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ter Stellarum(별아버지)

(새벽말씀) 로마서 14:7-8

by 손주영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얼마 전 아이들과 극장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 라는 영화 한 편을 봤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외계인도 등장하니 단순 오락영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선에 맞닿아있는 철학적인 고민도 인상깊었다. 특별히 가치있게 여기는 것을 위해 희생을 결단하고 행동하는 장면은 눈물샘을 자극했다.


한 사람의 삶이란 길지만 동시에 짧다. 영유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바라보면 참 길게 느껴지면서도 우주적 스케일에서는 손에 닿을 듯 눈에 선명히 보이는 곳에 닿지 조차 못하는 짧고 허무한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 인생의 쓰임을 논할 때에 누가 정할 것인지, 그 가치는 얼마나 대단한지를 우리는 쉽게 결정하지 못하지만, 오늘 새벽 말씀을 들으며 동일한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유한한 인생을 사라질 쾌락의 땔감으로 던져버릴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값진 일에 놓을 것인가 하는 것과 같다. 그 후자의 값진 일에 대하여 성경은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보여준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라는 다소 거친 표어와 같이 말하지만, 결국 우리의 삶을 사라질 세상적 가치에 소모하기 보다 어둠 속 방황하는 배들을 조용히 인도하는 등대처럼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정진규 시인의 한 시구(詩句)처럼, 어둠을 가르고 빛을 이끌어내는 삶을 살고 싶다.


누가 어둠을 조금씩 찢어내고 있다
빛이 샌다
내가 찢은 어둠,
어둠도 몇 개는 될 터인데
그것들도 별이 되었을까 빛이 되었을까
말하자면 나는
적지 않은 여자들의 어둠을 찢은 것인데
지금 어디서
나의 별새끼들이
한참 자라고 있음을 굳게 믿는다
별아버지, 나는 기쁘다

<다시 별> -정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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