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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Apr 07. 2021

Blue Bottle and Tango

삼청동에서 만난 파란 병 그리고 비누 향 가득한 탱고

Blue Bottle Coffee


코로나19가 우리 삶 속에 들어온지도 어느 덧 일년이 지났다. '코로나'라고 불러야 할지 'COVID'라고 불러야 할지 그 이름조차 생소했던 작년 봄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조금 늦었지만 모두가 적응해가는 분위기이다. 점심 약속을 잡고 당연히 외출하던 습관도 이젠 달라져서 불요불급한 약속이나 모임은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우리 사무실은 오늘 햄버거를 주문했다. 나도 자리에 앉아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한 입, 두 입 베어물다 보니 10분도 되지 않아 금새 해치워 버렸다. 빠른 조리 때문이 아니라 빠른 취식 때문에 Fastfood 인가?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산처럼 불러온 배를 어루만지고 있는데 선배가 산책 다녀오자며 불렀다. 귀찮기도 하고 전날 야근을 한터라 피곤한 탓에 썩 내키진 않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이렇게 사무실에만 있으면 돼지가 된다고 하는 말에 겉옷을 챙기고 따라 나섰다. 


"을지로에서 종로로

 종로 탑골공원 지나 낙원상가로

 인사동을 거쳐 삼청동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앞 블루보틀 카페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 나섰지만 2km를 10분내 주파하려다 보니 이건 산책이 아니라 경보로 걷는 수준이었다. 방금 밥먹고 나왔는데 마스크까지 쓰고 선배가 건네는 말에 대답까지 해야하다보니 내 몸에 산소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왔다. 다행히 산소결핍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가 잠시 머문 블루보틀 카페는 커피 향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들이 고급진 에스프레소 머신들을 줄세워 놓고 쭉쭉 뽑아내길 경쟁하는 요즘, 블루보틀은 갓 볶아낸 원두를 바로 갈아 천천히 드립으로 한 잔씩 내려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차별화를 두고 있다. 친환경적인 인테리어 안에서 바리스타들이 드립커피를 내리는 여유로운 모습은 덤이다. 창립자인 제임스 프리먼은 2002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블루보틀을 시작했으며, 그 이름은 유럽 최초의 카페로 알려진 블루보틀 커피 하우스에서 착안했다.

Zu den blauen Flaschen, (Schlossergassl) coffee house scene


"블루보틀 커피"의 모티브가 된 "블루보틀 커피 하우스"는 게오르크 콜쉬츠키(Georg Kolschitzky)라는 폴란드인에 의해 세워진 카페이다. 콜쉬츠키는 당시 폴란드 군인으로 여러 작전에 참여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주변국들의 언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외모적인 특수성(?)덕에 적군의 감시망을 드나들며 아군에 필요한 역할을 톡톡히 하게된다. 현격한 공은 아니었을 지라도 그의 그런 용기와 헌신에 대하여 종전 후 보상을 받게 되는데, 이때 그가 선택한 것은 바로 적군이 남기고 간 "커피 콩" 이었다. 별볼일 없어 보였던 그 커피 콩들로 콜쉬츠키는 커피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길거리 가판에서 만들어 팔던 것이 나중에는 그의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카페의 시초가 된다. 그 카페의 이름이 "블루보틀"인데에는 많은 설이 있지만, 당시에 집을 표시하기 위해 문에 걸어둔 파란 병 때문에 사람들이 "Blue Bottle Coffee House" 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 브랜드화 된 것이라는 설이 가장 그럴듯 하다. 과거 우리 동네에서도 특정 집을 지칭할 때, "파란 대문집" 혹은 "빨간 지붕" 이라며 번지수 보다는 동네사람들에게 익숙한 모양으로 부르던 것과 비슷한게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여하튼 "Blue Bottle"이라는 브랜드가 유럽에 처음 카페로서 문을 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과 스토리가 있었지만, 창시자인 콜쉬츠키의 삶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성공할 만한 필연적 개연성을 갖고 있진 않아보인다는 평이 있다. 다만, 그가 전쟁시기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위기의 순간

임기응변으로 버텨온 결과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흔적들이 남아 이룬 결과들을 방울 방울 떨어뜨려 모은 한 잔을 입에 머금으며 그의 인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Scent of a Woman


1992년 개봉한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파치노가 연기한 퇴역 군인 슬레이트 중령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괴팍한 인물이다. 그가 잃어 가는 것은 시력뿐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도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어린 학생 찰리는 귀찮고 모기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아르바이트로 슬레이트를 돌보기 위해 왔던 찰리도 그런 그를 대하기가 녹록치 않은 탓에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러나 길지 않았던 그들의 시간 가운데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슬레이트가 찰리의 학교에서 열린 찰리와 친구들의 징계위원회에서 어린 학생의 인생을 보호하고자 담대히 맞서주었던 모습은 개인적으로 정말 가슴 뛰게 멋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슬레이트는 산전수전 다 겪었으며 노련하고 경험 많은 그러나 매우 섬세하고 센서티브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어린 학생 찰리가 가진 순수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노련함과 용기, 그리고 섬세함을 전해주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리고 극 중 아주 짧은 신이지만 그가 '도나'라는 한 여인과의 만남에서 건낸 탱고에 관한 이야기는 철학적이면서도 그가 살아 온 인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고 곁에 있던 찰리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탱고는 실수할게 없어요

 인생과 달리 단순하죠

 탱고는 정말 멋진거에요

 만약 실수를 하면

 스텝이 엉키고, 그게 바로 탱고죠"


그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퇴역 군인이었다. 전쟁의 시기를 살아 온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처한 환경과 상황에 대한 눈치빠른 판단, 임기응변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적응의 흔적이었을 것이다. 거기에서 그가 얻은 교훈이 바로 탱고 철학이다. 스텝이 엉킬 수도 있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실패와 실수를 반복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스텝을 밟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게 탱고이고, 그게 인생이다. 영화를 여러 번 봐도 탱고를 잘 출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인생의 실수와 실패 앞에서 이 장면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Al Pacino 그리고 Gabrielle Anwar (Scent of a Woman, 1992)



비누 향기와 그리스도의 향기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여운이 남았지만 생뚱 맞게도 슬레이트와 도나의 만남을 이어주었던 그 비누향은 어떤 향이었을지에 대해 궁금했다. 그래서 여러모로 수소문해보았으나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불가능이 어디 있겠는가, 집착(?)과 열정으로 결국 "오길비 시스터즈 비누(Ogleby Sisters Soap)"라는 것을 찾아냈다. Amazon같은 여타 온라인 구매사이트에서는 제품을 찾을 수 없었고, Shop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 위치해 있었는데, 문의해보니 홈페이지에서 주문하면 한국까지 배송해 주시겠다고 했다. 체결된 물류대행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주문하고 열흘정도 후에 개인 발송된 국제소포가 도착했다. 소포는 빈틈없이 잘 포장되어 있었지만 겉에서부터 향긋한 비누냄새가 풍겨나왔다. 그리고 포장 안에는 정갈한 나무상자에 작은 캔버스천 주머니에 나뉘어 담긴 비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예쁜 손 편지를 종이비행기 접어 넣어주셨는데 아이들과 펼쳐보며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힐링이 되었다. 겨우 비누 몇 장 구매했을 뿐이지만, 지구반대편에서 날아온 이 선물에는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음을 6살짜리 아이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유럽 최초의 카페인 "Blue Bottle Coffee House"를 연 콜쉬츠키의 인생도, 전쟁을 거쳐 탱고의 스텝까지 이어져 온 슬레이트 중령의 인생도 어쩌면 처음에 계획한 모양대로는 아닐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나름대로의 임기응변과 재치로, 순발력과 때로는 운으로 버텨온 시간들도 그 안에 섞여 있을 것이다. 그 순간들을 감히 폄하할 수 없다. 그것들이 모이고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주었고, 또 누군가에게 향기로움을 선사했다는 데에서는 큰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 비누처럼 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떠한 향기를 남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나의 인생이 저들의 인생과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나 차이라면 그 길을 하나님 뜻에 맡기고 있다는 점이랄까. 그러나 그 와중에도 나의 배부름과 나의 따스함만을 챙기려 든다면 내가 남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악취일 것이다. 꽃의 향기로움이 벌과 나비를 부르듯, 사람의 인생에서 풍겨나는 향기는 풍기는 사람이 아닌 맡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인생이 비록 나의 것 처럼 여겨지나,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 볼 열정이 남아있길 바래본다. 자주 나가보진 못했지만, 한 달에 한 번은 주거환경 개선봉사를 나간다. 시청과 구청을 통해 소개 받은 집을 찾아가서 청소를 하고 도배를 하고 집의 고장난 것들을 고치는 일이다. 대부분은 혼자 사시는 노인분들이 사시는 댁인데, 마치고 나면 몸은 고되지만 언제나 뿌듯하다. 한동안 코로나 여파로 중단되었던 활동이 마침 봄부터 다시 재개되었는데, 이번 달 봉사 날이 되면, 열정과 사랑을 가득 안고 또 부르신 곳으로 달려갈 채비를 해야겠다.


(힐링을 주었던 비누향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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