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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Jun 08. 2016

슬램덩크

직장생활의 비결 : 왼손은 거들뿐


조재중과 정대만
안 선생님, 농구가 하고 싶어요...


최고의 만화 <슬램덩크>의 팬들이 뽑은 명대사 1위.

교내외 폭력사건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농구부를 떠났던 정대만이

다시 돌아와 안선생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농구부에 복귀하게 되었던 명장면이다.

안선생님은 어째서 농구부까지 큰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이런 망나니 같은 학생을 다시 받아준 것일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과거 안선생님이 '흰머리 호랑이'라 불리우던 대학 농구부 감독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절 안감독님에게는 장래가 촉망받는 뛰어난 선수가 있었다.

조재중 선수. 그는 고교시절부터 좋은 신체조건과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스타플레이어로서 손색이 없는 선수였다.


<방황하던 정대만을 다시 받아준 안감독님>


널 위해 팀이 있는 게 아냐. 팀을 위해서 네가 있는 거다!


하지만 조건과 재능에만 의존한 탓에 기본기가 비교적 부족했다.

큰 선수로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기본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안선생님의 스파르타식 교육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이곳을 떠나 미국이라는 농구선수로서의 이상을 향해 떠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안선생님의 지적한 바대로 기본기가 부족했던 그는 미국 농구에서 실패를 맛보게 되고, 이후 좌절감으로 인해 약물에 의존하던 어느 날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이 일이 있은 후 안선생님은 큰 충격을 받고 대학부 농구계를 떠나게 되었다.

다시 고교 농구계로 복귀 한 이후에도 예전처럼 선수에 대한 강압적이고 스파르타식의 지도성을 감춘채,

'흰머리 부처님'이라고 불리울정도로 온화한 성품의 감독으로 살아가게 된다.

문제를 일으키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정대만을 다시 받아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도 이러한 안선생님의 아픈 과거를 통해 변화된 성품 덕분일것이다.




북산이라는 팀


하지만 선수들에 대한 지도 스타일이 바뀌었을 뿐,

팀웍을 강조하는 안 선생님의 가르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안선생님은 팀이 승리를 하기 위해 선수 개개인이 각자 해줘야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백호군은 우리 팀에 리바운드와 끈기를 더해 주었네.
태섭군은 스피드와 감성을
대만군은 예전엔 혼란을..호호호..
하지만 지금은 지성과 비장의 무기인 3점슛을...
태웅군은 폭발력과 승리를 향한 의지를...
치수군과 준호군이 지금껏 지탱해 온 토대 위에
이만큼의 재능들이 더해졌네

이것이 북산이야


선수들에게 몰아치듯 바쁘게 지시하던 예전의 모습은 분명 아니지만, 선수들을 향한 안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무게가 실려있었다. 진정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역할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모든 멤버가 멈춰서는 안되는 이유를 가슴에 대고 말해주는 듯 했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그들의 체력은 이 한마디를 통해 정신력으로 재무장되고 코트를 달구는 승부처로 달려나가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각 포지션에 대한 역할을 주문함과도 같았다.

5명의 선수가 한 팀을 이루는 농구에서 키가 큰 선수가 유리하다 하여 5명 모두 센터를 내보내는 바보같은 감독은 없을 것이다.

가드, 포워드, 센터로 구분되는 포지션에서 포인트가드, 슈팅가드, 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 등으로 세분화되는 모든 포지션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과 능력이 구분되어있다.

비단 농구라는 스포츠에서 뿐만 아니라 축구, 야구, 배구 등 팀을 이루어 하는 모든 스포츠에서 포지션별 상이한 역할과 역량이 요구된다.

스포츠만 그럴까?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하는 국방의 의무. 군대에서도 정말 다양한 보직이 나뉘어 있으며, 보직별 요구되는 기술과 능력이 상이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그러하다. 팀을 이루는 아주 작은 단위부터 거대한 조직까지 구성원들에게 일률적인 능력과 스펙을 갖추라고 요구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심지어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도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다르다.

명확하게 아빠는 이것, 엄마는 저것 이라고 정해놓을 필요는 없겠지만, 가정이라는 배가 순항하기 위하여 필요한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역할 구분을 하며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인 것이다.




왼손은 거들뿐?


당연히 직장생활도 그러하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도 더 그러하다.

회사는 이익을 내야하는 영리단체이기 때문이다. 실수와 실패를 너그러이 용서하고 언제나 힘을 북돋아주는 가정과는 다르다. 손실에 대하여 굉장히 인색한 조직이기에 역할에 대한 충분한 역량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축구나 농구경기를 보다보면 이따금씩 같은 편 선수끼리 달려오다가 부딪혀 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더 잘하려고 노력하다보니 그 상황까지 갔겠지만, 자신의 역할을 정확하게 하며 선수간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팀에서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장면이다. 일전에 다루었던 무한상사의 이판사판과도 같은 것이다.


왼손은 거들뿐..


슬램덩크 속 풋내기 강백호는 여름특훈 동안 2만번의 슛 연습을 한다.

연습이 끝나던 날 꿈 속에서 강백호는 숙명의 라이벌(?) 서태웅의 패스를 받아 멋지게 버저비터를 날리는 꿈을 꾼다. 그리고 이어진 산왕전에서 거짓말같이 꿈 속의 장면이 데자뷰처럼 벌어진다.

강백호는 조용히 이렇게 말하며 버저비터를 날린다.


  "왼손은 거들뿐..."


조직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군가는 슛을 날리는 오른손이..

또 다른 누군가는 왼손이 되어 오른손의 슛을 거들어야 한다.

주연을 빛나게 하는 것은 조연이듯 말이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슛을 날리려 한다면 공을 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오른손이 되길 바라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너가 나의 왼손이 되길 바란다며 주인공은 나야! 라고 외치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조직이 나아갈 길, 다시말해 골을 성공시키기 위해 누군가는 기꺼이 왼손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알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면 과연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왼손은 거들뿐...>


사실 사람은 누구나 그러하기에, 조직에서는 역할을 나누어 주고 관리하는 관리자가 있다. 하지만 정말 훌륭하게도 언제나 왼손 언제나 오른손이 되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내가 오른손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왼손이 되서 방향을 잡아주기도 하는 것이 조직의 아름다운 조화이다. 하지만 알아야 하는 것은 조직의 목표가 클수록 더 많은 왼손이 우리 주변에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백조가 호수 위에 떠 있는 모습을 보면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 물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발을 젓고 있다.
그래야 가라앉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의 사수, 과장님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조직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

겉으로는 평안해 보이지만 수많은 직원들의 땀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기에 운영이 유지가 되는 것이다.

나는 IT직군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안정 운영"이다. 다시 말해 전산적인 장애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 우리 팀의 목표이자 골대인 것. 하지만 장애 없이 순조로운 항해를 하는 이 평화로운 모습이 겉으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태평성대처럼 자칫 잘못 보일때가 있다. 이 조직의 이름을 단 배가 방향을 잃거나 침몰하지 않도록 물 밑에서 열심히 발을 젓고 있는 왼손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모두 제자리에


아내는 유치원 교사 출신이라 아이를 다루는데 꽤나 능숙하다.

우리집에서도 아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실컷 놀다가 정리해야 될 때가 되면 불러주는 노래가 있는데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에~♬"

라고 하는데 정확한 제목은 모르겠지만, 이 노래가 들리면 아이가 춤을 추며 장난감을 제자리에, 책들도 제자리에, 인형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우리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센터는 센터위치에, 가드는 가드위치에 감독은 감독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면 된다.

그런데 요즘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것이긴 하겠지만 성과연봉제의 도입을 놓고 노동자측과 사측, 정부의 의견대립이 첨예하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일하는 사람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이 차등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대단히 민주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성과의 기준과 평가의 방식이 투명해야 하며 정확해야 한다. 누구나 동의하는 기준을 모두가 알 수 있도록 해야만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 이의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성과연봉제의 도입에 대해 노동자는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가시적인 성과에만 기대어 성과연봉제를 추진한다면 그간 보이지 않는 현장의 숨은 노력을 멈추고 모두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날개짓만을 하려 할터인데 그때 물 속에서 발을 젓지 않아 가라앉는 참사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포지션을 지키지 않고 모두 골을 넣겠다고 달려들면 수비는 누가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할 문제이다.




벚꽃 엔딩


여담이지만, 강백호의 일본식 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樱木 花道)

의역하면 " 벚꽃나무 꽃 길"이다.


망나니 원숭이같은 강백호란 캐릭터에게 이런 아름다운 이름이라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따뜻한 봄 화려하고 아름답게 만개하여 우리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벚꽃처럼 그의 농구 인생은 잠시 잠깐 봄 날을 맞이했으나, 여우비에 힘없이 땅에 떨어지고마는 벚꽃잎처럼 그의 농구 인생역시 마지막 산왕전의 부상으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된다.

떨어진 벚꽃잎에 아쉬워 하듯 너무나도 짧게 끝난 강백호의 농구 인생이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여름 장마비, 가을비를 참아내고, 겨울 차가운 눈송이를 버텨내면 봄은 다시 우리곁에 오기 마련이다.

우리의 인생에, 직장생활에 잠시 잠깐 어려움이 닥칠지도 모르지만 다시 활짝 피어날 강백호의 농구 인생처럼 우리네 삶도 잘 버텨내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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