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사원 Jun 16. 2019

고작 스무여섯해 살고 염병하지 말자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막례 할머니 유튜브는 거의 초창기부터 챙겨봤다. 할머니 채널이 커가는 것을 지켜봐 왔고 할머니도 할머니지만 그의 손녀 유라씨도 참 대단하다 생각해왔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봐 온 두 사람이라, 할머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꼭 사서 읽어야지 했다. 신여성 일러스트를 패러디한 책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영상으로 보는 것 이상의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퇴근길에 산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는 앉은자리에서 두 시간 만에 다 읽었다. 첫 장에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단숨에 읽은 책은 실로 오랜만이다.


할머니의 유튜브 채널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며 부끄럽지만, 할머니의 삶도, 유라씨의 삶도 특별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들은 여건이 되니까, 특별하고 '다른' 사람이니까 렇게 살아서 이렇게 성공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곁눈질로 본 그들의 삶은 어느 집에서나 있을 법하게 지극히 평범했다. 치매 위험이 높은 할머니에게 살아야 하는 의미를 주기 위해 시작한 둘만의 여행. 만약 내가 유라씨였다면, 나는 할머니와 호주 여행은커녕, 여행 영상도 만들어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올렸다 한들 한 번으로 그쳤을 것이고, 아니 애초에 할머니와의 여행이나 그 여행을 위한 과감한 퇴사를 결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 또래의 유라씨는 참 멋지다. 결심한 것을 목표로 세우고 게임하듯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그녀가 참 신기하다.





이렇게나 멋진 손녀 뒤엔 더 멋진 할머니가 있었다. 칠십 이전, 할머니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그저 일만 하다가 옘병할 남편에게 시집을 가서 또 일만 했다. 기껏 자리를 잡나 했더니 사기에 휘말리고, 사람 인생이 이렇게 꼬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할머니의 인생은 비참했다. 이런 할머니의 인생 칠십이 지나고부터 백팔십도로 바뀌었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몰랐던 것들을 새로 경험하면서 할머니는 그야말로 제 2의 인생을 사신다.


할머니나 할머니와 함께하는 유라씨의 인생이 부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만 보이는 유튜버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들이 공짜 세계여행을 다니는 것이 부러운 게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부러움을 느껴야 한다. 내가 요즘 들어 자꾸만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멋지게 퇴사할 수 있는가'이다. 퇴사야 예전부터 쭉 하고 싶었던 건데, 누가 뭐래도 멋지다 소리가 나올 만큼 본새 나게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아무런 보람도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서른 살을 넘기기엔 무언가 아쉬운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귀찮다고 깔짝대다 말 뿐이니, 입사 이후 내 인생은 그저 제자리인 것 같단 말이지. 부끄럽게도 뭔가 시도해서 세 달 이상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정기적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그나마 규칙적이고 장기적인 취미생활 중 하나다.)


바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징글징글한 회사에서도 매출 달성을 위해 뭐라도 실행하자고 난리다. 하물며 내 인생은? 경험할 수 있는 것 천지인데 나는 이틀뿐인 주말이 소중하다며 그 시간을 뒹굴거리는 데 허비한다. 그렇다고 쉬지 말자는 건 아니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것 아니냐는 말이다. 무언가 대단한 걸 해야 하는 건 아니다. 하루에 한 부분이 조금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의 질이 달라진다. 하다못해 방 청소만 해도 사람이 달라지는데 말야. 내 모토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는 것.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하루에 하나씩만 나아가자는 것.





할머니가 못난 남편을 만나 한 평생 고생한 이야기에서 울고 웃으며 얻은 교훈은, 옘병할 남편 만나 인생 조지느니 능력 있으면 멋지게 혼자 살자는 거다. 물론 난 아직 결혼에 대한 건 너무나 멀게 느껴지고 할지 말지 어떤 사람과 할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놓은 것도 없다. 그래서 감히 할머니 말씀의 핵심은 이런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후회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기회는 온 줄 모르게 누구에게나 오니까!


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끝낼 순 없다. 고작 스물몇 해 살고는 힘들다고 염병하지 말자.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산더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소설을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