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池에 바람이 분다. 차지만 춥지 않은, 봄의 바람이다. 우리는 문득 멈춰 못둑에 올랐다. 햇살에 녹은 물이 음지의 얼음을 향해 쉴 새 없이 물결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심호흡을 한다. 칼을 숨긴 바람이 시원하게 나를 관통한다.
노래하던 겨울새도 이젠 사라졌다.그러나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면 다시 찾아올 것을 알기에 슬프지 않다. 지나치기엔 아쉬운 정오의 햇빛, 바람도 쉬어가는 양지의 못둑에 나란히 앉았다. 눈높이에 빈 둥지 하나가 있다. 신록이 무성한 시절에 지었을 법한 새의 집. 그때는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은신처가 헐벗은 2월 앞엔 적나라하게 드러나 꼼짝없는 모양새다. 그럼에도 훼손되지 않은 둥지가 내심 반갑고 이 길을 그냥 지나갔을 무수한 사람이 마냥 고맙다.
걷다 보니 산등성이의 유채가 초록 순을 내밀고 있다. 다행히 해가 길어지고 있으니 힘을 써 날마다 잎을 키우고 꽃을 피울 것이다. 마침내 유록의 봄이 가득해지면 둥지를 떠난 새들이 어느 가지 위에서 노래 부르고 나는 그 노래를 들으며 또 포도池를 총총 건너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