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땅이 굳듯, 배움으로 더 단단해진다
비 오는 날 접촉사고를 냈다. 초보 딱지를 떼고 운전에 자신감이 붙을 때쯤 사고가 난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자만과 한순간의 실수가 만나 앞에 있는 차와 부딪히고 말았다. 다행히 경미한 사고였고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놀라지 않았다면 허풍이다. 당시에는 나도 신기할 만큼 차분하게 보험사에 연락하고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했지만, 집에 돌아와 긴장이 풀리고 나니 미뤘던 당혹감이 밀려들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제야 내 상태를 알았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사실 많이 당황했고 무서웠구나.
앞의 앞 차가 좌회전 차선에 바퀴를 걸치고 있어 잠시 막힌 것을 못 참고 옆으로 차선을 옮기려다 속도와 타이밍을 조절하지 못하고 앞 차와 부딪힌 사건이었다. 사고가 난 순간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비만 오지 않았더라면, 브레이크를 밟은 지점이 과속방지턱만 아니었다면, 무엇보다 한순간의 판단 실수만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이런 후회가 쏟아지자 죄책감이 넘쳤다. 사고를 떠올릴수록 자책은 심해졌다. 그날 운전을 한 내가, 사고를 낸 내가 미치도록 싫어졌다. 감정의 고삐가 풀리자 나를 향한 질책이 몸과 마음을 후드려 팼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판단과 감정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자책같이 스스로를 향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자기장처럼 보이지 않지만 커다란 영향을 준다. 감정의 주인을 과거 실수에 묶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고 내면을 좀먹게 한다. '이렇게 했다면 나았을 텐데, 저렇게 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여기까지는 반성이다. 이유를 알았으니 다음에는 같은 실수 혹은 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은 나를 책망하는 순간 나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게 된다. 서퍼가 보드 위에서 파도를 타는 게 아니라, 파도에 휩쓸려 무너지는 격이다. 우리는 그 감정을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파도 삼아야 한다.
사람은 당장 잃을 것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재 50을 잃게 되면 30, 10을 잃거나 아무것도 잃지 않을 상황을 상상해 비교하며 50이나 잃었음에 슬퍼한다. 하지만 그 일은 사실 운이 좋아 50이지, 70, 90, 운이 더 나쁘면 100이나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50을 잃은 일이 다행으로 여겨진다.
코앞에 들이닥친 고난도 마찬가지. 더 큰 일로 번질 수 있는 것을 더 적은 값으로 치렀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나아진다. 더불어 이 일로 전에 없던 시각이 생겼다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면 그것은 그 사건이라는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들을 수 있는 인생 수업이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힘든 일을 겪을 땐 그로 인해 내가 깨달아야 하는 교훈이 있어 그 일이 내게 온 것이라 생각하라고. 이렇게 생각하니 몸이 가볍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눈앞의 고난은 지금 내가 꼭 배워야만 하는 것을 가장 이른 시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알려주는 고마운 신호이자 세상이 내게 주는 선물이다
이번 사건으로 나는 알찬 교훈을 보따리째 챙겼다. 운전은 잘해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기동성을 위해 하는 것이고, 언제나 앞 차와의 간격을 넉넉히 유지해야 하며, 운전대를 잡았다면 조급함과 서두름을 버리고 도착지로 가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자책하지 말자. 바로 잡아 다시 실수하지 않으면 된다. 또, 보험료 할증이 두렵지 않은 넉넉한 통장잔고를 구축해 두자. 마지막으로 지금 나빠 보이는 일도 사실은 내게 좋은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 최대한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자. 비가 온 뒤 땅이 굳듯, 흐린 날에는 저 멀리 걷혀가는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과 아름다운 무지개를 찾아 그곳으로 향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