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죽는다는 건 무척 슬픈 일이다. 내가 만약 죽는다면 산들바람 불어오는 봄이거나 결실의 때인 가을이면 좋겠다. 예전엔 죽음에 대해 먼 나라 이야기처럼 가벼이 여겼다. 암 판정을 받고부터 늘 곁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죽음의 여러 얼굴을 목격한다.
석 달 만에 병가에 종지부를 찍은 것도 우울과 무기력이 깊어가고 있어서였다. 차라리 일을 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 약간의 피곤함이 우울한 휴식보다 낫다는 생각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 연고로 나의 주말은 주로 공연이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휴식으로 짜인다. 오페라를 관람한다거나, 올레티브이로 영화를 본다거나, 숲을 느긋하게 산책한다거나,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거나, 종일 뒹굴거리며 잠을 잔다거나.
서울로 가는 중이라는 벗의 문자를 받은 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현관 앞에서였다. 한 달 전 예매해 두었던 <피가로의 결혼>을 보러 가던 중이었다. 몇 년 전부터 암과 투병 중이던 벗의 올케가 오늘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틀 전부터 바람이 유독 차가웠다. 또 한 생명을 데려가기 위해 서슬 퍼런 칼날을 세웠구나,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가슴 한쪽이 아팠다.
그녀의 죽음은 이제 수술한 지 6개월 된 내게 많은 의미로 다가온다. 건강을 회복하기를 얼마나 바랬던가. 올해 다시 재발했다는 소식과 기력이 부쩍 약해졌다는 얘기를 전해 들을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 체중이 급격히 줄어 예쁜 얼굴이 많이 상했다는 말도 안타까웠다. 모든 말이 나의 예정된 미래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더욱 힘들었다.
걱정은 걱정을 낳고,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한 삶은 자꾸 피폐해지기 마련이다. 슬픈 소식이 나를 집어삼키고 형체 없는 부정의 그림자가 자꾸 생각의 싹을 틔운다. 뜨거운 불 위의 팝콘처럼 부풀어 오르는 죽음의 시간을 잘라낼 도리가 없다. 동류의 슬픔을 나누고 싶었던 한 사람, 서로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우린 이미 한 배를 탄 동지였다.
서울에 눈이 왔다고, 아이가 사진을 보냈다. 그랬구나. 그녀가 가는 길을 하얀 꽃길로 만들고 싶어 바람이 매서웠구나. 꽃도 풀도 없는 추운 겨울, 음침한 세상을 건너가는 이를 위해 눈꽃을 저리 피우려고 서둘러 칼날을 세웠구나.
공연을 보러 가는 길에 그녀가 내내 떠올랐다. 눈물이 자꾸만 났다. 밝고 환한 오후의 볕은 시커먼 나뭇가지들 사이로 흘러내렸다. 초록의 잎과 붉은 열매가 사라진 그곳은 늘 앙상하다. 음침한 무채색이 나는 싫다. 다시 봄은 오겠지만, 당장 쓸모없어진 듯 보이는 겨울나무의 고독이 나는 견딜 수 없다. 죽음을 기다리는 고장 난 인생 같아서, 마치 내 모습 같아서.
달리는 동안에도 지독한 풍경은 계속된다. 제기랄, 온통 겨울이니 어쩔 도리가 있나. 그 와중에 창문에 비치는 햇살로 잠깐씩 눈이 부셨다. 언뜻 나뭇가지가 반짝이는 것도 같았다. 나무의 뼈들이 깊숙이 생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건지, 햇볕은 자꾸 그 가지에 위태롭게 걸려 줄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겨울과 겨울나무가 내게 보내는 긴밀한 언어였다고.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막 튀어나온 그들의 말은 그래서 눈부셨다고. 지금 바깥은, 나를 위로하려고 온 힘을 다해 다가오는 중이라고. 내 뼈들에게, 살들에게 반짝이는 햇살 한 조각 얹어주려고 저토록 맹렬히 빛나고 있는 중이라고.
ㅡ이제,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셨으니 부디 평온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