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공대생답다. 학과 언어를 소설로 재탄생시킨 그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낸다. 단숨에 읽히는 짧은 스토리지만, 읽는 이의 느낌 언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진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백인백색의 상상을 자극하는 If 문법의 구절에서 독자는 저마다의 자질로 다양한 문장과 문장부호를 덧붙일 수 있겠다. '당신의 상상의 세계의 능력을 연결하여 문장을 완성하시오'와 같은 문제 말이다. 정답은 없으나 모든 답이 정답이 되는 각자의 희망사항들. 어쩌면 이것조차도 이미 그녀가 쳐 놓은 그물이었는지도모르겠다.
노인과 남자의 대화. 흥미롭다. 짠하다. 안타깝다. 살짝 슬프다.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기 위한 티켓을 오랫동안 품에 간직한 채 정거장에서 100년 이상 살고 있는 안나. 자기가 개발한 냉동 수면으로 생명을 연장하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 그런 그녀가 머문 정거장을 폐쇄하기 위해 찾아온 남자.
궤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성을 이동하는 세상을, KTX를 타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일상처럼 기록하는 작가의 태연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녀의 우주적 문장들에 잠시 엄지를 추켜올린다. 워프 항법, 딥프리징, 워프 버블, 안티프리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과학 연구를 앞서는 웜홀의 통로 발견은 그녀의 연구가 끝나기 전에 이미 상용화되었다. 수년이 걸리는 행성의 이동에 냉동 수면의 안티프리저를 연구하던 그녀에게는 저비용과 순간 이동의 웜홀 발견이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슬렌포니아 행성계로 가는 웜홀 통로는 없었고 비용이 많이 드는 워프 항법의 정거장은 철거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상태. 바로 남편과 아들 내외를 만나러 갈 수 있는 유일한 정거장이 폐쇄가 돼버린 것이다. 그녀가 개발한 완벽한 냉동 수면 기술인 딥프리징으로 백 년 동안 동결과 해동을 거듭하면서 지켜 온 정거장은 그녀의 과거이며 현재였고 미래였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사는 남자는 그 명령을 수행하려고 안나가 머문 정거장으로 왔다. 다행히 그는 임무 수행을 잠시 미루고 그녀의 스토리에 빠져든다. 인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감정, 공감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그는 점점 그녀를 알게 된다. 그녀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만 주어도 문제는 해결된다는 것. 상담은 들어주는 것에서 이미 내적 카타르시스가 일어난다. 그에게 중얼거린 후 그녀는, 비로소 그 지점에 가 닿았다.
나는 특히 소설의 결말 부분이 마음에 든다. 그녀는 남자가 한 눈 판 사이 정거장을 떠난다. 그녀의 이동은 가족들이 있는 슬렌포니아 행성계를 향한 것이 아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그녀의 선택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그가 임무를 완성할 수 있도록 정거장을 떠나 주는 것이다. 가끔 문장들이 말해 주지 않는 몇 개의 그림자가 있다. 복선처럼 깔린 그 문장들의 이면을 읽는 것이 김초엽의 소설을 새롭게 해석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나의 If는 새로운 시대를 거스르지 않고 그들의 생각을 존중해 주는 것. 그의 삶을 지지하는 것. 나의 삶의 방식을 양보하고 그의 삶이 순탄하도록 응원해 주는 것. 그도 살고 나도 사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의 후퇴가 부끄럽지 않게 당당히 물러나는 것이다. 그녀처럼.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하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