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산다는 것에 대한 소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고
동거; 1. 한 집이나 한 방에서 같이 삶.
2. 부부가 아닌 남녀가 부부 관계를 가지며 한집에서 삶.
뭐야, 이 책 왜 이렇게 재밌지. 책을 덮은 직후의 감상은 이랬다. 이 책은 김하나와 황선우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생활양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과정을 다소 귀엽게 그리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읽힌 '귀여움'은 사실 그들에게 '분투'였을 것이다. 두 사람의 매력적인 글을 핑퐁으로 읽으면서 오랜만에 지난 경험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는 열아홉 살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가족들과 떨어져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기간으로만 따져보았을 때, 4년은 기숙사 생활을, 5년은 언니와 함께 생활을, 1년 하고도 6개월 정도는 혼자서 생활을 해왔다. 이 모든 생활을 종합해보았을 때 나 또한 혼자 사는 게 내 성향에 잘 맞는다고 늘상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형태의 삶이 정말 잘 맞는지 10년은 지나 보아야 안다'
는 저자의 언급에 무언의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 있을 때가 편하고 대체로 만족하지만, 때때로 외롭기 때문이다(외로움은 아플 때 극에 달한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도 공부를 가열하게 해야 했던 곳이었지만, 비슷한 류의 고민을 공유하고 고됨을 나눌 수 있는 학생들의 ‘안심터’이기도 한 모순적인 공간이었다. 4명이서 한 방을 썼는데, 각자의 생활 패턴이 조금씩 달랐기 때문에 배려할 수 있는 소소한 규칙을 정했다. 대략적인 규칙은 다음과 같았고, 이는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1. 한 명이라도 잠을 잘 때에는 방의 전등을 소등하고, 대신 다른 사람은 스탠드를 킬 것
2. 통화는 무조건 밖에서 할 것
3.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키보드 소리 혹은 여타 다른 소음에 민감할 것
4. 친구를 데려올 경우 미리 말하고 허락을 구할 것
5. 오전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조용히 외출 준비를 할 것
이런 규칙들을 처음에 정해두지 않으면,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는 상황이 별 수 없이 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기숙사 생활을 할 때보다 언니와 함께 생활할 때 더욱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다. 처음 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규칙 같은 것은 정해두지도 않았거니와 '서로 좀 참으면 되는 거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언니가 가족이라는 품 안에 속해 있기에 그랬던 걸까. 그런 딱딱한 규칙을 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극심한 올빼미형 언니를 향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급기야는 3년간 묵혀두었던 것이 폭발하던 순간 진심으로 분리해서 살아볼까 싶었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두 사람이 묵혀 둔 쓰레기를 사이에 두고 날 선 모습을 보였을 때 정말인지 공감하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 다른 것보다 먼저 양말을 개는 방식 때문에 싸운다는 말이 왜 나왔을까. 혹은 함께 살면서 더러움을 참고 버티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말이 왜 나왔을까. 언니와 함께 살면서 깨달았다.
이렇게 살아온 방식이 다른 타자와 함께 살면서 그를 이해하는 시작점은 가치관도 아니오, 다름 아닌 소소한 생활의 습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두 사람이 종종 마찰이 있었음에도 서로의 생활 패턴을 인정하고, 둘만의 규칙을 정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어른의 모습’이란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저자의 말처럼 이해하지 않으면 뭐 어떠리. ‘자신과 다르다 해서 이상하게 바라보거나 평가 내리지 않는 것이 공존의 첫 단계’라고 일러주지 않는가. 이처럼 신선한 삶의 양태를 보여주면서 납득할만한 생각들을 전해주는 에세이라 더욱 큭큭대면서, 공감하며 읽었다.
한편으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은 중요하고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간혹 결혼이라는 제도적 틀 안에서 의무감을 부여하고, 누군가의 며느리라는 것을 앞세워 두 사람의 영역을 침투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가족이 함께 살면 좋지 않느냐 하는 말로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허울 좋은 말들로 암묵적 희생을 강요하는 어른들에게 배려받지 못할 때,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관계에서의 의무는 지지 않지만 자식의 옆에 있어주어 든든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위치라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는 일도 얼마나 산뜻하고 가뿐할까?(p.52)'
한창 주변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요즘이다.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환영받는 결혼도 하고 싶고, 자녀를 양육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주며 산다는 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과 일이 년 전, 결혼 안 하겠다고 선포한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너 결혼 안 하게 되면 나랑 같이 타운 만들어서 반려동물 분양받아 키우고 그렇게 살자.'라고 했다. 그땐 그냥 웃고 넘겼는데, 두 사람이 직접 보여주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 이 또한 사회 제도적으로 귀를 기울여주고 보장해주어야 마땅하다. 점점 더 다채로운 양상의 가족이 생길 것으로 보이기에.
여담: 그 친구는 갑자기 또 결혼이 너무 하고 싶다며, 요새 소개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