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음악 계보

음악과 함께한다는 것

by 호시절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음악은 늘 나의 곁에 있다. 아침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뜬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 소리를 끈 후의 적막에 굴복당하지 않기 위해 곧바로 블루투스를 켜고 스피커를 연결한다. 사실 출근을 위한 노동요와도 같다. 애정하는 곡들이 담겨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랜덤 재생한다. 5년 전 당시 연인에게 새해맞이 선물로 받은 빨간색 조본 잼박스 스피커가 아침의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어떤 아침엔 특히나 듣고 싶은 한 곡만 반복 재생해놓기도 한다. 단 몇 초의 수고로움은 몇 분의 출근 준비를 '그나마' 즐겁게 해준다.


그렇게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남들은 하나씩 다 가지고 있다는 블루투스 이어폰 대신 주홍색 틴트로 얼룩져 있는 유선 이어폰을 꽂고 집을 나선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잠깐 써본 적은 있었으나, 아직도 기존의 이어폰이 편하다. 이건 뭐 홍대병도 아니고, 아날로그병인가. 아침마다 들르는 카페에서는 할 수 없이 주문을 하기 위해 잠시 이어폰을 뺀다. 그 때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 중에 좋은 음악이 들려오면 주인에게 물어본다. 잠시 들르는 카페인데 주인의 음악 취향이 참 좋다(최근에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고 저장한 노래는 블루파프리카의 <파란 달>이었다). 원래 직장에 들어서자마자 이어폰은 빼야 하는데, 소심한 반항이라도 하고 싶은지 자리에 앉기 전까지 음악은 계속 재생된다. 퇴근할 때에도 이어폰. 집에 오면 다시 블루투스 스피커. 잘 때까지 재생 또 재생.

보통의 일상은 이러한데, 올여름 3주 동안 여행을 다녀와서 누군가가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에요’라고 물어왔을 때에도 나의 대답에는 항상 ‘음악’이 있었다. 사실 여행에서 잔상에 남는 것은 여행의 목적 이외의 것에서 발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 같은 경우 그 의외성이 꽤나 오래도록 각인된다. 터키 투어 중에 만난 어느 가족과 맥주를 마시던 중 들었던 빌리 조엘의 <Piano Man>,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골목에서 마림바를 통해 두 여인이 들려준 상냥하고도 청아한 음악, 프라하 카를교에서 어느 바이올리니스트가 들려준 슬픈 버전의 <Despacito>, 도나우강에 도착하자마자 5분 만에 비가 와, 비를 쫄딱 맞으며 쪼그려서 들었던 선우정아의 <비온다>, 비포선라이즈 촬영 장소였던 lp가게에서 주인아주머니께서 찾아주신 카펜터스 CD, 그리고 잠깐 들었던 <Superstar>. 기존에 알던 곡이라도 이렇게 만나니 더 아끼는 곡이 되었다.

음악과 함께한 나의 요즘을 적다 보니 자연스레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 피셜에 따르면 4~5살 즈음 단발머리 어린 꼬마였던 내가 장현철의 <걸어서 하늘까지>를 그렇게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어디서 그 곡을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어려서부터 알게 모르게 음악에 자주 노출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시는 아버지,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던 고모가 있어서 그랬는지, 어릴 때 대부분 아이들이 싫어하며 다녔던 피아노 학원을 즐겁게 다녔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 중 아버지께서 노래방을 운영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중학생 때까지는 틈만 나면 그 친구에게 부탁해 노래방에 가곤 했다. 최창민의 <짱>, 심태윤의 <짝>, 샤크라의 <한> 이런 한 글자 곡들이 유독 유행했던 초등학생 때를 지나, 중학생이 되어서는 문차일드 때부터 좋아했던 엠씨 더 맥스의 <낮달>이 너무 좋아서 당시 좋아하던 아이에게 불러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언니가 권했던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친 순간도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이전까진 잘 몰랐던 다른 음악의 세계로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재즈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게 된 것이 그 계기이다. 재즈라는 장르는 생소하기도 했거니와, 학창 시절에는 전혀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던 장르였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같이 재즈를 들으러 이곳저곳 다니며, 나도 모르게 재즈에 빠지게 되었다.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Addie Higgins Trio의 연주나 바우터 하멜의 목소리를 특히 좋아했다. 하멜의 <Breezy>나 <Details>는 미풍이 불 때 산책하며 들으면 그 특유의 발랄함이 배가 되는 곡이어서 아직도 산책할 때 꾸준히 듣고 있는 곡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병행할 시기에는 또 다른 장르에 빠지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EDM이었다. 아마 스트레스를 적지 않게 받았었나 보다. 알렌 워커나 체인스모커스, 갈란티스, 아비치 등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으며 피곤한 일상을 나름 신나게 견뎌냈다(심지어 카페에서 논문을 쓸 때에도 분노의 타자질을 하며,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요즘처럼 위로가 필요할 때나, 갑자기 선득한 마음이 들 때에는 김민철 작가처럼 Coldplay나 짙은의 노래를 종종 듣는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애정하는 Coldplay의 대표곡 <Fix you>보다는 숨겨진 곡인 <O>를 더 좋아한다. 5분 30초 남짓 되는 이 곡은 노래가 끝난 후, 1분 30초 동안 몽환적인 음악이 흘러나온다. 노래 자체도 정말 좋지만, 이 1분 30초의 휴지 기간은 내가 허공에 놓여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노래가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그림을 빈의 한 미술관에서 마주한 적이 있는데, 그림을 보다가 그 노래가 생각나서 들은 적은 처음이었다. 5분 넘게 자리에 서 있는 동안의 기억이 오래도록 나를 잡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 우스운 건 이렇게 노래를 쉼 없이 듣는데 정작 이게 누구의 무슨 곡인지, 어떤 가사인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얕고 넓은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나이기에, 어떤 장르 혹은 특정 가수를 깊게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을 느끼곤 한다. 어느 가수의 몇 집부터 몇 집까지 어떤 곡이 몇 번 트랙인지 낱낱이 알고, 그 곡들의 사연을 아는 사람들에게서 감지되는 그 진중한 태도가 멋져 보이곤 한다.

음악 이야기로는 끊임없이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남은 이야기들은 조금 아껴두기로 했다. 이러한 연유로 사람들과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이 좋다. 다른 사람들과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것은 그 사람을 알아가는 데 가장 좋은 루트이기도 하고, 그들을 통해 좋은 곡들을 발굴해냈을 때 묘한 희열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잘 기억하고 계속해서 즐겨 듣는 곡들은 나만의 사연이 있는 곡들이 대다수이다. 곡이 좋아서도 꾸준히 듣는 것도 있겠지만, ‘어떤 곡은 누구와 함께 들었는데, 어떤 곡은 어떤 상황에서 나를 위로해주었는데, 어떤 가수는 누가 참 좋아했었는데’와 같은 생각들이 이렇게 나의 음악 계보를 조금씩 만들어낸다. 지난해인 2019년에도 나의 음악 계보에 기록된 소중한 몇몇의 곡들이 있다. 앞으로 어떤 순간에 어떤 음악을 사랑하게 될지, 어떤 음악들을 기록하는 삶이 될지,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들을 하나둘씩 꺼내다 보니 마음이 새삼 다정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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