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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영 Aug 04. 2016

Reader's Digest

내가 글을 남기는 이유

1. 글을 남기는 목적

내가 취미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알게 된 지인이 왜 글을 남기는 지에 대하여 물었다. 내가 글을 남기는 것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나를 위해 남기는 글이며, 하나는 자녀들에게 남기는 글로서의 목적이다.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 신입직원 연수 일정 중 제주도 한라산 등반이 있었다. 등반을 앞두고 산 아래에서는 예기치 못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하여 준비 운동과 구호를 외치며 정신무장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출발 직전에는 각자가 멋진 화이팅 포즈를 폴라로이드 사진에 담고 그 뒤에 '10년 뒤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적어 타입캡슐에 담았다. 우리는 한라산 등반코스 중 비교적 초보자에게 적합한 성판악코스로 등반을 시작했는데, 코스의 중반 진달래 대피소 쯤에 헬기장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타입캡슐의 봉인식을 했다. 봉인식을 하는 순간부터 타입캡슐에 달린 디지털 시계의 카운트가 흐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10년 뒤엔 동기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메시지를 받게 될 것이다.


미래의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그 의미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더 성숙했을 텐데, 오히려 어리숙한 지금의 내가 성숙해진 나에게 어떤 의미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왠지 모르게 나태해져 있고, 교만해진 나에게 초심(初心)을 잃지 말 것에 대한 당부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당시 내가 어떤 말을 적었는지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입행 10주년이 되었을 때 좋은 영향력을 주는 메시지이길 바란다.

<한라산 등반 전, 10년 뒤 나에게 보내는 화이팅 메시지를 남겼던 폴라로이드 사진>



2. 일기를 쓰는 것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내가 글자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매일매일 일기를 써왔었다. 물론 학교 선생님이 매일매일 숙제 검사를 하셨기 때문에 좋든 싫든 잠을 자기전엔 늘 일기장을 펼쳐야했다. 어릴적에는 주로 그림일기를 썼는데, 얼마 전 본가에 갔다가 서랍 속 깊은 곳에 케케묵은 일기공책들을 발견했다. 특별할 것 없이 일상적인 하루 일과와 간단한 소감들로 이루어진 일기였는데도 지금 보니 감회가 새롭게 느껴진다. 아버지와 처음 함께한 목욕을 서툰 솜씨로 적나라하게 그림으로 그려놨는데, 정말 우습고 재밌게 표현이 되어있었다. 어린 나에겐 아빠와 함께하는 그런 일상도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나 보다. 나의 아들, 딸이 나중에 아빠가 어릴 적 쓴 일기책을 본다면 얼마나 웃기고 재밌어 할까. 아빠에게도 너희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말로 하기보다는 아빠의 일기와 그림들을 통해 보여준다면 과연 새로운 느낌일지 궁금하다.


일기공책들을 찾다보니, 여러가지 기록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직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던 그 시절,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묻어나오는 교환일기장, 편지들, 군대에서 썼던 일기까지 읽다보니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아버지께선 이제 이러한 짐들을 가져가라고 계속 말씀하신다. 아마도 방 한켠에 물건들이 쌓여 이젠 주인없는 방, 창고처럼 된 내 방을 정리하시려는 모양이다. 이 기록물들은 내겐 추억이 있는 귀한 것들이지만 지금 사는 집으로 옮겨가고 싶지는 않았다. 욕심이겠지만, 어릴 적 내가 지냈던 그 방에 놓아두고 가끔 찾아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야 더욱 그때의 감성이 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남겼던 일기장과 편지들도 시간이 오래지나 읽어보니 정말 새롭고 연필로 꾹꾹 눌러담았던 추억들이 기지개를 펴듯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펼쳐진다.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던 과거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묻어난다. 상상하게 되고, 머리를 시원하게 주무르는 듯한 알싸함이 전해져온다. 사연의 슬펐던 일들도, 당황스러웠던 일들도, 기뻤던 일들도 모두 지금에 와서는 가벼운 미소를 짓도록 하는 힘도 그 안에 있다.



3. 편지의 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음악을 하는 무명의 작곡가였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의 부모님은 가난한 예술쟁이인 그 남자를 탐탁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여자와 남자는 너무 사랑했기에 부모님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남을 가졌다. 그 사실을 알게된 여자의 부모님은 남자와 만나지 못하도록 하셨다.

어느 날, 그 남자는 카페에서 여자가 다른 남자(B)와 만나는 것을 목격한다. 화가 난 남자는 B를 몰래 따라가 포장마차로 따로 불러낸다. 남자는 B에게 그 여자는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말한다. 알고보니 B는 여자의 부모가 주선한 여자의 맞선남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B는 조건이 좋은 남자였다. 능력이 있고 인품까지 훌륭한 사람이었다. B는 취한 그 남자를 집까지 바래다 준다. 남자는 자신까지 배려하는 B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없는 자신보다는 B가 여자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를 B에게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은 여전히 갈등 중이었다. B는 여자에게 자신은 곧 유학을 떠날 것인데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여자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남자는 비행기 티켓을 건네며 공항에서 만날 것을 정중히 부탁한다. 여자는 고민했다.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택해야 할지, 조건이 좋은 착한 사람을 택해야 할지..

여자는 결정했다. B는 자신이 꼭 아니라도 잘 살아갈테지만, 그 남자는 자신이 없으면 불행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여자는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한편 남자는 B가 여자에게 제안한 사실을 전해 듣고 여자를 잡기 위해 공항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공항에서 만난 것은 홀로남겨진 B였다. B는 여자가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며 유학길로 떠났다.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의 집 앞, 자신을 기다리던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둘은 결국 결혼했다.

음악가 였던 그 남자는 결혼 후 행복한 마음을 담아 곡을 썼다. 그 곡은 "마법의 성" 이라는 명곡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그 이후 남자는 집에서 한 통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예전 아내의 맞선남 이었던 B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였다. B의 마음이 고마웠던 남자와 그의 아내는 B의 편지에 곡을 붙여 발표했는데,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편지"라는 곡이다.


이 애틋한 사연 속 주인공은 음악인 김광진씨와 그의 아내이다. 라디오, TV 등 많은 매체를 통해 김광진씨의 사연이 여러번 소개가 되었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비록 우리가 이야기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편지"라는 곡의 가사를 보면 B라는 남자의 배려깊은 마음이 절실히 전해져온다. 글이라는 것은 비록 아무런 소리나, 향기를 담을 수 없는 매체이지만 시간이 오래 흘러도 글쓴이가 담은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는 두번째 목적도 여기와 비슷하다. 바로 편지다.

수신자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 이레와 이안이에게이다. 아이들에게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이레도 이안이도 너무 어려서 당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아빠로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많이 있다. 아이들이 힘들땐 힘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그런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 나름 살아가기가 바쁘기도 하겠지만, 치열하게 살아갈 아이들도 나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들어줄 여유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나도 나의 부모세대, 나의 선생님들께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실때 그것을 마음을 다해 듣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아있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써 남겨둔다면, 아이가 아빠의 생각들을 자신의 시간에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아이들이 나의 생각과 글들을 읽게 될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읽어주었으면 좋겠다.



4. 성경 속 편지

우리가 잘 아는 성경은 사실 한 권이 아니라 66개의 책이 하나로 합쳐진 모음집 같은 것이다. 그 중 예수님이 탄생하기 이전인 구약은 39권, 예수님이 탄생한 이후 쓰여진 27권이 합쳐져 총 66권이 된다. 생각해보면 성경은 참 놀라운 것이 신약도 2000년이란 세월 동안 전해졌지만, 구약은 기원전 900년 전부터 900년이 넘는 기간동안 작성된 책으로서 그 내용이 지금까지 전세계 수많은 언어도 번역되어 보존되어 왔다. 이 시기 한반도의 역사를 비교해 본다면 한반도는 고조선이라는 국가에 청동기 문화가 꽃피웠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성경과 같은 이야기가 쓰이고 기록되어 보존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신약의 대부분은 사실 서신(편지)으로서 쓰였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고린도전서등 서신서로 분류되는 성경들이 모두 수신자와 발신자가 있는 편지의 내용이며, 이 편지들을 통해 복음이 흘러갔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처럼 편지는 상상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수신자도, 발신자도 아닌 제 3자인 우리가 그것도 수천년이 지난 지금 이들이 주고 받은 편지를 읽으며 신앙을 가진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편지를 받게 될 수신자를 생각하며 그에게 전할 말을 적기 위해 고르고 고른 말들로 기록된 편지들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읽히고 있으며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중이다.


김광진의 연적(戀敵)이었던 B라는 남자의 편지도, 성경 속 편지도, 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어떤 편지도 불특정 다수를 수신자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편지를 통해 전하는 진심은 당사자가 꼭 아니라도 읽는 모두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내가 진주의 공군 훈련소에 있을 때 처음으로 받았던 어머님의 편지는 첫 인삿말을 채 읽기도 전에 눈물을 쏟게 했다. 재밌는 것은 나 뿐만 아니라 함께 보던 훈련소 동기들 모두 동시에 '읍...!' 하며 눈물을 삼킨 것이었다. 어머님의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마음은 고된 훈련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지친 젊고 어린 훈련병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고 있던 감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5. Reader's Digest
<Reader's Digest 의 폐간호가 된 2010년 1월호> 

나는 사실 글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전공 관련된 책 외에는 독서에도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다만 지금은 발행이 중단된 [Reader's Digest]를 한동안 즐겨봤었다. 잡지나 단행본 같은, 다른 책들의 재밌는 내용들을 요약하여 소개하거나, 소감들을 모아 편집하고 발행하여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 [Reader's Digest]는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아끼는 책이었다. 손바닥 만한 작은 책자로 구성되어서 늘 가방에 이달의 발행본을 넣어 다니며 버스나 지하철에서 읽고 화장실에서도 늘 펼쳐봤던 기억이 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겨우 이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정기적으로 가기도 했었다. 정기구독을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용돈이 생길때마다 서점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2009년 이후로는 한국어 발행이 중단되었다. 발행사의 사정도 있겠지만, 빠르게 발달한 스마트폰과 모바일 인터넷을 통한 매체의 접근이 다양해지면서 이러한 작은 잡지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digest:
1. (음식을) 소화하다; 소화되다   
2. (어떤 내용을) 소화하다
3. 요약(문), 다이제스트


아무튼, 남들처럼 진득하게 앉아서 책갈피로 표시를 해가며 책을 읽을만한 인내심이 부족했던 나에게 이것저것 재밌는 세상의 인문학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화제거리들을 시시콜콜 알려주는.. 마치 말이 많고 박학다식한 친구같은 존재였다. Reader's Digest에서 "Digest" 라는 것은 '요약'이란 뜻으로서 책의 내용을 요약했다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소화하다' 라는 의미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내가 겪고 내가 바라보며 내가 소화한 세상의 모습들을 나의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물론 아이들 스스로 세상과 부딪히며 자신들이 직접 소화해야 하는 분량을 빼앗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빠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이야기들을 소소하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이 내가 글을 남기는 이유라면 이유랄까..


만약 내가 한번 겪은 실패의 길을 아이가 또 가려고 해도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다. '그건 해봤자 어차피 실패할거야, 아빠가 해봤거든. 하지만 너가 굳이 해보고 싶다면 한번 해봐~!' 어미새가 아기새들에 입에 꼭꼭 씹은 먹이를 넣어주듯 그렇게 해주고 싶진 않다. 내가 소화했던 나의 세상을 가감없이 보여주겠지만, 자신들의 세상을 소화할 것은 또 그 아이들이 감당할 몫일테니. 아빠로서 아이들의 인생을 그 곁에서 동행하며 응원하고 지켜봐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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