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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Jun 14. 2016

맏이가 예쁜가, 막내가 예쁜가?

정관정요[貞觀政要] 로 본 자녀교육 - 제9장 太子諸王定分(태자제왕정분)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어릴 적, 짓궂은 어른들이 나에게 이런 걸 자주 물어봤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참 오래된 장난이지만, 요즘도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기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농담삼아 던지는 어른들이 종종 계신다. 그런데 어느 새 이제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된 나에게도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여전히 계신다. 물론 질문은 약간 바뀌었다.

  "아들이 좋아? 딸이 좋아?"

혹은

  "첫째가 이뻐? 둘째가 이뻐?"

물론 나의 대답은 "둘 다 예쁘네요!" 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예쁜 아이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의 첫 아이는 이제 막 태어난지 22개월차, 3살 인생을 살아가는 왕자님.

둘째 아이는 아내의 뱃 속에서 채 한달도 남지 않은 예정일을 기다리는 공주님.

요즘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이런 짓궂은 질문도 사실 그렇게 짓궂게 들리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생각에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여아의 부족으로 오히여 '여아선호사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들을 낳기위해 딸,딸,딸,아들 이렇게 까지 자녀 수가 늘어나는 가정이 있는 반면 요즘은 반대로 아들,아들,딸 이런 식으로 자녀를 낳는 가정도 주변에서 많이 보여진다. 물론 한 자녀만을 낳는 가정도 있고, Childless Couple이라고 해서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도 늘어가고 있다. 본인들의 선택이기도 하겠지만, 경제적이거나 환경적인 대외적 요인들이 이러한 사회 모습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자제왕정분(太子諸王定分)

유난히 많은 자식을 두었던 과거의 왕들은 어떠했을까?

특히 과거 왕들은 첩을 두어 그 자식 또한 각기 다른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나, 적자와 서자간의 시기와 다툼이 있었고, 이러한 자리다툼을 통해 역사의 방향과 흐름이 새로이 쓰여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이에 대하여 당나라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조한 정관정요에서는 '태자제왕정분(太子諸王定分)' 라고 하여 태자와 왕자들간의 서열을 정하는 문제에 대하여 왕이 가져야 할 태도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철저하게 적자를 존중하고 서자를 중시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군주의 적자는 모름지기 군주에 버금가는 덕행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사용하는 화폐나 물품에 대하여서도 군주와 동급으로 취급이 되었다. 하지만 서자는 첩의 자식들로 출신이 다르고 적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설움이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자들의 질투심과 시기심이 반란과 같은 형태로 표출되어 나라를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그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적자와 서자를 구분하는 명분을 바로 잡고, 이들의 예와 교육을 바로하여 다툼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이것은 정말 올바른 이야기 일까?

사실 정관정요는 당 태종 이세민()의 정치 철학을 담고 있으며, 군주, 즉 나라의 통치자로서의 리더가 갖춰야할 덕목과 국가의 안녕을 위하여 세워야할 기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대의를 위하여 작은 것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는 냉철한 결단. 앞에서 다뤘던 이대도강 [李代桃僵]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제후들에게 있어서 자녀는 장기판 위의 말을 다루듯 전략적이고 희생적인 판단이 강요되었던 것.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녀관과는 다소 맞지 않는듯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눈여겨볼만한 구절이 있는데 당태종의 총애를 받던 마주(馬周)의 소신 발언이 그것이다.

貧不學儉(빈부학검)
富不學奢(부불학사)

가난한 사람은 절약을 배우지 않아도 검소하고,
부귀한 사람은 사치를 배우지 않아도 사치한다.


땅을 파 물 길을 만들듯이 자녀도 모름지기 부모가 자녀를 대함에 따라 그의 인성과 품행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법이다. 당태종의 서자들에 대한 총애가 오히려 적자의 시기를 사게하였고, 서자들에게 독이 될 것을 우려하여 명분과 질서를 잡아 애초에 큰 물줄기와 작은 물줄기가 섞이지 않도록 하라는 마주(馬周)의 상소였다. 어느 한 자녀에 대한 편중된 사랑이 또 다른 자녀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줄 수 있으며, 이것은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리고 늘 사랑만을 주고 훈계와 질서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이기적이고 버릇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학교에서 항상 배우는 것이지만 말로서 배우는 지식은 머리속의 지식으로만 남을 뿐이다. 그들의 인성을 다듬는 것은 그들이 자라나며 겪는 환경. 그 환경을 만드는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마치 물이 흘러갈 수 있도록 물 길을 만드는 것과 같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아이들은 물과 같아서 담는 그릇에 따라 그 모양이 바뀐다.

어느 날 아이에게 "사랑해, 이레야!" 하며 양팔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어 보여줬더니, 이젠 TV나 라디오, 대화 속에서 "사랑" 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아이는 머리 위로 두 손을 들고 하트를 만든다. 마찬가지로 아이에게 호랑이는 어흥이라고 가르치면 실제로 한번도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어도 "호랑이"라고 하면 "어흥"이라고 답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게 손대는 대로 그려지는 백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때문에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는 그 말과 행동을 함에 있어서 받아들일 아이의 입장에서 여러번 생각하고 이야기를 해야한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어른들끼리의 대화에서도 아이를 배려하며 이야기 해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부모의 말과 행동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에는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검지 손가락을 입에 물고 휘파람 부는 시늉을 하는 걸 보았다. 영화 "토이스토리"에서 주인공 우디가 강아지를 부를 때 하는 동작이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매체에도 너무나 쉽게 노출되고 영향받는다. 이것은 뛰어난 학습효과인 동시에 부모가 아이를 대할 때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하는지를 보여준다.



기회; 機會 opportunity

이러한 이유들로 이제 곧 둘째가 태어나는 나와 나의 아내에게는 고민 아닌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너무 사랑하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게 되는 일이 생길까봐서이다.

두 아이 이상을 키우시는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기도 하겠고 이미 지나친 일들이시기도 하겠지만,

당장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첫째 아이를 할머니께 잠시 맡겨두는 일부터 우리부부에겐 큰 고민거리였다.

행여나 이렇게 맡기고 출산과 산후조리에 임하는 엄마, 아빠를 보며 첫 아이가 느낄 상실감 혹은 스트레스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첫 아이를 데리고 산후조리를 할 수도 없으니 우리 부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출산예정일을 한두달여 앞둔 어느 날부터 일주일의 몇일씩은 아이를 일부러 할머니께 맡겨두고 엄마 아빠 없이 홀로 자는 연습을 시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단 한번으로 그만둬야했다.

  '아, 할머니집에 가면 엄마아빠는 나만 놔두고 어디에 가시는가 보다... 그러면, 할머니집에 가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우리 부부에겐 연습이겠지만 상황을 이해할리 없던 아이에겐 이마저도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스트레스 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큰 아이는 외갓집에 대한 적응이라도 하자는 취지로 엄마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하루 이틀씩 지내며 적응하는 훈련을 하는 중이다.


고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둘째의 출산이 가까워 갈수록 주변에서 해주시는 조언 중,

  '큰 애가 있는 앞에서 너무 둘째만 안고 있지 말아라.'

라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자신만을 바라봐주고 자신만을 사랑해주던 아빠엄마를 동생에게 빼앗겨버린 것 같은 시기와 질투를 큰 애가 가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괜히 동생을 미워하게 되고 못살게 굴기도 한다고 주변의 유경험자들게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예전에 아내와 TV를 보며, 아이의 달라진 모습에 대해 전문가의 진단과 조언을 받는 예능에서 본 장면이 생각난다. 이유없이 동생을 쥐어박고 괴롭히는 5살 누나. 전문가들은 동생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사랑이 첫 아이의 비뚤어진 질투심을 키웠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쩌란 말인가. 여기에 대해 전문가의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것은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첫 아이가 뒤집기를 시도할때, 기어다닐 때, 첫 걸음마를 뗄 때 그 옆에서 응원하고 환호했던 아빠와 엄마의 모습이 찍힌 동영상을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이는 동영상을 봐도 시큰둥해 했다.

하지만 화면 속 아빠가 작은 아기를 부르는 이름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화면 속 아빠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재밌게 놀아주고 있었다. 자신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해주는 심리치료방법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 부부는 첫 아이를 양육하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실로 그 양이 어마어마해져가곤 있지만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큰 아이에게 동생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에 있어서 이러한 방법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동생을 케어하고 사랑해주는 것에 끊임없이 큰 아이를 동참시키고 동기부여를 해주며, 동생과 이레는 경쟁자가 아닌 동반자. 아빠와 엄마와 이레도 동생을 함께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협력자임을 계속 가르쳐줘야겠다. 가난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절약을 익히고, 부유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사치를 하게되는 것처럼, 동생을 사랑하라고 말로서 지식으로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사랑하도록,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그 물길을 열어주는 것. 아빠로서, 엄마로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역일 줄로 믿는다.


If someone prays for patience, Do you think GOD gives them patience?
or does GOD gives them the opportunity to be patient?

만약 어떤 사람이 인내심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인내심을 주실까요?
아니면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할까요?   


If  he prayed for courage, does GOD gives him courage?
or does GOD gives him opportunites to be courageous?

만약 그가 용기를 달라고 하면 용기를 주실까요?
아니면 그에게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주실까요?   
If someone prayed for the family to be closer,
Do you think GOD zaps them with warm fuzzy feelings?
or does GOD gives them opportunites to love each other?

만일 누군가 가족이 좀 더 화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갑자기 따뜻한 묘한 감정을 주실까요?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까요?


<영화 "에반 올마이티(Evan Almighty)" 中>



나와 아내는 그 밖에도 동생이 태어나는 것이 첫 아이에게도 큰 기쁨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아이들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하고 또 이야기 나누며 여전히 함께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좋은 부모가 되게 해달라고 한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이레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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