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생인 그녀, 킴 투이의 자전적 소설이다. 격동의 베트남을 뚫고 보트피플 세대로 20세기를 살아낸 그녀의 이야기가 이렇게 잔잔할 수 있다니. 감탄사 하나 없는 그녀의 스토리는 그래서 더 읽는 이의 마음을 격동시킨다. 잔잔한 그녀의 문장들 사이로 가시처럼 돋아난 시대의 아픔들이 독자의 마음을 콕콕 찌르기 때문이다. 잘 견뎌낸 자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하기엔 이 소설은 너무 빛난다.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녀이기에 가능한 문장들이다. 감히 일말의 경험치도 없는 나조차 그녀의 수려한 문장에 핑크빛 질투가 인다.
무거운 침묵이 배경음악으로 흐르고, 울림이 있는 목소리의 성우가 내레이션을 하는 듯한. 그녀의 한 마디에 내 마음이 울렁거리고, 상상이 하늘을 난다. 그녀의 슬픔에서 나는 울고, 그녀의 사랑에서 나는 웃는다. 그녀의 향수에서 나는 코를 벌름거리고 그녀의 그림자에서 나는 동지애를 느낀다. 그녀는 베트남을 짊어진 여인들의 삶을 자주 이야기한다. 남편들과 아들들이 등에 진 무기보다 더욱 강렬한 그녀들의 삶은 킴 투이었기에 서술이 가능했을 것이다. 무심한 듯 섬세하게 읽히는 여인들의 삶에 나의 삶 한 조각을 끼워 넣어도 완성될 수 있을 것 같은 퍼즐. 찬란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날 수 있을 것 같은 퍼즐 한 판을 읽는 독자마다 완성해 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았던 그녀의 자전적 소설은 독자의 삶까지 끌어들여 함께 살아내자는 메시지를 그녀의 방식으로 전해주고 있다.
보트피플과 보석. 베트남을 떠나는 그들은 필사적으로 보석을 몸에 지닌다. 틀니와 치아에 금을 덧씌우고 아크릴 팔찌 안에 다이아몬드를 숨긴다. 생리대 안과 항문에 달러를 숨긴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그들의 항해 일지를 읽는데 탈북민들이 떠올랐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쪽배에 몸을 싣는 그들에게는 캐리어도 짐이 되었을 것이다. 최대한 부피를 줄여 몸에 지니는 것이 최선이었다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후 캐나다에 정착한 작가는 변호사이기도 했고, 식당을 운영한 요리 연구가이기도 했다. 어쨌든 잘 견디고 잘 살아 주어서 고맙다. 그러나 그녀의 험난한 성공 뒤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바투바투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베트남에서의 부유한 생활로 인한 그녀의 높은 자존감도 이야기하고 싶다. 그녀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깊은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두 가지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는다.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온 그녀의 삶은 보트피플이 아닌 사람에게도 희망을 준다. 나름의 고통과 슬픔이 내재한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견딜 힘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삶의 꾸밈없는 서술만으로도 위로를 준다. 오래전,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나 마르얀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를 읽고 내가 불끈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처럼 <루>도 내게는 50대의 한 아픔을 견뎌내게 한다. 누군가에게 시대와 국경을 넘어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사람은 타인의 삶을 훔쳐본 공감의 힘으로 자주 위로를 받는다.
<루>를 읽었다면, 견디지 못할 일이 무엇일까. 그녀가 풀어낸 역사의 실타래는 베트남을 떠나 온 디아스포라만 위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별들의 고향을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우리 모두를 향한 든든한 채찍질이다.
자, 이제 함께 걸어가자. 21세기의 보트 피플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