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읽었다. <단순한 열정>의 작가 아니 에르노. 포르노가 아닌 에르노라는 언어 놀음에 그녀의 이름이 뇌리에 각인된다. 그녀는 이 책을 91년에 발표했다. 나의 91년은 대학 신입생이었고, 띵띵 땅땅 피아노 연습에 바빴고, 과제물 제출에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으며, 그 와중에 시골집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그때 아니 에르노는 벌써 51세였고, 14살 연하의 남자와 불륜의 사랑을 이미 했고, 2년 동안의 사랑을 끝내고 33세 연하의 남자와 다시 사랑의 줄다리기를 했다. 무려 시간은 흘러 그녀가 열렬한 사랑의 행보를 출간한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다. 그녀를 알려면 이 책만으로는 어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본문 59쪽에도 나오지만,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다. 우리는 그것만 보고 마치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판단하고 재단하고 평가해 버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용감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스토리에 매우 솔직하다. 아마 돌싱이 된 그녀의 사생활이 삶에 더욱 자유를 부여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혼녀가 에르노처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가끔 설렘으로 심장이 바운스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이성의 도끼로 감성의 나무를 과감히 찍어버린다. 몇 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것을 얼마나 다행으로 생각하는지, 나는 절대 에르노처럼 사랑할 수 없는 부류라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았다.
얼마 전, 송년회 모임이었다. 그날따라 과하게 술잔이 오갔다. 멀쩡한 나는 취한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시간, 그들의 은밀한 애정 행각이 드러났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꼭 잡은 두 손을 놓지 않았다. 헤어질 시간이 되자 아쉬운 눈빛이 둘 사이에 오래 오갔다. 감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고 한다. 누가 봐도 그들은 연인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알리바이와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 송년회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그들은 어떻게 될까? 에르노처럼 은밀한 사랑의 흔적을 들키지 않고 끝낼 수 있을 것인가.
사랑에 관해 과감한 그녀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한다. 나의 국적이 프랑스였다면 나는 그녀를 더 깊이 읽을 수 있었을까? 몇 권의 책을 더 섭렵하고 나면 그녀를 다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2년 동안의 사랑을 단순한 열정이라 칭하여 그 기억을 기록하고, 이후 그녀는 또 33세의 연하와 사랑에 빠진다. 이번에는 그가 에르노와의 사랑을 다룬 <포옹>을 낸다. 아이러니하다. 사랑의 불시착이다. 현재 83세를 사는 그녀는 자기의 지난 시간을 무엇이라고 말할까?
그녀의 사랑보다 나는 나의 사랑이 더 좋다. 지지고 볶고 투덜대면서 살지만, 흰머리 희끗희끗한 내 남자, 담배 냄새와 커피믹스의 냄새가 구토를 불러일으킬 만큼 역겹지만, 25년을 한결같이 가족을 위해 일하는 내 남자가 있어 좋다. 세상의 모든 남자보다 내 남자 한 명이 내겐 유일한 사랑이다. 나는 그 남자와의 사랑을 격렬하게 적고 싶다. 사랑은 불시착이 아니어도 뜨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