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딸의 사랑법 2

엄마, 차라리 거창한 걸 바라지 그랬어. 그럼 좀 덜 속상했을까.

by Song Greem



어린 날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으레 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할머니가 손수 차려주신 음식들, 더 먹으라는 잔소리, 김치 가져가라는 성화. 투박하지만 정 많은 할머니와의 돌이켜보니 따뜻한 추억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의아하고 신기했다. 나는 할머니께서 직접 해주신 음식을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주로 먹었던 건 삼촌이 주문해준 배달음식이었다.


어느 정도 자란 후부터 남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대체로 비슷하다. 명절에는 식사는 다 하고 늦게 오라고, 차나 한잔 하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 어린 손주들이 용돈을 모아서 립스틱을 사가면 색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다른 걸로 바꿔오시는 분. 그게 어린 나이에는 어찌나 민망하고 섭섭하던지. 그렇다고 무서운 분은 아니셨는데, 평생 화 내시는 건 본 적도 없거니와 말투는 언제나 상냥하셨다. 그러나 그게 타인에게 무척 무관심하기에 가능한 태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건 내가 좀더 자란 후였다. 내가 성인이 된 만큼 연세가 더 드신 할머니는 귀가 많이 어두워지셨다. 모두가 정상적으로 대화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자 보청기를 맞춰드렸는데 두어번 착용하신 후로 다시는 착용하지 않으셨다. 불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일년에 몇 번 되지 않는 가족 모임에서도 할머니는 보청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점점 더 우리와의 대화에 답을 하지 않으셨고 본인이 원하는 바만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때서야 그간 느꼈던 괴리감의 이유를 깨달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상냥하셨지만 한번도 우리의 일상이나 안부, 우리의 구체적인 소식을 물으신 적이 없었다. 귀가 불편해지시기 전에도. 우리가 했던 대부분의 대화는 할머니의 원하시는 바에 대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자식이나 손주들의 소식을 궁금해하신 적이 없었다


어디가 아프셨냐 하면 그건 아니다. 할머니는 귀가 조금 어두우신 것만 빼면 건강하셨다. 그 연배에 흔한 질환 하나 없으셨고 자세는 곧았으며,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할 정도로 곱고 정정하셨다. 생계 외의 일에 관심을 쓸 수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냐고 하면 그도 아니다. 할아버지는 유능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밤낮없이 일하신 덕에 외가는 굉장히 여유로운 편이었다. 할머니는 평생 한 번도 바깥일을 해보신 적이 없으셨고 관심도 전혀 없으셨다. 건강 문제 하나 없는 굴곡없는 인생과 유복한 환경. 그럼에도, 그저 본인 외에 세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 그래서 조금은 무디고 차가운 사람. 어릴 적부터 내가 본 할머니는 그랬다. 자식보다도 예쁘다는 손주에게도 그런 분이셨으니 자식에게는 어떠하셨을지 알 만하지 않은가. 그래도 모녀가, 온 가족이 비슷했다면 그다지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인간관계는 대체로 케미가 문제이니까.


모든 불행의 시작이 그렇듯 사소해보이는 우연이었다. 할머니의 첫째 딸인 우리 엄마가 할머니와는 상극이었던 할아버지를 닮은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남다르게 쿨했던 할머니와는 정 반대다 싶을만큼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은. 사랑의 그릇을 크게 타고난 엄마와 타인에 대한 사랑이 유달리 적은 할머니. 어리고 젊은 날의 엄마는 사랑받기 위해 나이에도 맞지 않는 노력을 수도 없이 했지만 둘은 아주 다른 성질의 사람들이었고 그런 노력들은 할머니의 마음에 닿지 못했다. 노력에도 변치 않는 할머니와 그들의 독특한 모녀관계는 엄마를 끝없이 외롭게 했다. 외로움과 같은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어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내가 보아온 바, 할머니는 거의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엄마는 점점 대화해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는 말을 참고 삼키는 게 습관인 어른으로 자랐다.


별 것 아닌 것 같던 우연한 조합이, 글로 적으면 그래봤자 몇 줄의 문장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그 특이점들이 엄마의 평생을 결정지었다. 평생 사랑을 갈망하지만 그만큼 두려워해야 하는 삶, 인간관계에 대해 기대하지 않고, 갈망하는 것은 쉬이 포기하고 마는 삶으로.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혼자 속으로 삭이는 것이 더 익숙한 삶으로.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말로 퉁치고 넘어가기에는 한 어린 아이가 견디기에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리하여 엄마의 삶에 대해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희생과 헌신' 같은 것들이되었고, 엄마가 입버릇처럼 자주 쓰는 말은 '나는 괜찮아.'가 되었다. 평생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해온 엄마는 '그런 삶으로 인해 얻은 것들도 많으니 되었다.'라고 말하지만, 그럴리가. 항상 희생하는 것, 타인을 우선시 하는게 익숙한 삶, 어지간하면 괜찮다며 인내하는 것, 그런 것들이 마냥 괜찮은 사람이 세상에 있을리가. 엄마를 아는 나는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런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그걸 괜찮다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기나긴 시간이 있었을지. 거기에 엄마의 잘못은 없었을텐데.


좀 더 정서적으로 따뜻한 집에서 태어났으면 참 좋았을 것을. 예쁨 많이 받고 조잘조잘 다정한 이야기들을 떠드는 아이로 자라서 사랑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엄마가 나한테 그래주었던 것처럼, 그런 것들을 본인도 받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상상을 하다보면 으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종종 들었던 할머니와 비누 이야기. 엄마는 섬세한 사람이고 향 좋고 아기자기한 것들, 모든 예쁜 것들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이모 말로는 어렸을 때도 똑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엄마가 소망했던 것들은 대체로 예쁘고 소소한 것들이었다. 하얀 옷, 친구들처럼 긴 머리, 향 좋은 비누. 너무 소박해서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들. 차라리 너무 거창한 걸 바라는 바람에 할머니가 들어주지 ‘못’했던 거라면 그 소망들이 오히려 덜 상처가 되었을까. 할머니는 엄마의 머리를 항상 귀 밑 칼단발로 자르게 했다. 좋아하는 김밥은 소풍 때도 잘 싸주지 않으셨고 하얀 옷은 한번도 입혀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늘 쓰던 기본 비누말고 다른 비누를 사주면 안되냐는 말에는 '굳이?'라고 하고 한번도 바꿔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이유는 한결같았다. 굳이? 귀찮으니까 혹은 힘드니까. 어린 딸 아이가 애정을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 아무리 졸라도 예외는 없었다.


사소한 부탁조차 매번 거절만 당하던 어린 엄마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여러가지 가정을 했다. '내가 모르는 집안사정이 있나보다.', '엄마에게 힘든 일이 있나보다.' 같은. 할머니가 신경 쓸 일이 줄어들고 여유가 더 생기면 관심을 가져줄까 해서 초중생 무렵부터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 하시는 분의 일까지 신경썼다고 한다. 그러나 영민한 머리 탓에 집안상황을 조금만 관찰해봐도 알 수 있었다. 집안은 딱히 사정이랄 것 없이 유복했고 할머니는 대체로 시간이 많았다. 할머니에게 없었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었다.


엄마는 점점 할머니와의 대화를 포기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할머니는 남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는 것에 비해서 부탁은 쉽게 하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부탁받은 것들을 그저 묵묵하게 도왔다. 자신과 같이 관심을 받지 못하는 동생들이 안쓰러워 부탁받지 않은 일까지 챙겼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는 관심과 애정을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 채. 할머니가 동생을 목욕시키라고 하면 동생을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딸을 데리고 온 다른 집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향 좋은 비누를 빌려 썼다. 동생을 데리고 온 어린 아이의 부탁에 웃으면서 빌려주는 아주머니들을 보면서 엄마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쉬운 일이 우리 엄마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고. 산뜻한 향을 맡으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을 엄마를 상상하면 마음이 아프다. 엄마에게는 할머니가 사주지 않은 비누가 고작 비누 하나가 아니었을 것이다. 비누 하나로 섭섭함을 느끼기 까지 이미 수많은 거절의 기억들이 쌓여있었을테니.


내가 아는 한, 그 상처들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은 나일 것이다. 엄마는 남에게 좋지 못한 이야기를 잘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엄마의 상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가끔 마음이 답답하고 조급해진다.


그런 상처를 더 좋은 것들로 덮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엄마의 시간은 이미 내 시간보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 안아주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삶에 대한 나의 이해도와 포용력이 모자란 것 같아서. 이제라도 허전하고 외로웠던 기억을 좋은 기억들로 매워줄 수 있음 좋을텐데. 충분한 만큼 잘 전해지고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다. 나 또한 엄마와는 또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의 표현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너무 한참을 돌아온 것 같지만, 앞선 1편에서 이야기했던 선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아무튼 이런 생각들을 하다보면 엄마 선물로 고민을 할 수 밖에…-

담고 싶은 말이 많다보니 고민만 길어지고는 하지만 결국 내가 바라는 건 하나다. 엄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켜주는 것. 그런 표현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자주 잊어버리는 것 같지만. 삶에서 본인보다 남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익숙한 엄마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엄마도 우선순위가 될만큼 소중한 사람일 수 있다고. 그 누군가가 꼭 엄마의 ‘엄마’는 아닐지라도. 그래서 언제나 선물에 담아 가장 전해주고 싶은 것. 내가 세상에서 -적어도 누군가의 세상에서는-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감각. 모든 어린이가 -엄마 또한- 느꼈어야 했는데 어린 날의 엄마는 느끼지 못했을 감정들. 자신은 잘 알지 못하면서도 나에게는 어떻게든 알려주고 싶어 애썼던 감정들. 그걸 엄마 마음 속에 남아있을 엄마의 어린 날에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열심히 고민하던 중이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발견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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