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기대도 괜찮아

by 호시절

“주변 사람들이 많이 기대려고 하는 팔자인데, 정작 본인이 외로울 땐 기댈 사람이 없네.”

점을 백 프로 맹신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사주 보는 분이 그랬다.

너는 외로움을 품고 사니까 다른 병보다 특히 우울증을 조심해야 한다고.


솔직히 현대인들 우울증이 얼마나 많냐며 저런 소린 나도 하겠다 코웃음 쳤던 것이 기억났다. 어릴 적부터 책임감 있는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의젓하다는 말을 얼마나 자주 듣고 싶었던 걸까.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사회적 요구에 걸맞게 커버렸다.


고등학생 때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이유 없이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당시 짝꿍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달래주려고 화장실까지 쫓아왔다. 무엇 때문에 서럽게 우냐고 물었을 때도 나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딱히 이유가 없었다. 그때 이후로 남들 앞에서 잘 울지 않는다. 굳이 다른 사람들의 걱정을 사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지금 나이에 맞는, 혹은 더 성숙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누군가 툭 한 마디만 던져도 울 것 같은 날에는 사람을 피하고 혼자 생각을 갈무리한다. 가끔은 친구에게 고민을 마구 털어놓아도 괜찮을 텐데, 사람들을 만나면 한 마디 두 마디 하다가 나머지 말들은 잘근 뭉개어 삼켜버린다. 안 좋은 이야기는 전파시키면 안 돼 하면서.


아마 이런 나의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교통사고가 났을 때,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걱정하실까 퇴원 후 한참 지나 말을 꺼냈더니 엄마는 넌 엄마가 필요 없냐며 화를 내셨다. 대충 다 회복했고 건강해졌어라고 얼버무렸기에 아빠는 아직도 얼마나 다쳤었는지 잘 모르신다. 아무렴 당시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직장에서 내 몫의 일을 구멍 없이 하기도 했다. 얼마 전 잠깐 만났던 연인은 헤어지는 중에 내가 본인에게 너무 거리를 다고 했다. ‘뭐든 혼자 할 수 있고, 괜찮다’라는 성숙하고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태도가 상대에게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은 언어로 꼭 확인을 받아야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요즘 들어 내가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했던 것인지 헷갈린다. 어쩌면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말을 하면 괜찮아지겠지 생각하며 자기 주문을 외웠던 것일지도. 칼에 손을 베어도, 몸의 한 구석이 지속적으로 아파도,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연인이 내게 좀 기대어도 괜찮아라고 말할 때조차도 내 문제는 오롯이 내가 해결해야지라는 생각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일까.


그래서 이제는 다른 주문을 외워본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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