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엄마되기 체험

언니의 곁에서

by 호시절


“처제~ 잘 지냈지? 이제 이모되는 거야~”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을 약속하고, 혈혈단신으로 터키로 떠난 형부와 한국에 남은 언니. 그들은 결혼 준비를 하는 1년 동안 장거리 연애를 감행했다. 모두가 숨을 고르는 고요한 새벽 밤, 수화기 너머로 형부와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던 언니의 사부작 거리던 소리는 잠귀가 밝은 나의 수면을 방해하곤 했다. 늘 손이 많이 가는 언니와 따로 살기 위한 방법으로는 언니가 하루빨리 결혼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방해에도 둘의 사랑을 열렬히 응원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면 비로소 끝나는 줄 알았던 언니의 뒷바라지는 그야말로 '덜컥' 생겨버린 조카 덕분에 다시 시작되는 형국이었다.

“처제~ 뭐 필요한 거 없어?”

그렇지. 인생에 공짜는 없다지. 형부가 나에게 선물공세를 할 때 눈치챘어야 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겨울방학은 칠할 정도 조카를 위한 시간으로 탈바꿈했다. 터키 주재원에 근무하고 있던 형부는 언니의 출산 예정일에 맞춰 한국에 들어왔지만, 하필 1월이 가장 바쁜 때라 귀국해서도 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출산휴가란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언니의 간병은 나의 몫이 되었는데, 가족들이 이런 나의 역할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약간의 어이없음과 묵직한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렇게 미리서부터 알고 싶지는 않았던 출산 앤 육아 월드 입성.

알다시피 출산 방법으로는 제왕절개와 자연분만 두 가지가 있다. 둘 중에 무엇이 더 낫냐는 물음에 언니는 단박에 ‘둘 다 싫다’는 말만 되뇌었다. 우문현답이었다. 이 두 가지 방법은 산모들 사이에선 ‘할부’와 ‘일시불’의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전자는 출산 시의 고통은 덜하지만 회복이 더디고, 후자는 출산 시 고통은 크지만 회복이 빠르다는 의미에서였다. 맘 카페에 가입한 언니는 이런저런 출산 선배들의 자연분만 후기를 살펴보았다.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에요~, 간호사가 배를 누를 때 차라리 딱 죽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러곤 끈기 없는 본인이 몇 시간 진통을 겪다가 ‘차라리 제 배를 째주세요!’라고 다급하게 외칠 것을 예상했는지, 지체 없이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언니 다운 선택이었다.

수술 후 회복실에 갔던 그때, 누워있던 언니의 모습을 설핏 보게 되었다. 마취가 덜 깬 그녀의 몇 마디는 신나게 듣다가 갑자기 늘어져 버려 당황을 일삼게 했던 테이프처럼 어눌했다. 매번 동생 같은 언니라며 어딘가 부족한 구석이 있는 행동들을 타박하기 일쑤였는데, 그 모습에서 순간 측정할 수 없는 희미한 간극이 느껴졌다. 그 간극은 언니가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에서 비롯되었는데, 사실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다. 어렸을 적 친구의 생일파티 때, '동생 맛있는 거 먹여야 한다'라며 손을 꼭 잡고 쏘다니던,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녀의 든든함. 방심할 틈도 없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그렇게 병실에서 '불쑥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언니 곁을 지키며 닷새를 머물렀다. 나름 안락했던 편평한 연회색 소파에서 시간을 보내며 밤낮으로 언니의 수발을 들면서.

한편, 뱃속에서 잘 놀고 있던 조카도 난데없이 봉변을 당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갑자기 세상을 접하게 된 것이다. 양수에 퉁퉁 불은 조카는 이 세상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곤 카랑카랑 울어댔는데, 그때 우리 모두가 예상하기를

'기집애, 성질 좀 있겠는데...?'

조카의 출현은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마음을 단숨에 훔쳐 웃음의 쏠림 현상을 자아내는 톱스타의 등장과도 같았다. 신생아실의 블라인드가 올라갈 무렵엔 카메라 플래시와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아이 예뻐, 눈 좀 떠 줘, 코 오뚝한 거봐, 입술이 도톰하니 오목조목 너무 예쁘다’ 등 온갖 미사여구가 쏟아져 나온다. 막상 몸이 회복되지 않아 힘든 언니는 자기 말고 다른 가족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며, 본인은 그저 ‘얘가 내 자식이구나’ 엉뚱하고 낯선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런 언니 곁에서 엄마도 한 마디 던졌다.

"원래 그런 거야. 막 나왔다고 사랑이 막 생겨나고 그러진 않아.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일단 내 몸이 힘드니까."

조카가 집에 온 이후부터는 온 가족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도 육아가 오랜만이었고, 나랑 언니는 더더구나 '이번 생에 육아는 처음이라' 갖가지 글이며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며 공부를 했다. 희한하게도 유튜브에 나오는 아이들은 왜 이렇게 다 얌전이들인지. 인생 16일 차 조카의 자비 없는 울음소리는 새벽에 가까스로 선잠에 들었던 가족들을 소집하는 알림음과 같았다. 눈을 비비며 비몽사몽으로 모인 가족들은 도대체 조카가 왜 우는지, '일 번, 배고픈가? 이 번, 쌌나? 삼 번, 배앓이하나?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사 번, 안아줘 병?' 돌림노래를 하다가 결국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가장 인생 쪼렙인 콩만한 애가 우리 집 상전이다.’

아쉽게도 언니는 통잠을 자거나, 작은 소리로 울다가 멈추는 유니콘 신생아를 낳진 못했다. 비상소집은 밤낮없이 한두 시간마다 계속되었다. 언니와 교대로 아이를 먹이면서, 분유통을 씻고 열탕 소독을 하면서, 그제서야 몸소 깨달았다. 진짜로 씻을 시간이 왜 없는지, 왜 엄마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 누군가를 책임지고 키운다는 것이 이리도 벅차고 지난한 과정이 동반된다니. 과연 잠깐의 경험이지만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육아는 만렙 난이도에 달하는 것이라. 이런 힘든 과정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언니, 어때? 모성애가 막 솟아?"

한참 고민에 빠질 언니의 모습을 상상했는데. 무용한 것이었다.

"헐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지금 책임감에 키우고 있는 거 같은데... 남들은 힘든 것보다 예쁜 게 더 크다는데, 그냥 미화된 것 같음(징징징). 나 지금 너무 힘듦. 힘들어 죽겠음. 근데 그냥 오빠가 좋아하니까, 힘내서 키우는 거지."

역시, 모성애 신화는 틀렸다. 어쩌면 모성애란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가장 밀착된 사람에게 학습되는 사랑, 혹은 요구되는 사랑이 아닌가. 확실한 것은 누군가에 대한 애정의 기저엔 책임감이 존재해야 한다는 점, 남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이 오묘하게 섞인 생명체를 위해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으려면 둘 사이의 선형적 사랑이 있어야 더디게라도 힘을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저런 상념의 흐름에 또다시 끼어드는 울음소리.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없던 꼬물이를 달래면서 왠지 모를 웃음이 피식 나온다. 모성애가 어떻고 사랑이 어떻고 간에 그저 귀엽긴 하다. 할아버지가 된, 평소 표현의 정도가 0과 1 수준에서만 넘나들던 아빠도 조카가 있는 방에 하루에 수십 번을 드나든다. 터키로 돌아간 형부는 틈틈이 영상통화를 걸어 언니의 안위를 묻고, 허공에서나마 조카를 만져본다. 직구도 아닌 강속구로 하고 싶은 말을 잘 던지던 형부는 이제 회사에 싫은 소리도 못하겠다며, 할 말도 참아가면서 열심히 돈 벌어야지라며 넌덕스럽게 굴었다. 이 작은 아이가 집안의 풍경을 말갛게 바꾸어 놓은 것이다.

서울에 다시 올라가기 전날 밤

"엄마, 고마워"

의도할 새 없이 폐의 기류로부터 전해져 목구멍까지 불쑥 튀어나오는 말엔 종종 진심이 있기 마련. 평소엔 그 감사함을 몰라 삐죽삐죽 잘 터져 나오지 않던 말이, 단 며칠간의 짧은 육아를 경험하며 절로 새어 나왔다. 혼자 잘 커왔다고 착각해왔는데,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정작 아무것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지 않았는가. 비록 곁에서 체험한 짧은 경험이었지만, 이런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엄마’라는 단어가 평소보다 묵직하게 느껴진다. 이제야 엄마에 대한 이해가 한 줌 더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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