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질문했다. 올 한 해 가장 기억에 남는 책 세 권이 무엇이냐고. 꽤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제목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게 그렇다. 순식간에 잊어버리고, 조금 더 지나면 소멸되고, 파도가 지나간 모래밭 그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덕분에 다시 반추해 본다. 아직은 기억의 저장고 구석에 남아 있는 책이 있다. 내 삶의 반열에 유독 영향력 있었던 구절을 찾아 펼친다. 널 붙들고 오래 서 있으리라 다짐했던 문장들이 페이지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제야 지난 다짐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시동 꺼진 내 몸에 충전 중이라는 빨간 불이 다시 깜빡인다.
누군가에게 영향력은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내겐 친구의 문자가 그러하다. 읽으며 새겨 두었던 구절에 머물고 싶으나 삶의 쳇바퀴에 치여 저만치 밀려나 버린 것들을 다시 껴안을 시간, 일종의 매듭 같은 것.
오늘 남은 시간은, 읽고 있던 책을 잠시 접고 이 세 권과 함께 보내야겠다. 새해를 맞는 내일까지, 추억과 다짐의 시간들로 bye와 hello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