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가르 케레트 에세이, 이나경 옮김, 이봄 출판
이스라엘의 에세이는 겨우 이 정도? 차라리 나희덕. 나의 생각은 그러한데 그의 프로필은 엄청 화려하다. 그의 단편집은 카프카에 비견될 만하고 영화로 제작된 것만도 40여 편이라니. 책 표지도 노랑노랑 하니 봄스럽고 블랙캣은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최근 감동한 나희덕의 에세이처럼 언어의 연금술을 기대해서일까. 처음부터 내겐 너무 시시한 문장들. 어쨌든, 계속 읽기로 한다. 3월의 도서이므로. 때로 재미와 감동을 넘어서는 책임과 의무가 있으므로.
추천인의 이유를 들었다. 전쟁의 위기임에도 유머러스한 작가의 에세이가 좋았다고. 그러고 보니 추천인과 케레트의 생활 언어 표현이 닮았다. 힘들어도 유쾌한 웃음으로 슬픔을 희석해 버리는 삶의 태도. 내면의 힘줄이 단단한 인생 고수 앞에서 난 어쩔 수 없는 하수. 그래서 그녀의 코드로 나의 사고를 초기화하고 다시 책을 읽는다.
98쪽 미사일 발사
넷째 해, <미사일 발사>를 읽는 중이었다. 아들 레브와 친구 우지, 아내와 작가와의 일상을 뒤흔든 이란의 지도자 아마디네자드의 한 마디. 이란을 소멸시키더라도 지구 상에서 이스라엘을 제거해버리겠다는 그의 집념에 두려워 떨며 일상의 모든 것을 손 놓아버린 그들. 누수 천장 수리도, 설거지도, 정원 관리도 하지 않고 은행 대출을 잔뜩 받아 흥청망청 살겠다며 절망의 시대를 관통하는 그들. 실시간 압박하는 전쟁의 두려움을 이기기 위한 그들의 삶의 방식이 그제야 조금씩 보였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영화도 행간에서 자주 떠올랐다.
105쪽 저 아저씨가 뭐라고 했어요?
택시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레브의 샌들이 재떨이를 떨어뜨렸고 기사는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는 기사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른들은 늘 이 모양이다. 무조건 소리부터 지른다. 사랑스러운 레브, 네 살배기 아이는 심판관이 되어 아빠가 기사에게 사과하게 만들고, 기사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게 한다. 이 스토리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천사 같았던, 지금은 다 자란 우리들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아이도 저랬던 시절, 다시 돌아가고 싶은 네 살 아이들의 엄마가 된다면. 이제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 해지는. 그러나 지난 시절은 돌아올 수 없고 나는 늙고 그들은 이미 어른이 되었다.
135쪽 뚱뚱한 고양이들
깜찍한 레브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 우스워지는 대목이다. 아이들 마음에는 선한 악마가 존재한다. 어린이는 단 것을 먹으면 안 되는 유치원에서 초콜릿을 다섯 개씩 먹는 레브의 뻔뻔하고 당당한 이유를 보라. 레브는 의아해하는 부모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야옹, 야옹"
읽은 쪽이 읽을 것보다 두꺼워지면서 내 마음도 작가에 대한 이해로 도타워졌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정점에서 생사고락을 가족처럼 껴안고 살아가는 작가의 글을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내 몸과 마음을 온전히 이스라엘의 어느 땅에 내려놓고 다시 작가의 글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추천인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가볍게 읽고 던져 버렸을 책이었다. 쉬운 문장들 속에 박힌 상처를 보는 눈이 내겐 없었다. 그 상처들이 만든 문장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유머는 항상 약자의 무기라는 그의 말이 오래 가슴에 남는다. 분노보다 유머, 야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