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사 권희경
황선우 인터뷰집 <멋있으면 다 언니>를 읽고
비교적 남들보다 일찍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지났을 때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사람들과 살 부대끼며 일하는 것보다 혼자 묵묵히 일하는 것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고, 사실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었던 일을 크게 등져버릴 용기도 없던 나는 승진 외에 다른 길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대학원에 진학했다. 무용해 보이는 것들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내 삶의 중요한 축이 될 거라 믿었던, 나름 씩씩했던 때였다.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정말로 졸업장은 쓸모가 없어졌다. 남들은 교대 대학원에 가서 인맥을 쌓고 교과서 작업을 하거나 ebs강의 같은 것을 하면서 본업에 더 보탬이 되는 것들을 했다. 그래서 도대체 대학원에 가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면 웃으면서 학교가 얼마나 재미없는 조직이고 계급을 철저히 재생산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다양성을 배울 수 있었고 그건 분명 값어치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전자보다는 후자. 즉, 사람을 배운 것이 8할 정도는 차지했던 과정 속에서 유독 기억나는 한 사람이 있다.
추운 겨울날 인천으로 권희경을 만나러 갔다. 아마 세 번째 인터뷰이였던 것 같다. 그녀는 만나자마자 추운데 여기까지 이렇게 찾아와 주었냐고 고마워하며, 내가 해야 할 말을 오히려 먼저 꺼내 주었다. 따뜻한 찻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면서 논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했다. 곧이어 녹음기를 틀고, 준비해 간 질문을 조심스레 하나씩 건넸다. 권희경은 50대 여성으로 이주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 그리고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해왔다. 그녀는 젊었을 때 외국 생활을 했었는데, 낯선 환경에서의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떠올리며 이 길을 걷기로 다짐했다. 그 입장에 처해본 자만이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권희경에겐 뭔가 더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녀에게는 본인이 겪은 경험을 타인에게 비추어 그들의 감정을 포착하고 공감하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분명한 행동력’이 있었다.
그녀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사실 부수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센터에 있는, 혹은 그 밖의 소수자들의 '삶'에 대해 걱정했다. 특히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에 왔을 때, 실제로 어떤 일들을 겪는지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어떤 물질적 보상도 없는 일들. 가령 누군가의 거처를 위해 부동산 업자와 싸운다거나, 하루 종일 집을 구하러 다니는 일. 이혼 위기에 놓여있는 이주여성들의 사연을 듣고 스스로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혹은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맞는지 깊게 고민하는 일. 육아를 하는 이주여성들이 언어를 배울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일.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행위 등 숨겨진 많은 것들이 그녀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지치지 않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이런 일들에 너무 경계가 없어 가끔 지치는 때가 있긴 하다며 소탈하게 웃었다. 권희경과의 첫 번째 인터뷰 이후 나 또한 그녀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다니는 센터의 수녀님들과 만날 수 있었고, 그곳의 젊은 봉사자에게 양해를 구해 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인천 어딘가의 파리바게트에서 그녀와 친분이 있는 난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권희경과 허물이 없어 보였고, 상당 부분 의지하고 있었다.
안산, 인천, 부천 등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하는 일은 그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들은 그저 주어진대로 살았으면 모르고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었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좁은 세상만을 보다 죽는지, 얼마나 편협해질 수밖에 없는지, 그런 생각들을 했다.
나는 권희경과 인터뷰를 할 때면 가끔 김수영 시인의 시에서 나오는 '옹졸함'이 떠올랐는데, 사소하고 비본질적인 일들에 집중하는 내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중엔 책으로만, 의식으로만 차별과 편견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던 내 모습도 있었다. 나는 권희경이 부러웠다. 그녀는 그녀의 삶에 확신이 있었기에 빛나 보였고, 그녀 때문인지 주변에 모인 사람들마저도 빛나 보였다. 사람을 만나서 탄복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논문이 나오고 인터뷰 참여자들에게 논문을 보낼 때, 권희경에게는 소설책 한 권을 더 넣어서 보냈다. 책을 좋아하는 그녀가 책을 보곤 참 좋아했다. 그 후로도 연락을 몇 번 주고받았지만, 나는 졸업 이후 바쁘고 멀다는 핑계로 그녀가 주관하는 다문화 축제나 기관 행사에 단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진행하는 라디오나, 기사를 드문드문 보긴 했다. 그렇게 서서히 연락이 끊겼다.
글을 쓰다 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직도 옹졸함을 떨치진 못한 것 같다. 그리고 편협함도 가득하다. 본질에 대해 고민하지만 다시 사소한 것에 집착하고, 분개한다. 그래서 권희경같이,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멋있는 사람을 직접 인터뷰하면서 경험했던 기이한 감정들을 살면서 자꾸 들춰보려고 한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언니'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