보게되었는데 만찬 테이블에는 꽃보다 과일장식을 두는게 좋은 의전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면 충분히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 수 있는 의전일 수 있겠으나, 요는 꽃의 향기가 음식과 와인의 향을 느끼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리는 방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진다. 사실 예전 수원의 화성행궁을 찾았을 때 효심이 지극하기로 유명했던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진찬연을 차릴 때 음식상에는 생화가 아닌 한지와 비단으로 만든 꽃을 올리도록 하였다는데 같은 이유이다. 이유를 알지 못했다면 이또한 불필요한 허례허식이라 치부했을지 모른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회사에 입사해서 선배들에게 배운 많은 조직문화들이 있지만 왜 해야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채 원래 그렇게 하는 거라는 이유같이 않은 이유로 해온 관습적인 의전이 많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어떤 선배들은 이런 건 왜하는 것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암기과목인줄 알았던 조직생활이 수학 공식 증명하듯 그렇게 이해할 수 있게되니 의전도 진심으로 또 어느 포인트에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수원시에서는 매년 정조대왕 능행차를 비롯하여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 등을 재연하여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출처 : 수원문화재단 홈페이지)

내가 공군에 입대하여 기본 군사훈련을 마치고 진주훈련소에 모든 훈련병이 연병장에 모여 훈련을 무사히 마쳤음을 신고하던 날 굉장히 낯선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누군가 단상에 등장할 때마다 허공에 대포를 쏴대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무도 놀라는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약속된 것이고 안전하다고 판단이 되긴 했는데 도무지 왜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기억으로 저정도 포에 넣는 포탄이면 가격도 상당할 텐데 수십발을 쏴대니 이거 돈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조교에게 물어봤지만, 대통령 21발 장성급은 19발에서 13발까지 급에 따라 발사 수가 달라진다고 알려줄 뿐 그 유래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오래된 그리고 전세계적 공통 의전으로 '예포'라는 것이었다. 사실 원래 전쟁에서 패전국이 더이상 싸울 의지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포에 장전된 남은 탄환을 허공에 소비하는 것에서 유래하여 지금은 국가간에 서로 싸울 마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의지, 곧 동맹국 간의 예로서 보여주는 의전인 셈이다. 그 이후로는 VIP급의 인사 행사시에 운영하여 충성심 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는 의전이라고 한다. 만국 공통 인사법인 악수가 '내 손엔 무기가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라는 의미이듯 군사동맹간에 이루어지는 예포는 실제 탄환이 아닌 공포탄을 쏘는 것을 관례로 한다. 가장 높은 급의 VIP인 대통령(원수)에게는 만국 공통으로 21발의 예포를 쏘아 올림으로 서로간의 동맹의지를 전달한다고 한다. 영어로는 'Royal Salute'라고 하여 우리가 알고있는 스카치 위스키인 "Royal Salute 21"도 여기서 유래했다.


아무튼 요지는 아무리 좋은 의전이라 해도 구성원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일종의 교육이 사전에 이루어진다면, 더이상 의전은 퇴약볕에서 버텨야 하는 지루한 교장선생님 훈화말씀이 아니라 영화 속에서 처럼 숭고한 Royal Salute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조직의 결집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익과 가치를 창출해 낼 것이다.


모든 것이 녹록치 않다. 그러나, 이루어 가기를 희망한다.


성경 속에도 의전이 있었는가?

성경 속에서 의전과 연관지어 내게 떠오르는 장면이 두가지 있다. 주인공은 둘 다 예수님이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수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누가복음 19장의 장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는 길에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서 밟고 가시도록 하며 동시에 소리 높여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현대사회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과도한 의전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레드카펫을 위로 걸어 시상식장에 들어가는 유명 영화배우를 향해 환호를 보내는 일부 극성 팬들의 모습과 비슷해보인다. 이때 이러한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들을 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예수님이 보신 것은 형식적이고 과도한 의전이 아니라 이것을 행하는 자들의 진심이었다.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침묵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도무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이 모습은 없애야하는 불필요한 의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신 제자들의 행동은 충분한 동기부여(Motivation)이 된 그들의 믿음이었다.


다음으로 생각이 난 장면은 최후의 만찬이다. 정확히는 최후의 만찬에 앞서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이다. 발을 씻기시는 것은 많은 의미와 전달하고자 하신 메시지가 그 행위에 있겠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발을 씻기는 행위는 통상적인 의전의 개념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어서 지금 봐도 파격적이며 당시 제자들도 어리둥절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럴 수 없다며 베드로는 강하게 거절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이러한 행위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단지 겉으로 보이는 형식에만 집착했기 때문에 나타낸 반응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유를 설명해주셨고 제자들은 받아들였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의전은 모양새로는 상반된 것이나, 그 마음의 중심을 가치있게 여겼다는 점에서 매우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시각적인 것에 약하다. 그것은 단련할 수 없는 우리의 약점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면을 모르채 시각적인 효과에 노출이 되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오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겉옷을 길바닥에 깔고 소리높여 환영하는 과도한 의전이나, 혹은 예수님 스스로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식전에 닦이시는 상반된 의전 모두 마음의 중심을 보도록 하시는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 마찬가지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앵무새처럼 그저 따라하는 의전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는 의전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The Last Supper - Leonardo Da Vinci


매거진의 이전글 Good timing for assis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