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3
2 우주 생명의 푸가
토마스 헉슬리는 철저한 다윈 지지자 중 한 명이다. 그는 로마 시대의 교부철학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토대로 한 스콜라 철학을 거부한다. 그의 손자 올더스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도 아마 할아버지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 특히 과학자 중에는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양분되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다시 읽으며 내가 정확하게 어떤 부류인지 확인할 수 있었기에 다시 읽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67쪽 생물학을 음악에 비유해 볼 때, 지구 생물학은 단성부, 단일 주제 형식의 음악만을 우리에게 들려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천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의 생명은 우리에게 어떤 형식의 음악을 들려줄 준비를 해 놓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지구 생명의 이 외로운 음악 하나가 우리가 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일까? 우주 생물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리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나는 칼 세이건과 토마스 헉슬리, 멀러 등의 학자들이 내세우는 <우주 생명의 푸가>를 읽으며 상상하며 이미 이 땅에 충만한 풀피리 소리의 아름다움과 광대함을 노래하고 싶다.
70쪽의 인위 도태 혹은 인위 선택을 설명하기 위한 일본 내해에 서식하는 헤이케게의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76쪽 아주 단순한 단세포 생물마저 가장 정교한 회중시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뿐만 아니라 회중시계는 자기 조립이 불가능하다. 회중시계는 진자로 작동하는 벽시계에서 전자시계로 서서히 여러 단계를 거쳐 저절로 진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시계가 있으면 그 시계를 만든 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온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우는 생명 현상의 다양성 그리고 그 생명 현상들 배후에 숨겨진 복잡 미묘함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깊은 외경이 감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 도킨슨의 <눈먼 시계공>이 생각났다. 진화론자들의 반격의 수식어는 놀랍다.
참나무와 나는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졌다고? 글쎄다. 거슬러 올라가는 인간의 상상이 재미있다. 세포의 핵 속이 국수 공장의 폭발 현장과 유사하다는 설명은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떠올리게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유럽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적혈구 모양이었다. 유럽인은 둥글고 아프리카인은 낫 모양의 적혈구를 갖고 있다. 낫 모양의 적혈구는 둥근 적혈구보다 산소를 덜 운반하여 빈혈을 일으키지만 말라리아에 강한 저항력을 제공한다. 인간 세포 하나에 뉴클레오티드의 총수는 대략 100억 개가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이렇게 큰 차이를 낳는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식물과 동물의 조상은 같다고 말하지만, 생명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과 핵산을 구성하는 뉴클레오티드 이상의 그 무엇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부분을 신의 섭리로 해석했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들었던 토카타와 푸가가 떠오른다. 점심시간에 방송실에서 교실마다 틀어주었던 그 음악은 매우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정신없었고 불편했다. 칼 세이건의 푸가는 내가 고교 시절에 들은 푸가와 다르겠지만, 나는 지금 청보리가 자라는 숲에서 불렀던 풀피리 노래가 매우 그립다. 그리고 옥천 높은댕이집에서 들었던 조만희 선생님의 구성진 풀피리 소리도 몹시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