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저자:요나스 요나슨/옮긴이:임호경/출판사:열린책들
영화:2014년/감독:펠릭스 헤른그렌/출연:로베르트 구스타프손, 이바르 비크란더 외
‘100년을 살아 보니’라는 글이 몇 년 전 신문에 실렸다. 김형석 교수의 글이었다. 책에서 그는 절대 행복할 수 없는 두 부류에 관해 이야기한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아직도 갈 길이 먼, 그러나 턱없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요양원에서 100번째 생일을 맞은 알란, 그는 문득 창문을 넘어 요양원을 나간다. 슬리퍼를 신고 도착한 정류장에서 범죄 조직의 청년을 만나고 그 청년이 맡긴 여행용 가방을 들고 홀연히 버스를 탄다. 가방에는 범죄 자금이 가득하다. 알란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다지 놀라지도, 가방을 감추지도 않는다. 그저, 단지, 그렇게 새로운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천천히 하루를 즐길 뿐이다.
돈을 찾으러 달려온 버릇없는 청년을 냉동고에 가둔 줄리어스, 서커스에서 학대받는 코끼리를 데려와 가족처럼 키우는 구닐라, 학구파 베니, 머리를 다쳐 어처구니없게도 착한 사람이 되어 버린 갱단의 두목, 그들을 잡으러 오는 한 박자 느린 형사.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과 사건들이 책갈피마다 가득하다.
100세 이하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좌충우돌의 삶을 넉넉히 바라보는 사람, 그가 바로 100세의 알란 되시겠다. 이미 10대에 폭탄 제조의 달인이었으며, 20대에는 폭탄 실험 실수로 정신병원에 수감되기도 했고,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파시스트 프랑코의 목숨을 구한 영웅이었던 30대, 미국 원자폭탄의 치명적 결함을 우연히 해결하고 대통령의 정치 멘토가 되었던 40대, 미국과 러시아의 이중 스파이로 눈부시게 활약하던 50대까지. 물론 픽션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만, 파란만장한 알란의 삶을 낱낱이 알고 나면 삶은 마음 먹은 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뿐인가. 100세가 된 알란의 느린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내 이웃의 누군가가 떠오른다. 길고양이에게 따뜻한 집과 먹이를 제공하는 구닐라, 아르바이트를 하며 10년째 공부만 하는 착한 베니, 욕심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줄리어스도 분명 우리 집 담 너머에 있으니 말이다.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만난 이들의 사는 법과 매우 닮았다. 여행길에서 들려주는 알란의 이야기가 백 배나 더 재미있는 것도 그의 삶이 때때로 하찮게 여겨지는 우리들의 삶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려라.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나게 마련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부터 찾아라. 쓸데없이 후회만 하고 있으면 수명만 줄 뿐이다. "
100년의 삶을 이야기하는 알란의 문장이 참 솔직하다. 잘났든 못났든, 성공했든 실패했든, 멸시를 받았든 칭찬을 받았든, 적어도 이기적이지 않았으면 됐다. 인간으로서 도리와 예의를 갖추며 살고 있다면 우리들의 삶에 밑줄을 긋고 별 다섯 개를 그려 넣어도 되겠다.
알란은 속이고, 감추고, 위조하는 세상의 기억을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심장에 금이 간 사람처럼 살지 말라고 감히 말한다. 100년을 살았으니, 그래도 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