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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똥 Dec 11. 2021

이다음 봄에 우리는*

*유희경 시집을 읽으며

친구가 건네 준 아침달 시집, 벌써 다섯 권째다. 여자 이름을 가진 남자, 첫 장부터 '겨울 정오 무렵'이라니.

왜냐하면, 12월의 어느 정오 무렵, 우리는 만나기로 했고, 오늘이 그날이고, 소소 담담 수다로 마테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기 때문.


'그 겨울은 누구의 장례였나'. 1부의 제목부터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이 사람은 도대체 몇 살일까. 나처럼 암에라도 걸려 봤나. 삶이 좀 힘들었나. 어떤 굴레에서 이 시어들을 건져 올렸을까. 아침달은 표지를 왜 이렇게 잘 만든 거지? 표지를 메운 스웨터의 뜨개질 눈꽃 결정들이 금방이라도 머리 위에 흩날릴 것만 같은 오늘의 날씨.


좀 오래 수다를 떨고 각자가 준비해 온 시들을 낭송하고 저녁별을 보러 가기 전, 곧장 집으로 와 책을 펼쳤다. 허기진 나의 겨울을 채울 시어들을 만났으므로.  시들을 꼭꼭 삼켜 오늘 밤, 천문대 별을 보며 하나씩 뱉어내야지. 몇은 빛나는 별 옆에 걸고, 몇은 친구들과 나누고, 몇은 내 가슴에 심어 오래 빛나게 해야지.


블라인드를 내리고 거실과 주방의 모든 등을 끄고, 눈사람 오르골의 전원을 켰다. 엉덩이에 전기방석을 깔고 리클라이너 레드 소파를 한껏 젖히고 한 편씩 시를 잘라먹는 오후. 낮잠은 저만치 건너가고 바깥은 조금씩 어둑어둑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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