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싫어했다. 비가 오는 모습을 보면 하등 쓸모없는 감정의 잔여물들이 붕붕 뜨는 것 같았다. 이유 없이 가라앉고 우울해졌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축축하고 걸음을 방해하는 것이 왜 좋다는 거지.
일을 마치고 머릿속 공간이 텅 빌 때마다 쓸모없는 생각들이, 불안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왔다. 그래서 어떨 땐 몸을 매일 바쁘게 하는 것만이 삶을 가까스로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매일 집 밖으로 나갔다. 나가서 걸었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산책을 정말 애정 한다고 했다. 사실 그 자체로 좋다기보다는 불안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관성처럼 일정 시간이 되면 ‘나갈 때가 되었구나’하며 공허한 걸음을 옮긴다. 레베카 솔닛은 ‘산책’이 몸과 마음이 하나로 조율되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몸과 마음을 위한 나름대로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비가 오는 날은 그래서 싫었다. 몰려오는 숱한 감정들을 방어할 수 있는 나의 가능한 수단을 방해했고, 심지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이었다. 오늘도 비가 많이 왔고, 오고 있고, 앞으로도 올 것이다. 걷는 행위로 불안을 덜어낼 수 없는 날에는 글자를 봤다. 글자를 보다가 글을 끄적이고, 글을 쓰다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불안은 다른 불안으로 치환될 뿐이었다.
비 오는 날이 괜찮아지는 날이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