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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g Greem Jun 29. 2023

오늘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길고양이가 될 수는 없잖아!

'집사는 집사 하느라 집 못 사.'

홍대입구역 근처에 줄지어선 플리마켓들 앞을 지날 때였다. 고양이 사진들이 걸려있고 고양이 장난감 같은 것들을 파는 아기자기한 부스 앞에서 친구가 말했다. 


"저기 좀 봐. 저거 좀 귀엽다."

"귀엽다. 근데 너 고양이에 그다지 관심없지 않았어?"

"아니, 고양이 말고 옆에 붙여둔 종이봐봐."


집사는 집사 하느라 집 못 사.



"고양이 안 키워도 집 못 사! 나 키우는 데에도 집사가 필요하거든!"


그런저런 농담을 하면서 친구와 둘이 웃음이 터졌었다. 그대로 웃고 지나친 글이었는데 집에 와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조금 다르지만 내가 처한 문제와 비슷하게 생각되었다. 하루하루의 행복이냐 아니면 미래의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위한 투자냐. 아마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 외에도 자기자신을 먹여 살려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분은 한번쯤 해본 고민이 아닐까 싶다. 


 고양이 같은 나는 꽤나 예민하고 감정적인 면이 있다. 오늘의 행복을 미루어 두기에는 당장 바라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고양이이면서 집사 역할도 해야하는지라 오늘의 행복에만 집중할 수 없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영역동물인 법. 밖순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집에서 충전하는 시간이 너무 중요한 사람으로서 길고양이가 될 순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사 경험이 많아질수록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주거환경을 갖추고 살고 싶단 생각이 강해졌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그렇다고 이전처럼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삶에 무조건적인 규칙을 적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스페인 남부의 어느 잔디밭에서 햇빛을 쬐며 조는 길고양이를 오후 내내 구경한 일이 생각났다. 사람이 다가가도 전혀 겁을 먹지 않고 그저 골골거리며 졸던 고양이들. 집도 먹이도 안중에 없어 보이는, 그저 행복하게 볕을 즐기는 듯한 나른한 표정에 나는 완전히 빠져들었다. '지금,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나 다른 느낌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며 살 수도 있구나. 같은 시간을 이렇게 사는 생명도 있구나. 한번쯤 저 고양이 처럼 살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당연한 사실에 새삼스럽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한참 잊고 있던 그런 느낌을, 일상의 작은 행복들을 어렵게 되찾아 가고 있는 지금, 그런 것들을 삶에서 다시 미뤄두고 싶진 않았다. 다시금 하나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모든 것들을 잊고, 잃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영 집과 생활 문제따위 신경 쓰지 않고 볕만 쬐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아무리 자유로워 보인다해도 고양이는 기본적으로는 영역동물이라니까. 마음이 병들 것 같아 행복부터 챙기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고양이를 닮은 나에겐 나의 행복, 마음챙김 만큼이나 나의 영역, 공간에 대해 느끼는 안정감 역시 중요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나에게 적절한 밸런스를 다시 찾아야 했다. 아니면 집사나 고양이 어느 한 쪽에선 불안하다고 혹은 불행하다고 또 난리가 날테니까. 길고양이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하고 알아보면서 한편으론 오늘의 행복을 챙겨봐주어야 했다. 


 이런 식으로 어느 정도 나만의 기준을 정하고 돌아보니 기존에 저축이나 내집 마련을 위해 찾아보고 맹신했던 유튜브들은 나에게는 좀 극단적이고 버겁게 느껴지는 면이 있었다. 시야를 넓히고 좀더 다양한 관점을 참고하고 '정답' 보다는 나에게 좀 더 괜찮을 만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는 흑백논리로만 세상을 보던 오랜 습관을 먼저 버려보기로 했다. 나를 다시 관찰해보면서 알게 된 바, 나에겐 '가장 효율적인'(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나에겐 버거운) 방식보다는 좀더 유연한 방식이 필요했다.  


 여러 영상들을 보다보니 절약은 철학의 문제라고 하던데, 나의 철학은 아직 그런 상태가 아닌가 보다 싶었다. 나는 먼저 지금의 내 상태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전의 내가 한참 지향하고 노력하고자 했지만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 방식을 통해서는 행복하기가 어렵단 사실을 먼저 인정하기로 했다.(내가 바라던 내 모습과는 달리.) 그렇다면 지금의 행복을 지키면서 미래를 생각했을 때도 만족스러운 방법은 뭘까. 경제적인 문제들과 마음챙김에 관하여 몇몇 영상을 보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살펴보고자 했고 앞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정립한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책들을 훓어보았다. 그 결과 결론적으로는 가장 무난하고 쉬워 보이는 방법을 먼저 실험해보기로 했다. 중간에서 만나기. 즉 절충하기.    


1. 나에게 바라는 것의 반 정도를 들어준다. (이번 달에 가지고/하고 싶은 것이 2개라면 그 중 정말 원하는 것 1개만 소비한다.) 

2. 나머지 반은 모은다. (쓴 만큼 저축한다. 즉 무언가 썼다면 다른 부분을 줄이던 다른 방법을 찾던 같은 양만큼 저축한다.)

3. 2번으로 미래 대비가 가능하도록 현실적인 방법을 계속 공부하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경제 공부와 자기개발 꾸준히 하기.)


 이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돌아가야 하는 길이겠지만 일단은 이렇게 가보기로! 이젠 무조건 가기 보다는, 빨리 가기 보다는, 남의 걸음을 쫓아가다 자꾸 넘어지고, 남보다 느린 내 걸음을 자책하기 보다는, 온전한 내 보폭으로 가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즐겁게 걸어 나가고 뛰더라도 내가 뛸 수 있을 때, 원할 때 진심으로 뛰고 싶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잘 채우고 나를 들여다보고 방법을 수정하면서 나에게 맞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다 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좀더 행복한 방향과 더 즐거운 걸음, 더 적절한 보폭을. 그리고 그 매일의 걸음으로 근육이 늘고 힘이 붙어 내일은 보다 중심을 잘 잡을 수 있기를, 집 사는 집사가 되어 좀더 가뿐하고 행복하게 걸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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