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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사원 Nov 28. 2022

트렌드 코리아 2023, 현직 마케터의 생각 더하기1



작년엔 트렌드 코리아 2022를 읽지 않았다. 매년 10월, 트렌드 코리아에서 정해주는 키워드에 맞춰 '내년은 이럴 것이다'라고 재단해보는 게 오히려 사고의 한계를 정해버리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뭔가 달랐다. 삼십 대에 접어들면서 자칫 트렌드에 뒤쳐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보면 '벌써 그러면 어쩌냐'라고 한 소리 하실지 모르겠지만, 2004년에 태어난 막내 동생과도 슬슬 심리적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부정할 수 없는 세대차이라는 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 사실이다.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를 Gen Z (Z세대), 2010년 이후에 태어나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화된 아이들을 알파 세대로 부른다 한다. 나는 '90년대생이 온다'의 그 당차고 무서운 90년대생으로, 8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들과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고충을 나눌 수 있으며,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친구들과도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어려움을 공감할 줄 아는 밀레니엄 세대이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나 자신을 중시하는 세대'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친구들 몇 명만 돌아보아도 그런 친구도, 그렇지 않은 친구도 수두룩하니, 태어난 년도에 따라 특징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혈액형과 별자리로 사람을 나누던 그때 그 90년대에서, 처음 만난 사이에도 MBTI를 물으며, '앗, 전혀 I로 안 보이는데요.', '전 완전 J 인간이예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요즘. 다가오는 2023년의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게 될지, 트렌드 코리아를 통해 엿보며 현직 마케터로 종사하고 있는 나의 생각들도 조금씩 더해보고자 한다.






평균 실종

'반드시 ~해야 한다.'는 개념이 사라지고, 연령, 성별, 소득 수준에 따라 나누어지던 삶의 모습이 다변화되고 있다. 공대를 나와서 식당을 하는 사람, 수학을 전공하고 소설을 쓰는 사람,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한순간 인플루언서가 된 대학생. 오히려 관심 분야를 넓혀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을 때 그 특이성을 이유로 더욱 주목받는 요즘이다. 맛집은 '나만 아는 곳'일 때만 맛집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예약조차 힘든 곳은 더 이상 특별함이 없다. 이렇듯 A는 B일 것이다라는 '평균'이 사라진 요즘, 대기업들은 세분화된 개개인을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누구에게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비치어질 것인지 보다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호불호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불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어쩌면 도박처럼 마케팅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실패의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기업들은 더욱 치밀해지고, 소비자들은 타인과 다른 나만의 취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호불호의 벽을 딛고 성공을 거머쥔 브랜드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델 제니와 함께 '힙'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는 한국 토종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이다. 이제는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 잡은 젠틀몬스터는 명품 그 자체로 발돋움하기 위해 고객과 스스로 거리두기를 자처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거리를 둠으로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의 대상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은 살아남기 힘든 요즘, 신비하면서도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꽤나 합리적인 가격대의 젠틀몬스터의 전략은 시장을 관통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소비자들까지 젠틀몬스터를 '힙'한 브랜드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나 구매할 순 있지만 소비하는 순간 왜인지 아무나가 되지 않는 '힙'한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반대로 푸근하고 정 많은 프랜차이즈의 모습으로 가성비 갑 브랜드로 포지셔닝된 브랜드도 있다. 바로 백종원의 푸드 브랜드들이다. 백종원은 TV 예능을 통해서도 서민들을 생각하는 외식업계 큰손으로 줄곧 포지셔닝해왔다. 죽어가는 서민들에게 본인만의 외식 노하우를 거리낌 없이 알려주던 <골목식당>에서의 모습과, 팔로워 560만(22년 11월 기준)을 거느린 대형 유튜버로서 집밥, 캠핑, 술안주 등을 척척 만들어내는 자취생의 교과서까지 우리는 모두 '백종원'하면 푸근하고 인상 좋은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 덕분에 그가 운영하는 '더본코리아'의 프랜차이즈도 비슷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설사 맛이 기대보다 덜 할지라도, 이 정도 합리적인 가격에 푸짐한 한 끼 식사라면 그럴 수 있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백종원은 '빽보이피자'와 '고투웍'을 통해 피자와 중국음식으로 브랜드를 넓혀 나가고 있고, 성공 여부를 떠나 그의 행보들이 외식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앞으론 더더욱 예측 불허의 시장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전체 시장 흐름을 가늠해보며 트렌드를 한 발 크게 앞서 나가는 것이 대세였다면, 이제는 소비자 개개인의 심금을 울리며 작지만 강하게, 소리 소문 없이 확실한 취향을 공략하는 브랜드들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오피스 빅뱅

첫 직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송사원은 나중에 우리 회사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될 것 같아.' 처음엔 그냥 칭찬인가 했는데, 일을 하면 할수록 말속에 숨은 뜻을 이렇게 해석하게 되었다. 1. 우리 회사엔 여성 임원이 없다. 2. 임원이 되려면 최소 15년 이상은 이 회사에 몸담아야 한다. 

나는 꿈에 그리던 첫 직장에서 4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할 땐 그 정도 경력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거라며,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를 너무 쉽게 버린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 1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퇴사한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새로운 직무,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접하며 스스로 더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이직시장에 내던져졌을 땐 너무나 짧은 경력으로 헤매는 것이 아닌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는데, 나보다 적은 연차로도 이직 횟수를 늘려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과감하게 퇴사를 먼저 결정하고 충분한 휴식을 통해 다음 진로를 고민하는가 하면, 마음 맞는 사람들과 새로운 사업, 또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어느 조직에 소속됨 없이 자신만의 특기와 경험을 쌓아나가기도 했다. 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를 들어 '오피스 빅뱅'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시대 '오피스'의 개념이 붕괴되기 시작한 것은 업의 개념이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돈을 벌고 살아가기 위해 어차피 일을 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재밌고 즐겁게 하고 싶은 욕구가 폭발한 것이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게 직장인이라는 밈까지 유행하며 매일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일하는 사람도, 고용하는 사람도, 몇 년 뒤 사회에 나와야 하는 청소년들부터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가.' 기민해져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곧 이제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도전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보다 먼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 건지도 모르겠다.




체리슈머

얌체 같은 소비자를 들어 '체리피커'라고 부르곤 했다. 체리슈머는 체리피커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한정된 자원을 활용해 알뜰하게 소비하고 실속을 챙기는 이른바 '똑똑한 소비자'들을 일컫는다. 단순히 '할인' 프로모션에 목을 매는 소비자들이 줄었고, 할인 프로모션으로 특정 제품을 소비자더라도 일시적인 소비에 그칠 뿐 장기적인 소비로 이어지기는 어려워졌다. 나 또한 '한 달 체험'으로 OTT 서비스에 가입했다가, 보고 싶은 드라마만 보고서 구독은 하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리슈머> 트렌드를 읽으며, 현직 식품업계 마케터로서 안타까웠던 것은, 가격 경쟁에 목맬 수밖에 없는 유통 구조와 변화하기 어려운 기업 구조였다. 특히 국내에서 대형 유통 업체에 물건을 납품하기 위해서는 가격 경쟁력이 필수 불가결한데,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체리슈머 성향이 유통업체발 가격 경쟁에 불을 붙였다. 매출이 잘 나오는 것이 곧 유통사가 원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기업은 대량으로 생산한 무언가를 최대한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영혼이 갈리는 마케터들의 삽질이 시작된다. 최근의 소비재들은 너무나 '고객 중심화' 되어 있어서 타깃으로 하는 고객만큼이나 세분화되곤 한다. 대부분의 기업은 트렌드를 주도하기보다는 따라가는 것에 가깝기 때문에, '뭐 하나는 터져주기'를 바라며 포장지만 조금씩 바꿔가며 문어발식 생산을 하기 시작한다. (동일 브랜드 내 다양한 라인업이 즐비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무작정 이러지 않기 위해선 제품의 설계 단계부터 뾰족한 마케팅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제조업에 기반할수록 '많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종국에는 최대한 넓고 보편적인 고객층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또한, 2~3년 전만 해도 값싼 가격만으로 소비자를 현혹해 사재기하도록 만드는 방식이 꽤나 먹혔던 터라, 그때의 성공을 눈앞에서 보았던 어른들을 설득시키며 변화를 주도하는 것도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가격 할인 프로모션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지만 오래 살아남는 브랜드일수록 가격에만 목매는 구식 전략은 더 이상 취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와 불경기를 동시에 겪으며 꼭 필요한 것에만 알뜰하게 소비하는 습관이 곧 좋은 소비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전의 생태계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50년, 100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기업들에게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인덱스 관계

친한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겠지만,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거세졌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굳이 매일 연락하고 살지 않아도, 서로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며 근황을 '확인'하고, 어떻게 지내냐는 대답에 '응, 너 인스타 스토리에서 봤어. 재밌겠더라'라고 대답한다.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고 기억한다는건 그만큼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트렌드 코리아에서는 인간관계를 '인덱스'로 분류하며 필요한 것들을 취득하는 요즘의 트렌드를 '인덱스 관계'라고 칭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덱스 관계의 핵심 축을 차지하는 소셜 네트워크는 관계를 맺고 싶은 사람과 맺고, 시차를 두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도 있는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자기중심적 매체이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18년만 해도 (고작 5년 전이다.) 비대면보단 대면 미팅이 확연히 많았다. 친밀한 관계가 되려면 대면하여 식사하는 자리가 필수였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이름만 아는 사이에 그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를 기점으로 만나지 않아도 안부를 묻는 것이 익숙해졌고, 친밀한 관계의 정의가 개편됐다. 만났다고 해서 친밀한 것도 아니고,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친밀하지 않은 것도 아닌, 인간관계의 복잡성이 증가한 것이다. 어쩌면 누구나 편의에 따라, 자신의 입맛에 따라 관계를 분류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끼리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 졌고,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인스타 스토리만으로 안부를 주고받는 것도 서운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 맺기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인덱스 관계가 오히려 편리할 수 있겠지만,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유대를 느끼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조금은 외로운 트렌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소셜 네트워크의 흥행과 동시에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싸이월드, 손편지, 스티커 사진 등)도 짙어지는 거겠지? 인덱스 관계가 절정을 치닫고 있는 요즘, 앞으로의 인간관계에서 어떤 것이 더욱 중요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자신만의 중심을 지켜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든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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