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녹음을 품은 가을 어느 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육 개월째 병원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낮이면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터라,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바로 앞 선홍색 윗도리를 입은 양산 쓴 할머니의 지친 발걸음이 꼭 내 몸 상태를 투영하는 것 같았다.
"이제 치료가 종료되어 가해자 측 자동차보험 청구해야 합니다."
"치료 종료하고 싶지 않은데요. 합의하면 치료 제대로 못 받는 거 아닌가요?"
"합의하고도 치료받을 수 있어요. 제가 충분히 받게 해 드릴게요."
"저 아직 아픈데, 합의는 좀 미루고 싶습니다."
보험사 측이랑 적당히 말 맞춰서 합의를 앞당기려는 거 아닌가? 진짠가? 그냥 끝낼까. 지친다 지쳐. 대리인을 선임하여 합의 관련 일을 진행하고 있었으나, 원체 의심이 많고 누군가를 쉽게 믿지 못하는 나에겐 이 모든 과정들이 낯설고 버거웠다. 그때, 병원 가는 길목에 놓인 도심 속 이질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철길과 하늘 사이로 희멀건 꽃들이 너울너울 햇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저 꽃, 이름이 뭐였지. 분명 엄마가 알려줬었는데. 기억을 가다듬다가 문득 김진영 작가의 문장이 생각났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 <아침의 피아노 中>'
만개한 꽃들이 나에게 철없이 위로의 고갯짓을 건네고 있다 여기니, 철없는 걸 아름다움으로 치환한 작가의 시선이 퍽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꽃은 진리야. 덕분에 발걸음에 약간의 힘을 실어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치료를 받는 중엔 이런저런 잡념에 빠지게 되는데, 연말이 가까워져서였을까. 갑자기 작년 12월의 점괘가 떠올랐다.
'아홉수는 진짜 있나 봐.'
아홉수의 미신을 맹신하게 된 격랑의 이십 대 후반을 보내고, 삼십 대에 접어들었지만 점차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때. 편치 않은 마음 약간, 해갈이의 기대 조금을 동시에 품고 신년운세를 보러 갔었다.
"이제까지 60살 넘은 사람의 마인드로 살아왔네. 같이 온 사람 중에 가장 어린데, 완전 애늙은이야. 근데 다가오는 해에는 고등학생 마음으로 돌아갈 거야. 이제까지 힘들었던 것도, 기다림도 다 끝나는 해야."
분명 연신 웃으며 잘 풀린다고 했는데. 나에게 온갖 상승기운을 확신하던 점쟁이 아주머니의 기막힌 신년운세는 정말 정확하게 빗나가고 있구나. 마음은 둘째치고 몸이 엉망인 한 해가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에잇. 속으로 투덜대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이 침을 놓고, 맥을 짚어보셨다.
“요즘 컨디션은 어떠세요?”
"그냥 별로 좋지는 않은데, 자주 피곤해요. 근데 원래 만성피로라. 그래도 최악은 아닌 것 같기도...”
“음, 그런데 오늘 가라앉는 맥인데요. 안 좋은데...”
그리고 바로 다음날, 장염에 걸렸다. 조금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침에 종종 갈아먹던 야채주스가 약해진 몸에 반작용을 하게 된 것이다. 이건 점괘의 허용오차범위도 훨씬 넘어간 거잖아? 코로나 시국에 오한에 설사면, 출근을 해야 해 말아야 해. 전전긍긍하며 부장님과 상의하고 출근은 했으나, 며칠 동안 얼마 못 버티고 조퇴를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지, 위장염으로 고생해본 경력치가 꽤 쌓였던 나는 병의 진전과 회복의 루틴을 알고, 나름 의연하게 대처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힘든 일이여 더 몰려와라 체념하면서.
야채죽을 데우다가 서로를 늘 걱정하는 절친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근황을 주고받다 뜬금없이 엉엉 울고 싶어졌는데, 울 자리가 있어야 눈물도 흘릴 수 있다고. 친구도 통화할 시점에 크게 마음 상하는 일이 있어 되려 내가 다독여주는 입장이 되었다.
"J야, 그래도 좋은 건 항상 있더라."
응? 금방 뭐라고 했지. 내 입에서 나온 말인가. 의심했다. 위로하려고 던진 말인데, 사실 나에게 하는 말 아닌가? '사람은 본인이 듣고 싶은 말을 종종 상대에게 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려진 좋은 것들을. 지난봄 병원에 입원해있던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았지. 사고 난 걸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가 4개월 뒤 알게 된 부모님이 수화기 너머로 호적에서 파겠다고 화를 내셨지만, 막상 고향에 내려갔을 땐 말없이 다독여주셨지. 이해하고 싶었지만, 종국엔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의 종결. 그래도 언젠가 돌아보았을 때, 나쁘지 않았다고. 함께하는 동안 많이 웃을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선연한 연애의 기억들. 나빠보이던 것들의 이면에 좋은 것들은 작게나마 항상 있었다. 가려진 것이 아니라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종종 친구들에게 “중생아, 삶은 ’고(苦)‘란다." 라며, 고통이 디폴트라 생각하면 일상이 더 나아진다고 너스레를 떨며 얘기하곤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일상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진짜 ‘고(苦)’로 보게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모토를 바꿨다. 이제 술자리에서 친구와 이야기하게 되면, 삶은 ‘향연’이라고 말해야지. 어느 작가의 말처럼, 삶에 초대받은 손님처럼, 귀한 손님답게 우아하게 살아가자고. 뫼르소가 감옥에서 빛을 찾아낸 것처럼, 죽음에 당면해서야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고 사랑을 느낀다면 많이 슬픈 거 아니냐며. 그러니까 우리 불안해하지 말고 사랑하며 살자고. 조금은 허세롭게 얘기해볼 심산이다. 아마, 이 말도 내가 듣고 싶은 말 중에 하나인 거겠지.
연필로 끄적이던 기록의 말미엔 얄팍한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자고 다짐하는 의미에서 느낌표 서너 개를 붙였다. 언젠가 이 기록이 참 우스워질 때도 있을 테지만. 한편으론 가벼운 듯 진심 가득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새벽에 잠이 깬 나는 많은 감정들을 갈무리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한 마디를 떠올리면서.
‘좋은 것은 항상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