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

by 호시절

옷장 정리를 하다 지쳐 쉬고 있었을 때였다.

“네 언니 흉 좀 보자. 옷을 이렇게 입히면 어떡하니. 밑이 이렇게 프린팅이 화려하면 위에는 수수하게...”


가족 단톡방에 언니가 보낸 조카의 사진을 보고, 엄마가 개인톡을 해왔다. 그렇다. 우리 집은 옷에 관한 한 엄마의 입김이 센 집이다. 가만 보면 어릴 때부터 옷을 참 좋아했는데, 그건 엄마의 지분이 상당하다. 나름의 독자적인 패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엄마는 딸들을 예쁘게 입히고 싶었을 것이다. 엄마 덕분에 어릴 적 나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옷들을 입고 있었다.


첫 학교에 발령받았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제발 ‘선생님’처럼 입고 다니지 말아라.”


엄마는 내가 고지식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아이가 보수적인 집단에 들어가 정말로 융통성도 없고 꽉 막힌 사람이 되어버릴까 걱정을 한 것이었다. 엄마는 교생 때 입었던 옷들은 너무 재미가 없어 보인다고, 늘 패션에 변주를 주라고 했다. 사실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개량한복 입는 한문 선생님, 골프웨어 차림의 수학 선생님, 등산복 비스무리한 옷을 입는 기술가정 선생님 등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 것이다. 엄마는 딸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선생님별 옷 입는 스타일’ 짤의 표본이 되는 것을 경계했으리라.


“요즘 출근할 때 뭐 입고 다니는데?”


“오늘 소개팅은 뭘 입고 나가는데?”


“그래서 이번 여행 땐 무슨 옷 가져갈 건데?”


출근룩에서 여행룩까지, 그녀의 잔소리와 물음표 공격은 계속된다. 물음표 살인마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엄마의 물음표 공격이 계속되어서 그런지 나는 옷을 고르고 사들이는 행위를 좋아하게 되었다. 고향에 내려가면 엄마와 함께 쇼핑하는 것이 루틴인데, 그때마다 엄마는


“이거 어때?”


“그건 너 얼굴이 죽어.”


“이거는?”


“네 체형에 안 어울려.”


라는 평가를 가감 없이 날려주신다. 이보다 더 좋은 쇼핑 메이트가 없다. 사정이 이러하니 한눈에 엄마의 눈을 통과한 옷은 세월이 지나도 버릴 수가 없다. 엄마가 굉장히 좋아했던, 지금 입기엔 너무 짧고 현란한 프린팅이 새겨진 원피스는 옷장 한 구석에 추억처럼 자리하고 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더라도, 체중이 늘어 입을 수 없게 되더라도 몇 벌의 옷들은 수년간 버려질 수 없는, 장수할 운명일 것이다.


엄마가 보내온 톡에 맞장구를 치고, 널브러진 옷들을 포개며 다시 옷을 정리했다. 옷을 정리하며 누군가가 골라준 옷, 누군가와의 추억이 담긴 옷, 누군가가 좋아했던 옷,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 그리고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입는 옷 등을 생각했다.


옷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옷을 입던 그 시기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 지금보다 어릴 때에는 원색의 옷, 무릎 위로 올라가는 짧은 치마, 핫팬츠, 기하학적인 무늬의 원피스 등 발랄하고 생기 있어 보이는 옷들을 좋아했다. 감정이 요동치는 만큼 감정에 솔직했던,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판단을 내렸던, 그럼에도 어렸기에 자신감이 있었던 때였다. 서른 이후로 치마 길이는 점점 길어졌다. 옷에 자리 잡고 있었던 무늬들도 하나씩 없어졌다. 옷장을 채우는 색감도 차분해졌다. 신발장에 있던 높은 굽의 구두들도 구석으로 내몰렸다. 가장 좋아하는 신발은 하얀색 운동화. 가장 자주 입는 옷은 검은색 슬랙스. 편안함과 단조로움, 담백함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일상에서 덜어내고 싶은 것들이 많아진 탓일까. 이젠 짧은 치마를 입으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런 변화가 나쁘지만은 않다.


옷장 정리를 마무리하고 버릴 옷들을 한켠에 모아 두었다. 옷을 버릴 땐 왠지 삶의 한 장면을 버리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지지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니까. 다음엔 어떤 옷이 어떤 기억을 가져다줄지, 새로 채워질 앞으로의 장면들은 무엇일지, 나는 어떤 마음의 변화를 맞이할지 조금은 설레며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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