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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Jun 24. 2016

미슐랭 가이드

미슐랭가이드로 본 교육철학 : 효학반(斅學半)

미슐랭가이드


지금은 그 자취가 사라졌지만,

대학생 시절 자주 찾던 종로통의 피맛골.

그곳에서 주로 고등어 구이, 삼치구이, 김치찌개에 길들여진 입맛인지라, 고급스러운 프렌치 레스토랑 쉐프들과는 어쩌면 나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그들과 관련이 있는 "미슐랭 가이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세계 최고 권위를 가진 여행정보안내서 혹은 레스토랑 평가정보안내서 라고도 할 수 있는 미슐랭가이드는 최소 10년 이상 요식업계에서 종사했거나, 관련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단(Inspector)에 의해 레스토랑에 평점을 부여하고 그 정보를 대중에 공개하여 큰 화제를 낳는 가이드이다.

미슐랭의 기준에 의하면,

평점 ★ 는 요리의 맛이 훌륭하다(a very good restaurants in its category)

평점 ★★ 는 멀리 있어도 찾아갈 가치가 있는 훌륭한 요리(excellent cooking and worth a detour)

평점 ★★★ 는 요리를 맛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도 될만큼 훌륭한 요리(exceptional cuisine and worth a special journey)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슐랭 평가단(Inspector)이 보는 다섯가지 주요한 평가기준이 있는데, 

1. 최종 결과물의 수준 (Quality of products)
2. 맛의 완성도와 조리의 완벽성(Mastery of flavor and cooking)
3. 음식의 창조적인 개성(The ‘personality’ of the cuisine)
4. 가격에 합당한 가치(The value for the money)
5. 한결 같은 만족도(The consistency between visits)  


이상 다섯가지의 평가기준을 공개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평가단의 정체는 철저히 비밀에 붙이면서도 그들의 가져온 정보는 대중에 공개하여, 양질의 음식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미슐랭 가이드를 처음 만든 것은 유명한 레스토랑이 아니며, 그 어떤 요식업계와 관련된 회사도 아니었다. 1889년 앙드레 미슐랭과 에두아르 미슐랭 형제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타이어 회사 Michelin(美, 미쉐린)으로부터 그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영국의 산업혁명이후 유럽엔 자동차가 급격하게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미슐랭 형제는 관련 산업인 타이어 업계에 뛰어든다. 하지만 도로와 같은 인프라시설이 아직은 온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어있지 않아 사람들이 자동차를 대중적으로 타고 다니기엔 무리가 있었고, 사람들이 자동차를 잘 타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타이어를 교체할 일도 그다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미슐랭 형제와 같은 타이어 업계는 뜻하지 않은 불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내무부 산하 지도국에 근무를 하던 형 앙드레 미슐랭은 한가지 아이디어를 낸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동차 여행을 부추기는 여행안내서를 발간하여 무료로 배포하는 것이었다. 여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 여기에 물론 식당 정보까지 포함하여 안내서를 발간하여 타이어를 구매하러오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기 시작했고, 예상외로 사람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1900년 발간이 시작된 "미슐랭 가이드"는 인기를 끌자 1922년 부터는 유료로 판매하도록 정책이 바뀌었고, 좀 더 전문성을 지닌 가이드로서 116년이나 지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지금의 여행가이드이자 레스토랑안내서로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전문평가단의 조사와 어마어마한 시간과 양의 정보가 있었지만, 그 목적은 매우 단순했다.


그것은 바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여행객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그들은 전문지식을 쌓아갔고,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의 노하우와 엄격한 기준을 다듬어갔던 것이다. 만일 그들의 평가단이 전문성 없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거나, 기준과 노하우가 전혀 없는 일종의 '찌라시'정보 같은 것이었다면 전세계 미식가들과 또 음식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금과 같은 신뢰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전문가로 만들고, 전문성을 갖도록 한 것은 다름아닌 가르쳐주고자 했던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 발행된 미슐랭가이드 일본 도쿄판. 한국도 아시아 4번째로 2017년 발행이 될 예정이다>



효학반(斅學半)


중국 상고시대() 정치를 기록한 유교 경전으로, 오경() 중의 하나인 서경(書經) 열명(說命) 하편 제 5장에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惟斅學半  念終始 典于學  厥德修罔覺
유효학반  염종시 전우학 궐덕수망각

'가르침은 배움의 반이니, 시종 배움에 전념하면 알지 못하는 중에 그 덕이 닦여질 것이다.'


중국 은(殷)나라 고종(高宗) 때, 토목공사 일꾼에서 재상으로 등용된 부열(傅說)이 자신의 군주에게 배움에 대하여 훈고(訓告)하는 내용으로서 풀어 해석하면 "배움의 반은 남을 가르치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남을 가르치는 것은 가르침을 받는 대상을 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에게 또한 그것이 배움의 기회가 되며, 가진 지식을 견고히 하는 것이 된다.


대학생 시절 나에게도 효학반의 경험이 있었다.

당시, 용돈을 벌기 위해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나는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도 해본적이 있다.

처음엔 정말 거저먹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려워봤자 중·고등학생 수준의 내용이니 따로 준비해가지 않아도 충분하겠다고 가볍게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학생이 가져온 문제를 바로 쉽게 풀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며 진땀을 흘린 적이 한 번 있었다.

그 뒤로는 그와같은 창피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서 수업 전에 예습을 정말 철저히 했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때에도 그렇게 까지 열심히 예습을 해본적이 없는데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려다보니 새벽까지 수학문제집을 붙들고 보기도 하고, 지하철에서 영어 모의고사 시험지를 들고 풀어보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과외도 여러해를 하다보니 나중에는 굳이 예습하지 않아도 될만큼 내 스스로 실력이 성장했음을 느낀 것이다.

반복해서 같은 부분을 여러해동안 학생들에게 가르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학습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어떤 일이든지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그것의 학습효과가 생기고, 능력은 점차 향상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특히 가르치는 일에 대하여서는 설명과 이해를 목적으로 하다보니 기계적으로 단순 반복하여 얻어지는 효과 이상으로 자가학습이 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남을 가르침을 통해 도리어 내 스스로 학습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횡단보도 건너는 아이들


운전을 하다보면 횡단보도에서 손을 높이 들고 좌우를 살피며 길을 건너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도 어릴 적 그랬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커가면서 이러한 것들을 점차 잊어 버리고 손을 들지 않은 채 횡단보도를 건넌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대부분 손을 들지 않고 건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면 어른이 먼저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효학반이 드러난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사회규칙을 가르치고 정직한 모습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그러한 모습들로서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것.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지만 스스로의 모습도 다듬어져가는 것이 곧 효학반인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습도 그러하다.

입술로 복음을 말하며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전하기 바쁘지만,

정작 삶은 정 반대로서 살아가고 있다면...

전하는 것의 목적과 효과를 상실해버리고 말 것이다.

지난번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의 통해 보았던 것처럼 표리부동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겐 효학반이란 없다.

(*푸슈킨:표리부동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어찌되었든 중요한 사실은,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배우는 사람 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에게도 배움의 효과가, 그 덕이 모르는 사이에 점차 쌓여 간다는 것. 바로 효학반의 본질이다.

타이어를 팔기 위해, 고객들의 타이어가 빨리 소모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여행가이드 이지만,

그러한 정보를 가르쳐주겠다고 시작한 타이어 회사의 이름은 이제 미식가들이 신뢰하는 권위적인 레스토랑 안내서로서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정보를 전달하고 가르쳐주는데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고자했던 타이어 회사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 가정도 아이에게 책 읽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어서 처음엔 아이에게 많은 양의 책을 사주며 읽기를 권했다. 아이에겐 책을 쥐어주고 아빠인 나는 TV 아니면 스마트폰게임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책을 던지고 아빠 옆에 나란히 누워 아빠가 보는 TV 아니면 스마트폰을 함께 보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TV를 없애고 스마트폰도 가급적 손에 대지 않았다.

대신 아빠도 책을 읽었다.

처음엔 아이가 TV를 찾고 스마트폰을 찾았지만 결국 아이도 나란히 앉아 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책을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제는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부분에 대하여 물론 말로써 이해를 시켜주는 부분도 중요하겠지만,

아빠로서 엄마로서 먼저 삶 가운데 가르치고자 하는 방향대로 살아내며 아이에게 삶의 모습들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도 학습이 되며,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이상적인 모습에 우리도 가까워져 갈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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