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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Apr 15. 2024

어느 교수(敎授) 단상

Instructor인가, Facilitator인가?

회사에서 교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직장에서 일을 한지 올해로 12년이 되었다. 현재는 IT부서에서 DBA(DataBase Administrator)라는 업무를 맡다. 그동안 경력의 절반은 IT부서에서, 나머지 절반은 HRD부서에서 업무를 맡았다.


HRD부서에서는 교육과정 기획자로서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를 설계하고, 연수진행자로서 과정을 직접 운영하고, 강사로서 직접 수업도 했었다. 대학에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금융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준비하는 일은 나에게 참 생경한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직접 수업을 준비하고 많은 사람들 앞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는 일은 아무리 해도 쉽사리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본업이 따로 있으면서 교육이 필요할 때 잠시와서 한 두시간씩 강의를 하는 직원들은 보통 사내강사라고 하지만, 나처럼 본업 자체가 수업이고 강의인 직원들에게는 "교수"라는 직책이 부여된다.


보통 "교수(授, Professor)"라고 하면,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치고 연구활동을 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확실히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존경받는 그 교수님들에게는 비교할 수도, 근접할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 회사 조직에서의 "교수"도 맡겨진 역할과 요구되는 자질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회사는 조직이기 때문에 직제규정이라는 내부규정에 의해 직책을 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정하는 "교수"란, "인적자원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연구 등을 수행"하는 직책이다. 기록상으로는 1984년부터 공식적인 교수직책이 연수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존재하였으며, 현재에는 총 6명의 교수가 조직 내에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6명 5명의 교수는 이전부터 회사의 핵심업무라고 있는 금융과 관련된 분야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내가 처음 맡게 나머지 자리는 디지털 분야를 담당하게 되었다.


도대체, 디지털 교수는 왜 필요했던 것일까?

2017년 쯤이었을까, 금융시장에 디지털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의 바람이 불면서 이 조직에도 디지털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에 부합한 임무가 HRD부서에 맡겨졌다. 내가 HRD부서로 발령받아 온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회사 내부적으로는 이를 위한 커리큘럼이나, 교육인프라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외부기관이나 국내외 대학들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일을 중점적으로 했다. 그렇게 3년간 많은 형태의 과정을 통해 직원의 디지털 역량 향상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나아갔으나 디지털/IT 분야가 워낙 광범위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특성탓에 투자한 비용과 시간에 비해 두드러진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너무나 당연한 디지털전환의 대세와는 다르게 조직 내부적으로는 '그래서 우리가 왜 이걸 공부해야하나?'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고, 신기술에 대해 배워봤자 우리 실정과 거리가 멀다는 인식도 많았다. 그래서 내부조직 실정에 맞는 제도화된 디지털 커리큘럼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것을 고민하고 연구할 사람이 필요했다. 이것이 지금의 디지털교수를 만들게 된 대략적인 배경이라 할 수 있다.


actions have consequences


처음부터 내가 그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전혀 아니었으나, 그 자리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적임자로서 첫 단추에 대한 부담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결정에 따른 결과는 혹독했다. 지금까지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맡아도 선임자 혹은 전임자로부터 인수인계도 받고, 그동안 앞서 많은 직원들이 걸어갔던 길에 나만의 창의성을 약간 발휘하면 되는 정도였는데, 이 디지털교수라는 자리는 이 조직에서 전례없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금융기관의 HRD를 담당하는 부서에 연락해 여쭤봤지만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금융권 전체에서도 사실상 없었기 때문에 맨 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충격이 내게 있었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 하지 못했지만, 이때부터 내게 책이란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였다. 정말 매일 퇴근길에 용산역 서점에 들러 관련된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읽고, 매일 공부했다. 본격 수업준비에 들어가면서 부터는 매일 야근도 모자라 퇴근 후 집에서 새벽까지 늘 강의 준비를 했다. 1시간 수업준비를 위해서 내게 필요한 준비시간과 노력은 100배 이상이었다. 내 스스로 모자람을 많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한참 부족했기 때문에, 그렇게 준비하지 않으면 앞에 서기가 부끄러웠던 것 같다. 고작 1시간짜리 강의에 100배는 과장된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 앞에 앉아서 자신의 귀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을 직원들이 100명이라면 이 분들의 1시간을 다 더하면 100시간이라는 가치가 된다. 사실 이 직원들은 연수에 참여하기 위해 최소 하루 이상의 시간을 내어야 했으니, 그 시간의 소중한 가치는 그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하는 것이 충분하기는 커녕 늘 부족하다고 느껴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교수라는 직책을 부여받고 나서부터는 내 역량도 역량이거니와 교수로서의 자질에 대한 고민도 계속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역량은 내가 교수로서 지식전달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능력이니, 끊없이 공부하고 연습하면 성장시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질에 대해서는 단정짓기 어려웠다. 나보다 먼저 교수직책을 받은 선배는 교수에게 필요한 것은 역량도 중요하지만 자질이라고 했다. 도대체 그 자질은 무엇일까.


마중물과 같은 넛지(Nudge) 역할

교수가 만약 지식전달로서만 역할을 한다면, 그는 아마 훌륭한 강사로서 존중받게 될 것이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중요한 요점을 잘 정리해서 전달해주는 Instructor 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는 수업을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역량과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동기부여(Motivation)를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가 되기 이전에 HRD부서에 처음 왔을 때, 당시 한 선배는 나에게 HRD부서의 역할은 철저하게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미 우리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루틴화되고 단순화된 업무 속에서 다양한 잠재력이 발휘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표준화'라고 하는 허울좋은 틀 속에서 눌리고 압축되어 있다. 이렇게 쭈구리고 있는 한 사람의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잔잔한 물 위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촉진자(Facilitator)로서의 역할이 바로 HRD의 역할이다. 교수는 결코 나보다 학업적으로나 지식적으로 아래에 있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강사나 과외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조직의 한 발 앞을 내다보고 그것을 위해 각 개인으로 하여금 필요한 역량을 발견하게 하고 본인의 잠재성을 폭발시키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7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교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와 법률가인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의 공동저서로 미국의 공공 정책 핵심이론으로도 유명한 "넛지(Nudge)"에서는 우리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수많은 영향력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나는 교수의 역할이야말로 직원들에게 있어서 이 책에서 말하는 넛지 혹은 조금 더 적극적인 넛지로서 그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올바른 방향을 먼저 내다볼 줄 알아야 하고, 이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그리고 확실한 어조로 전달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이것이 교수로서 필요한 자질이라고 생각했고, 늘 그 방향을 필사적으로 가리키며 신입 직원이든, 부서장급의 고참 직원이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풍경

노래 '가시나무'로 유명한 1980년대 가수 '시인과촌장'의 싱어송라이터 하덕규 목사님의 또 다른 명곡 '풍경'이라는 곡에 나오는 가사이다. 자주 듣는 곡은 아니지만,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이 곡을 소개해주신 적이 있은 후로 가사를 곱씹어 본 일이 있다. 나에게 제자리는 어디일까? 어릴 때는 가족과 사는 우리 집이 나에겐 제자리여서, 긴 여정의 끝에 집에 돌아와서야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온 기분이 들었고, 학생 때는 강의실 맨 앞자리가 나의 제자리였고, 군에 있을 때는 내무반 구석진 자리가 나의 제자리였고, 결혼해서는 아내와 함께 매일 밤 잠이 드는 작은 전셋집이 나의 제자리가 되었다. 이마저도 집주인 등쌀에 밀려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제자리가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물리적인 제자리는 나의 인생에서 늘 표류했다.


역할로서의 제자리도 마찬가지다. 나의 인생은 말할 것도 없고, 회사에서 나의 제자리도 '여기다!' 라고 하기 힘들만큼 계속 바뀌고 있다. 지금 나는 교수로서의 치열했으나 행복했던 시간을 마무리하고 전에 있던 IT부서로 돌아와서 업무를 부여받아 수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맡은 업무와 역할은 더이상 Facilitator로서의 역할 보다 Engineer로서의 역량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선배로서 후배들에게는 본인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고, 좋은 잠재성을 갖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과 함께 내가 먼저 경험한 실패들을 나누고, 나를 뛰어넘는 모습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다만 꼰대처럼은 하고 싶지 않아서 늘 조심하는데, 쉽지 않은 것 같다. 부디 후배들이 이해해주길 바랄 수 밖에..


조직에선 후배들에게, 가정에선 자녀들에게, 교회에서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늘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다. 그런 메세지들이 흩어져버리지 않고 지혜롭게 잘 전달되어 그들 인생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인과촌장 2집 19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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