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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소중한 사치

1. 홈카페

by 연하나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부자는 어떤 모습일까. 한 번도 부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오랜만에 들른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부자 되기 책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책의 제목들을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욕망은 부를 향해있다. 우리가 부자라고 부를 수 있는 척도는 대체 어느 정도 일까. 왜들 부자가 되고 싶은 거지. 고기 맛을 모르는 사람에게 고기뷔페를 가자고 하면 코웃음을 칠 듯 나에게는 부자라는 세계는 미지의 공간이다.

나는 단지 지금 집보다 조금 더 넓은 곳에 살고 싶었다. 기분이 내키면 그곳이 해외가 되었든 훌쩍 떠나보기도 하고... 해마다 유행하는 옷을 사서 옷장을 채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뭐랄까, 그 정도로 사치스럽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끔 트렌디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멋진 카페에서 먹고 싶은 빵을 쟁반 가득 담고 싶긴 하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의 R석에 앉아 관람을 하고 싶다. 청소도 빨래도 누군가 대신해줬으면 한다. 아. 그저 그 정도일 뿐이다. 대체 얼마가 필요할까. 그럼 나도 부자가 되고 싶은 걸까.

글을 쓰려고 앉은 몇분전 카페에 갈까 하다 월지출을 줄여야겠다는 다짐을 떠올리며 냉장고에서 오트음료를 꺼내 정수기 옆에 놓았다. 다이소에서 산 우유거품기를 꺼내 유리잔에 따라놓은 오트음료에 거품을 내었고, 커피 믹스 봉지를 뜯었다. 그렇게 나의 홈카페로 출근 준비를 완료했다. 카페에 가는 대신, 나는 이 작은 공간을 위해 조금씩 돈을 쓰고, 시간을 들여 꾸며왔다. 몇가지 인테리어 소품, 음질이 좋은 스피커를 구비했다. 홈카페, 왠지 외래어를 만들어 부르면 멋지게 느껴진다. 남편은 그런 나를 두고 허세라고 왜 집을 카페처럼 꾸미냐고 핀잔을 줬었다 .

달콤한 커피맛을 느끼며 요즘의 인스턴트커피믹스는 대기업 종사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만큼, 어느 카페의 커피 맛보다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몇해전부터 해외에서 국산 커피믹스가 성황리에 팔린다더니. 입안 가득 풍성한 거품으로 크리미 한 커피를 한 모금 하며 노트북을 켰다. 내 취향의 음악을 찾아 유튜브에서 음악을 감상한다. 유튜브 창에는 이미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남겨놓은 댓글로 감상을 나눌 수 있다. 그들의 글을 보며 역시 나의 선곡은 나쁘지 않았서라는 확신이 선다. 그루비한 음악을 들으면 자동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팝송에 겨우 아는 몇 줄 없는 가사를 서툰 발음으로 조금 흥 얼거려 본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눈치 볼 사람,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 홈카페만의 특권 아니겠는가. 집안에 가득한 음악과 커피 향, 추가 주문 없이 몇 시간이고 앉아있어도 양심에 잔가시하나 박히지 않는다.

한 해전 새로운 글을 쓰려고 기분 전환 삼아 집 근처 카페에 책 몇 권과 노트북을 챙겨갔다. 오전시간이었다. 한적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넓고 긴 테이블을 다른 손님과 공유하는 좌석에 앉아있었다. 집이 아닌 공간에서 주는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글을 쓰는데 몰두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심한 악취를 풍기며 아마도 땀냄새일 듯싶은데. 한 남성이 내 옆에 앉았다. 많은 자리들 중에 그 사람이 내 옆을 택한 건 나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책을 읽기에 다른 곳은 너무 조명이 어두웠으니까. 그는 무거운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노트북과 책을 꺼내 작업을 시작했는데 나는 그가 금방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봤다. 다른 자리로 옮길까 몇 분 고민하다가 굳이 시력까지 나빠지며 그곳에서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그는 같은 시간 그 카페를 이용한다는 걸 이튿날 같은 자리에 앉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설마 내일은 아니겠지 했지만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는 같은 시간 같은 냄새를 풍기며 앉았다. 카페에서 비싼 커피값도 문제겠이지만 불쑥 찾아온 불청객에게 내가 설계했던 시간이 무너져 내렸다. 아주 사소한 일이겠지만 나의 의지와 무관한 일은 누구에게나 열린 카페에서는 어떻게든 생긴다.


역시 홈카페다! 주머니 사정생각할 필요 없이 마음껏 리필해서 먹는 커피,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작고 소중한 공간, 나의 첫 번째 사치는 바로 홈카페를 차린 것이다. 돈이 들지 않는 안전한 대피소가 홈카페가 되는 근사한 공간을 내게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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