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드 세계일주 열일곱 번째 이야기
처음 세계일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의 목소리와 함께 또 한 편에서는 꼭 지금이어야만 하냐고, 하고 있는 공부를 다 마친 뒤에 떠나면 안 되냐는 걱정 어린 목소리도 들려왔다.
새벽 1시, 우리는 그렇게 전날 밤 결국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발 5,500m.
크게 숨을 내쉬어도 답답한 가슴, 생각보다 무거운 등산장비, 그리고 난생처음 신어보는 아이젠을 신고 꽁꽁 얼은 눈 위를 아이스해머로 찍으며 올라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머리 위로 쏟아질 것만 같은 별 아래, 칠흑 같은 어둠 가운데 내가 의지할 거라곤 내 머리 위에 달려있는 조그만 랜턴 불빛 하나와 내 앞 가이드 오비와 연결되어 있는 줄 하나가 전부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깊게 내뱉으며 우리는 그렇게 고요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오르는 중 도중에 고산병 증세 때문인지 몸의 문제가 생겨서 포기한 팀들이 내려오는 게 보였다. 나 또한 역시 전날에 한숨도 자지 못해 그런 건지, 아니면 고산병 때문인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심장이 더욱 쥐어짜듯이 아파왔다.
그리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를 앞질러 가는 팀과 또 산 너머 붉게 물들어오는 하늘을 보며 난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해가 뜨게 되면 눈이 녹게 되어 산 곳곳에 놓여있는 크레바스의 위험이 도사린다는 사실과, 또 나 때문에 우리 팀이 늦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일전에 고산을 여러 번 오른 경험이 있던 에르난은 나의 등 뒤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원래 너의 페이스대로 천천히 가자고, 포기만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고 연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렇게 장차 여섯 시간을 오비의 발뒤꿈치만 보고 따라 올라가다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오비의 말에,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끝내 내 두 발은 마침내 그곳에 서 있었다.
고요했다.
그곳은 정말로 고요했다. 그곳에선 적어도 이 세상에 오비와 에르난, 그리고 나만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곤 난 이내 물에 녹아내리는 휴지처럼 벌러덩 누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다짐하기를.
앞으로 살아가는 인생 가운데 혹 환경과 또 내 앞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면서 절대 나 자신과 비교하지 않겠다고.
수많은 소리 가운데서도 초조해하지 말고 오직 내게만 초점을 맞추어 나의 페이스대로, 오늘과 같이 묵묵히 이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가겠다고 메마른 목구멍으로 다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우리 모두 각자 걸어갈 길 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