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셉 고든 래빗, 마리옹 꼬띠아르
삼차 백신을 맞고 영화 삼매경. 쿠팡 플레이에서 <인셉션>을 본다. 재연이가 추천한 영화, 5분쯤 봤을까? 코브와 그의 아내 맬이 등장한다. 그제야 예전에 본 영화라는 것을 알았다. 꿈속의 꿈, 거울 속의 거울, 슈피겔 임 슈피겔, 패르트의 음악이 떠오르는 영화.
한국 영화 <완벽한 타인>을 보면 동전을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인셉션의 토템을 상징하는 패러디다. 코브는 말한다. 꿈속에서 토템을 돌리면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고. 누군가의 꿈속을 지배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머릿속의 정보를 훔치는 일에서 새로운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인셉션 작전을 수행하게 되는 코브. 임무를 완성하고 코브는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그러나 그의 토템은 계속해서 돌고 있다. 늙어 버린 일본인 사업가 사이토였을까. 코브의 머리에 인셉션을 해버린 사람.
너무 똑똑한 사람은 바보 아니면 천재라고 한다. 한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어려움에 빠뜨리는지 인셉션은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내게 이 영화는 어리석은 남자의 광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무시한 우리의 과거와 미래는 절대 있을 수 없다. 너무 똑똑해서 바보 멍청이가 되어버린 인셉션의 주인공들을 볼 때마다 지극히 평범한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현재를 즐기며 사는 내 삶이 그 누구보다 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영화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서 살면 삶은 충분히 행복하다. 더 행복하기 위해 더 잘 살기 위해 현실을 희생하며 애쓰는 것은 현재의 삶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과거에 매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삶도 마찬가지다. 인셉션은 그 모든 것들을 2시간 동안 꼼꼼하고 촘촘하게 보여준다. 아마 많은 사람이 "어이구, 저 ㅇㅇ 같은 놈"이라는 말을 하면서 인셉션을 보지 않았을까? 얼마나 답답했으면 영화를 보는 내내 혀를 끌끌 차며 수시로 일시 정지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할까.
꿈속의 꿈속의 꿈. 가짜의 가짜의 가짜. 너머의 너머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엔 크리스토퍼 놀란의 덫에 꼼짝없이 걸려든 당신의 상상력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역시 예술은 광기를 장착한 사람들의 영역이라는 것을 한번 더 깨닫게 된다. 인셉션을 만든 놀란 감독을 보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나만의 결론이다. 이런 영화는 기분 좋은 날에는 보고 싶지 않다. 은근히 심기를 건드린다.
림보에 갇힌 늙은 사이토. 그의 림보에 함께 낚인 코브, 결국 그는 기억의 감옥을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과 꿈속을 동일시하고 만다. 그는 꿈속에서 만난 아이들과 행복했을까. 넘어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토템을 무시하고 꿈속을 걸어가는 코브를 보자니 헛웃음이 난다. 나쁜 놈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동반자살을 꿈꾸는 맬, 현실과 꿈을 구분 못할 지경에 이른 아내를 설득하기엔 너무 치밀한 그녀. 이쯤에서 짜증이 배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
처음과 끝, 코브는 림보에 빠져 무의식의 해변에 닿아 버렸다. 그곳은 현실을 잊어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코브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는 시점이다. 결국 영화 전편에 걸친 그들의 활약은 사이토의 욕망과 아이들에게 돌아가기 위한 코브의 희망이 림보에서 해결된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고 만다. 현실의 욕망은 결국 타인의 기억을 조종하려는 자는 되려 조종당하고 말리라는 정당한 삶의 기본 수칙을 한번 더 일깨워주는 듯하다.
꿈속의 꿈속에서 총에 맞아 죽은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실의 나는 꿈꾸고 있고, 꿈속의 나는 잠자고 있고, 꿈속의 꿈속의 나는 움직이고 있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싶지만, 현실의 꿈꾸는 내가 진짜다. 그래서 불쌍한 코드. 기억의 감옥에 죽은 아내를 가두고 사는 현실의 남자,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맬은 말한다. 당신이 내 마음을 오염시켰다고. 꿈속에서 살고 싶은 맬과 꿈에서 깨어나 현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은 코드. 이것은 마치 현실 부부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상이 맞지 않아 매일 다투고 싸우는 부부의 세계와 다를 바 없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해석일까.
우리의 현실에서도 인생의 킥은 있다. 그 킥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가던 길을 돌아 바르게 서는 법을 배운다. 인셉션처럼 코드와 맬이 사랑의 동상이몽으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누구는 이혼하고 누구는 견디며 살고 누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별을 고한다. 누군가에게 생각을 심어 준다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꿈속 같은 현실을 살아내는 많은 관계가 생각의 씨앗 때문에 미워하고 싸우고 분노한다. 부모와 자식, 부부, 이웃, 기업, 나라의 경우까지.
그리고 번외의 나눔 하나. 훤칠한 남정네들 사이에서 아담한 키를 드러내며 꿈을 설계하는 아리아드네는 내가 아는 김홍임 선배를 닮았다. 귀엽다. 볼수록 매력 넘친다. 이젠 그가 되어 버린 그녀.
세 번째 본 영화의 마지막에 든 생각은 정신 병자와 약물 중독의 인간들에게 예술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혀 대단히 성공해 버렸다는 것. 지극히 평범한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세계를 여기까지 이해하련다. 무의식의 밑바닥 림보에 빠진 사이토와 코브의 명복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