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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Jun 16. 2016

빛을 그리는 법

정관정요[貞觀政要] 로 본 자녀교육 - 제1장 君道(군도)

나의 리스크 관리

올해로


직장생활 5년차이자

결혼생활 4년차이자

육아생활 3년차에 접어든 나는 해야 할 것도 왜그리 많은지, 생각해야 하는 것도 왜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요구사항, 또 선후배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하고

가정에서는 아내의 요구사항, 부모형제의 요구사항도 계속 생겨난다.

정말로 뭘 해달라는 요구사항을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지만 그만큼 신경써줘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

거꾸로 그만큼 나도 챙김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는 아이러니다.

여러가지 일 들과 약속을 구글캘린더와 수첩에 적어놓고 까먹지 않게 애쓰며 챙기고 또 챙긴다.

그러다가 하루에 여러가지 일정과 약속이 있는 날은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하나 둘씩 해나가며 나의 리스크를 줄여나간다.


이것들은 나에게 정말이지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과 같다.

상사가 내준 숙제를 정해준 기간내에 하지 못하는 것도 리스크이고,

아내의 생일을 챙기지 못한다면.. 생각하지 못할 리스크가 올 것이다.

결혼을 하면서 챙겨야 할 부모형제의 생일도 두 배로 늘어났다.

이것들 모두 목적한 바대로 이루지 못하면 나에겐 그만큼 평판리스크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소홀해지다 못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일이 종종있는데,

3살된 아들 이레의 요구사항에 대해 그럴때가 있다.

내가 회사일을 마치고 집에가면

  "아빠~~!"

하고 두 팔 벌려 달려나오며 내 손에 든 그 무엇이든 낚아 채간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그대로 바닥에 쳐박아두고 다시 놀던 방으로 뛰어들어간다.

매정한 녀석^^;;;;;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데 가끔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에게 뭐라고 다다다다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으레 어른들이 그러시는 것 처럼

  "응, 그랬어? 아~ 그랬구나, 이레 그랬어? 우와~"

이렇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지만 이레표정을 보며 이것이 즐거운 이야기 인지 슬픈 이야기인지 대충 추측해서 거기에 맞는 리액션을 대충 해준다.

그런데 늘상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야근이나 회식때문에 늦게 들어오거나 피곤할땐 이레가 주절주절 이야기를 해도 대충대충 리액션을 해주고 말거나 아예 못들은 척을 해버릴때도 있다.

그러면 이레는

  '그게 아냐, 아빠! 다시 들어봐봐, 그러니깐....'

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뭔가 복잡한 말을 계속 한다.

  '아, 이레야... 아빠 피곤해, 너 말고도 신경쓸게 산더미야.. 아빠를 좀 놔주지 않겠니..?'

이레에겐 미안하지만 내 맘 속에 이런 말이 울려퍼질때가 있다.

아빠에게 어떤 중요하고 복잡한 일들이 있는지 이레에게 설명할 수 도 없고.. 정말 어려운 노릇이다.




우문현답(愚問賢答)

당태종이 신하들에게 현명한 군주와 어리석은 군주를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물었을 때

간의대부 위징(魏徵)이 이렇게 대답했다.


君之所以明者 兼聽也 (군지소이명자 겸청야)
군주가 밝고 현명한 것은 널리 남의 의견을 듣기 때문이며

基所以暗者 偏信也 (기소이암자 편신야)
군주가 어리석은 까닭은 한쪽만을 믿기 때문이다.

先人有言 詢於芻蕘 (선인유언 순어추요)
선인께서 말씀하시길, 풀을 베고 나무를 하는 사람에게도 물어보라 하셨다.


- 정관정요[貞觀政要] 제1장 君道(군도) 中 -


순어추요(詢於芻蕘) 라는 것은 위징(魏徵)의 말대로, 선인들의 말을 인용한 것으로 시경(詩經) 대아·판(大雅·板)에 기록된 구절이다. 곧 사사롭고 밑천한 자로 여겨 그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군주는 훌륭한 군주라 할 수 없고, 널리 의견을 듣는 군주라야 훌륭한 군주라는 이야기다.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하여 신입연수를 받을 때, 당시 회사의 CEO께서 방문하여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다.


"우문현답"
- 리의

- 제는

- 장에

- 이 있다.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을 한다는 사자성어이지만, 이것을 조금 바꾸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비즈니스 철학으로 해석하여 가르쳐주셨다. 곧 우리가 아무리 유능하고 경험이 많다고 해도 문제 해결을 위해 현장을 들여다 보고, 그곳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근본적인 발전과 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이정도면 될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 바로 탁상공론(卓上空論)이 기업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가르쳐주셨다.


위징(魏徵)의 답변도, CEO의 가르침에서도 공통적으로 듣는 태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 애초부터 이것은 들을 필요가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은 중요한 정보를 얻을 기회를 잃는 것과 같다. 정말 그 이야기가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는 우선 들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급하고, 상대에 대한 무시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경청(傾聽)의 기회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현명한 왕들 중에도 이처럼 백성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였던 어진 임금들이 계셨다. 세종대왕께서 만드신 '한글'도 이러한 목적에서 창제되었음을 익히 알고 있다.




빛을 그리는 방법

하지만 일상에서 나는 그렇게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위로는 부모님의 말씀도 시대에 뒤쳐진 잔소리라 여겼었고,

아래로는 어린 아들의 이야기도 그저 의미없는 옹알이일뿐 이라고 치부했었다.

심지어 아내의 말에 대하여도 항상 중히 여기지 못하고 '뻔한 이야기' 라며 흘려 들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나의 모습을 돌이켜 봤을 때, 참으로 어리석고 부족한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빛을 그리기 위해 그림자를 그리다.


- 이노우에 다케히코 作[공백] 중 -


만화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최근 [리얼]이라는 새로운 농구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우들의 삶과 이들의 농구를 그린 이야기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인터뷰집인 [공백]에서 '빛을 그리기 위해 그림자를 그리다.' 라는 말을 남겼는데, 현재 연재 중인 [리얼]이라는 만화에서 이야기하려는 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희망과 극복이라는 밝은 빛을 그려내기 위해 장애우로서 딛고 일어서야 하는 어려움에 대한 그림자를 먼저 그려야 하는 것이다.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리얼" 과 "슬램덩크"]



나는 어쩌면 빛만을 그리려고 애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보고 싶은 부분, 내가 듣고 싶은 말만 보려고, 들으려고 해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레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가리킬 때, 이레의 손 끝에 무엇이 닿아 있는지 보려하지 않고

그저 이레의 표정, 이레의 말투만 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리액션만을 감정없이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레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자기가 세워놓은 로보트들의 멋진 모습을 자랑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빛을 그리기 위해서는 빛이 아닌 그림자를 그려야 한다는 작가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얼굴만을 봐서는 안된다는 것을 조금 알 것 같다.

아이의 생각, 아이의 손 끝이 가리키는 바, 아이의 하루 동안의 일을 물어보는 것이 아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첫 걸음이지 않을까.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나의 학창시절,

나의 아버지께서는 늘 언제나 나에게 '제발 공부 좀 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난 학교에서 충분히 공부하고 돌아와서 집에서는 TV도 보고 게임도 하며 쉬는 중인데,

아버지는 집 소파에 늘어진 나를 보시며 공부 안하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하셨다.

왜 아버지는 집에서 잠시 머무르는 나의 일부만 보시고 나의 전체를 평가하시는 걸까?

난 학교 도서관에서 죽어라고 공부하고 왔는데...

물론, 나중에는 이해해주셨지만.. 그땐 너무 억울했다.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나도 이레에게 잔소리만 하지 않고 있을뿐 똑같이 대하고 있었다.

밥먹기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 이유불문하고 억지로 먹이려고 했다.

왜 먹기 싫은지 이레에게 한번도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

소리를 지르면 이유불문하고 쉿, 조용히 하라고 했다.

무엇때문에 소리를 지르는지 물어보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무심한 아빠였다.

당장 이러한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 쉽게 되진 않겠지만, 이제부턴 조금 달라져보고 싶다.

이레의 모든 말과 행동에 대해 의도를 물어보고, 궁금해하며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워야겠다.

이러한 것이 정답인지 아닌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답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어쩌면 이것도 잘못된 방법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땐 다시 조언과 방법들을 듣고 옳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길로 선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서툴고 갈 길이 먼 초보 아빠지만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지금보단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하고 기대한다.


[빛을 짓는 건축가 "이타미 준"의 PINX BIOTOPIA 풍(風)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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