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면서.
세 달 전, 오랜만에 모임을 갖자는 단톡방의 대화 속에서 H는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두 달 뒤, H는 잊지 않고 생일날 따뜻한 선물을 보내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던 내 소중한 친구야. 생일 축하한다. 나는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야. 그래도 너의 생일만큼은 축하해주고 싶어.'
그리고 다시 침묵의 시간. 연락을 해보는 것보다는 다시 기다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기다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전화가 온 것이었다.
H는 '내가 만약 딸을 낳으면, 저렇게 똑부러지고 단단하게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친구이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본받을 점이 많은 친구. 내가 앞으로 나아가게 도와준 친구. 열심히 사는 것으로 서열을 매기자면 단연 선두에 있는 친구. 더없이 소중한 친구 중 한 명이다. 언제나 씩씩하고 명랑하게 세상일을 헤쳐나갈 것만 같던 친구가 슬퍼하는 모습에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H는 눈물을 삼키면서도 통화 첫마디가, 몸 상태는 요즘 좀 괜찮냐는 말이었다. 내 건강을 먼저 걱정하다니. 마음을 정돈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녀가 겪는 과정은 과연, 간단치가 않았다. 복잡했고, 한 두 마디 위로로 쉽사리 가라앉을 것이 아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언젠가 엄마에게
"엄마, 내가 어떤 선택을 할 때마다 삶의 방향이 조금씩 뒤틀려지는데 그게 맞을지는 나중에서야 아는 거잖아. 그게 너무 두려워."
라고 하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났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그때 가서 또 수정하고 그러면 되는 거야. 그러면서 단단해지는 거고.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살면서 점점 단단해져. 그런 과정의 연속인 거야. 원래 사는 게."
부디 H가 긴 터널의 끝을 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나는 긴 통화 후 돌연 서늘해진 마음으로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