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조금씩 해가 길어진다. 4시에 들어선 숲은 아직 환해 걷기에 좋다. 막 지기 시작한 서편의 해는 세상을 보는 방향이 항상 비스듬하다. 그 사선으로 인해 강하지는 않으나 헐벗은 나무 사이를 비집고 멀리까지 나아간다. 그사이 바람은 또 엿가락처럼 늘어진 나무들의 그림자를 흔든다.
늘 걷던 길이 새롭게 다가오는 오후의 산책. 굽이굽이 오솔길이 숨은池 뒤의 길이었고, 가파른 언덕이 포도池를 지나는 지름길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1월. 수개월을 걸었으나 도통 이 길이 저 길 같고, 여기가 저기 같았던 숲. 울창한 어느 곳은 길이 끊어질까 봐 감히 들어서지도 못한 길.
텅 비어 버린 자리에 서니 알겠다. 미로 같은 숲의 산책로가 어디서 만나고 어떤 길과 잇닿아 있는지. 신기하다. 초록의 풀과 보라색 꽃, 유록색 잎과 붉은 열매가 사라진 황량한 숲에는 앙상한 가지와 길만 남았는데, 꼭꼭 숨어 있던 길들의 잇댄 지점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게 한눈에 보인다. 볼품없고 흉측하였던 나무들의 겨울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저 나무들처럼, 온전히 보여주려면 상대를 위해 남김없이 벗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숨김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서로에게 투명해져서 진정으로 다가가고 위로의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계절의 길을 여는 1월의 숲처럼.
아름답고 찬란했던 지난날이 눈부셨다면, 이제 숲의 클리나멘 속으로 조용히 걸음을 떼어 볼 만도 할 나이. 서산의 해는 점점 기울고 나도 나무처럼 쭉쭉 늘어나는. 아아, 이것은 기분 좋은 오후의 산책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