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글

거센 바람에는 종달새도 흔들린다(3)

제주 여행에서 쓰는 글

by 단순생각



Day3.



아침부터 바람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원래는 동행들과 함께 우도에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풍랑주의보 때문에 배는 뜨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계획을 바꾸어야 했다. 다행히 우도에 함께 가기로 했던 동행들이 함께 여행하자며 이끌어 준 덕에, 차도 없는 뚜벅이가 비자림에 다녀오게 되었다.

비가 온 후에 풀내음이 짙어져 더욱 운치가 좋고 맑다는 비자림. 비자림에 그득한 비자나무는 이파리가 '아닐 비'자를 닮아 붙은 이름이라 했다. 비자림에는 비자나무 외에도 말오줌나무 등 많은 나무가 있었는데 왜 굳이 말오줌나무만 기억에 남나 모르겠다. 문지르면 말 오줌 냄새가 난다며 나무를 슥슥 문지르던 동행 생각에 더욱 그런가.

참으로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혼자만 하던 여행이 사색적이었다면 함께 하는 여행은 웃음의 연속이다. 혼자 생각할 것이 많아 시작한 여행이었는데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웃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함께 여행할 사람을 구하는구나 싶었거든.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데 어쩜 겹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예전엔 새로운 사람을 무작정 경계했다. 접해보지 않은 유형의 사람은 더더욱. 경험이 부족한 내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말도 잘 섞지 않으려 하고 일부러 피하고 그 사람의 외적인 단면만 보고 단정 짓기 일쑤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나쁜 버릇인데 그땐 그랬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지금 알고 있는 사람들도 벅찼고 새로운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며 관계를 맺는 일이 버거웠으니까.

여행 때 읽었던 책 <관계를 읽는 시간> 때문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관계의 '틀'은 규정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득도, 실도 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실제로 그래 왔고 말이다. 최근엔 단순히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것을 떠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런 때일수록 새로운 사람에 대한 경계를 풀고 받아들일 줄 아는 포용력이 필요할 것 같다. 사람 관계야 말로 물질적으로 규정할 수 없기에 특히, 생각하기 나름이다.





처음 만난 이들에게 전날 마음에 들었던 식당 '릴로'를 소개했다. 어제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자니 마음이 들떴다. 다행히 동행 일원 모두 릴로를 마음에 들어했고 심지어는 또 생각날 것 같다며 감탄해주어 고마웠다. 식사가 끝나고 나서는 동행들과 헤어져 혼자 하는 여행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카페를 찾아 나섰다. 정확히는 동행 중 한 분이 차로 데려다주셔서 카페에 가는 길은 훨씬 수월했다. 정말 감사하다!

홀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일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평소엔 게으름을 피우며 집 앞 카페에조차 제대로 나가길 어려워하는데, 반성한다. 이 날은 좋은 책, 즐거운 음악, 맛있는 커피에 아름다운 바다 풍경까지 더해져 금상첨화였다. 비록 거센 바람에 몸 하나 제대로 가누기 어려워 바다 앞에서의 사진은 못 찍었지만. 기회는 많으니까 괜찮다!





마지막 밤이라 생각하니 근사한 곳에서 진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하도리에 있는 식당, 그 이름도 특이한 '얼랑핀칙하도야'다. '얼랑핀칙'은 제주도 방언으로 '찬란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에 지명인 '하도(리)'와 일본어로 집을 뜻하는 '야'가 더해진 이름이 바로 얼랑핀칙하도야다. 일식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이름에도 일본어가 들어간 듯하다. 결론적으론 아늑한 분위기에 정말 맛있었던 한 끼 식사였다. 혼자 하는 식사라 먹고 싶은 음식을 두 가지 모두 시켰더니 많아서 절반은 남겼지만, 기꺼이 포장해주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남은 음식은 숙소에 돌아가 야식으로 맛있게 먹었단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그 어느 때보다 바람이 거셌다. 제주의 바람은 이런 것인가. 어찌나 거센지 하늘을 나는 종달새조차 위태로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옆에 있는 전봇대와 그 위의 표지판까지 이리저리 흔들린다. 바람은 지나가는 나그네 옷도 벗긴다고 하였던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도 거친 바람에는 맥을 못춘다. 바람 때문에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었던 이 때, 흔들리는 모든 것들에 심심한 위로가 느껴졌다. 흔들리며 자라는 풀잎이 당연한 것이라 말하던 어느 시 구절이 생각나서일까. 불현듯 매일같이 다양한 바람에 흔들리는 내가,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만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흔들리는 바람에 싱숭생숭, 생각이 많아졌던 셋째 날 밤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날 함께했던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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