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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Nov 24. 2019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래서 저는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밀란 쿤테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하필이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독파를 마음먹고 처음 집어든 책이 이거였다. 모든 문장을 이해하며 읽기에는 너무나 어려웠고 특히나 첫 장이 제일 고비였다. 그 부분을 넘기면 조금 낫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발췌해 보자면,


뒤집어 생각해 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 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묵직함은 진정 끔찍하고, 가벼움은 아름다울까? 가장 무거운 짐이 우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휘게 만들어 땅바닥에 깔아 눕힌다. 그런데 유사 이래 모든 연애 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하중을 갈망헀다. 따라서 무거운 짐은 동시에 가장 격렬한 생명의 완성에 대한 이미지가 되기도 한다.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우리 삶이 지상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 삶은 보다 생생하고 진실해진다.


나는 아직도 저 문장들을 100%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나마 세 번 네 번 읽고 나니 아주 조금- 와 닿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토마시와 테레사, 그리고 사바나와 프란츠 네 남녀의 이야기이다. 사랑과 섹스를 별개로 생각하던 토마시와 사랑을 갈망하던 여자 테레사가 만나면서 그 주변 인물인 사바나와 프릳츠의 이야기로까지, 이렇게 서사를 이어나가기도 쉽지 않을 텐데 책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유연하게 넘나 든다. 마냥 사랑 이야기라고만 볼 수 없는 건 이 책의 배경이 체코의 민주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이기 때문이다. 밀란 쿤테라는 자유에 대한 갈망, 공산주의로의 탈피를 꿈꾸며 거리로 나왔던 체코의 젊은이들과 같이, 필연적으로 무거울 수밖에 없던 시대의 단상을 개개인의 인생과 결부시키며 인생의 가벼움(혹은 무거움)으로 풀어낸다.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기에 삶은 항상 밑그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밑그림'이라는 용어도 정확하지 않은 것이, 밑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초안,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토마시는 독일 속담을 되뇌었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일원이면서 동시에 개인이다. 내 삶의 행복이 사회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행복은 사회의 행복에 영향 받는다. 누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존중받기를 원하며 동시에 자유로운 개인이길 바란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 안에서 구속당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그것이 죽음에 대한 선택일지라도 우리는 타인의 선택을 비난하거나 거스를 권리가 없다. 그러니 진정 사랑한다면 그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아야 한다. 당연한 진리가 이렇게 도출되다니! 우연으로 가득한 한 번 뿐인 삶이 진정 한 번뿐이라면 인생의 무게는 절로 무거워 질 것이다. 이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표방하고 있는 욜로(YOLO) 사상과는 정반대인데, 무엇이 옳다고 이야기하긴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변함없이 진리인 것은 한 번뿐인 인생의 하루는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그 안에서 타인과 공유해야만 하는 사랑의 감정은 참으로 미묘하다. 한 순간에 사랑했다가도 한 순간에 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밥 먹는 모습이 '처먹는 것'처럼 보이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라던 우스갯소리가 생각난다. 근데 진짜다. 밥 먹는 게 '처먹는 것'처럼 보이면 일순간 상대는 나에게 이성이 아니게 된다. 아래는 순서대로 프란츠와 사바나의 대화, 그리고 토마시의 사바나의 사랑에 대한 서술이다. 나는 이 책에서 유독 사바나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는데 사랑에 있어 본인이 주체가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신 힘을 가끔 내게 쓰지 않는 이유가 뭐야?" "사랑한다는 것은 힘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지."라고 프란츠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비나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첫째, 이 말은 아름답고 진실하다. 둘째, 이 말 때문에 프란츠는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굳이 해피하지도 않은 책의 엔딩 부분을 읽으며, '그래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했다. 지나가는 일 분 일 초가 아쉽게 느껴지자 급기야는, 매일은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흘러가듯이 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나중이 되어 한 번 더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또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심오하고 어렵지만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명작은 명작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인간의 시간은 원형으로 돌지 않고 직선으로 나아간다. 행복은 반복의 욕구이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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