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사원 Jul 14. 2019

아이에서 어른으로, <관계를 읽는 시간>

사랑받아 마땅한 우리니까요




관계를 읽는 시간


간혹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데 있어 '버겁다'는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어른이 되고 내가 스스로 돈을 벌게 되면서 나름의 독립심이 생기고 나니, 더욱 그렇다. 친구, 연인, 부모님 심지어는 직장 동료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가 버겁게 느껴질 때 이 책을 만났고 읽게 됐다. 그것도 급하게 온 이 곳, 제주도에서! 이즈음 나는 엉망진창인 마음으로 나 스스로를 자책만 할 줄 아는 못난 인간이었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샅샅이 파헤쳐 재단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살아온 세월은 삼십 년이 채 안 되겠지만, 그래도 꽤 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성격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편이라 자부했다. 나는 의존적이고 자존감이 낮은 대신 책임감이 높고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약간의 동기부여만 있으면 불도저처럼 내달리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에 의한 작은 상처에 취약해 우울해지기 쉽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만큼 회복도 빠른 편이라 혼자만의 시간 며칠이면 금세 돌아온다.


나는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으면서 남에게 의존적이었던 못난 성격 하나만큼은 많이 고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에서 가장 아차, 싶었던 부분은 나의 관계가 아이-어른의 관계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던 순간이다. 아이는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때를 쓰거나 있는 힘껏 토라지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른은 다르다. 나는 가끔 몸만 어른이지 아이처럼 토라지거나 칭얼대고 싶을 때가 있었거든.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 자꾸만 의존적으로 굴었던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나는 그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9p.

그것은 '관계의 틀' 때문이다. 일정한 모양의 빵을 계속 구워내는 빵틀처럼 인간관계에는 틀이 있다. 이 틀로 말미암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비슷한 관계방식을 되풀이한다. 문제는 그 기본 틀이 어린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기본 틀은 '아이-어른'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기에 '어른-어른'의 관계에는 맞지 않는다. 우리는 어른이 되면서 '아이-어른'의 관계 틀을 '어른-어른'의 관계 틀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관계 손상을 겪은 사람들의 기본 틀은 잘 바뀌지 않는다. 해결되지 못한 감정과 신념 그리고 애착, 갈망 등이 그 기본 틀을 붙들어 매고 있는 데다가, 그 틀 덕택에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관계의 소유욕


연인과 만남을 가지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학창 시절엔 친한 친구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상대방이 힘들면 나도 힘들어하며 함께 부둥켜안고 우는 것이 진짜 관계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착한'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친한 친구가 있어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관계 속에서의 공허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나 스스로 나에게 느끼는 자기 결핍이 공허함을 낳은 것이기에 단순히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고 아껴준다고 해서 나의 공허함이 채워지지는 않았겠다. 관계의 소유욕이 깊어지면 질수록 상대방에 대한 실망감도 커진다. 나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사랑은 그 어디에도 없는 것만 같다. 그러나 실망감도 잠시, 새로운 사람에 기뻐하며 또다시 사랑해달라 애쓰는 사람, 그것이 바로 나였다.


인간관계에 필요 이상으로 매달리지 않으며 스스로 기쁨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 말로 건강한 정신상태를 가진 어른이다. 타인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 공간 이상의 바운더리를 인정하고 그 간극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하는 것과 건강한 인간관계의 바운더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이 정신은 어떻게 보면 일맥상통한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사랑받을 것인가는 개개인의 태도가 결정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각자의 정의가 살면서 받게 될 사랑의 크기를 결정한다. 건강한 나와, 나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랑하고 사랑받고 또 사랑할 것이다. 복잡한 관계 속 혼란스러운 누군가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2019.06.07 제주도에서 씀.




매거진의 이전글 고작 스무여섯해 살고 염병하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