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천명관, 문학동네

by 글똥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나는 이외수를 떠올렸다. 그가 생각났다는 것은 고래가 매우 날 것처럼 내게 다가왔다는 뜻이다. 20대의 내가 홀릭하여 읽었던 이외수의 <들개>. 내용은 구체적이지 않으나 날 것의 나이에 읽었던 날 것의 소설은 매우 충격적이고 매력적이어서 들개 이후 그의 책을 손에 쥐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사람의 잊고 있었던 과거를 어제 일처럼 떠올리게 했던 소설이라 더욱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책. <고래>라니, 제목에서부터 왠지 낯설지 않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듯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서핑 맛이 제대로다. 넘어도 넘어도 지루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문장의 마력, 파고의 높이 또한 시시각각 다르게 몰려온다. 날 것의 사랑을 덮으며 자라나는 개망초와 여뀌, 엉겅퀴와 쇠비름, 뻥대쑥과 싸리꽃 그리고 밤꽃까지. 내게 자연의 모든 것은 치유이며 회복이기에, 소설 속의 그들도 그렇게 읽혔다. 군더더기 없는 날 것의 문장은 자연의 묘사 앞에 더욱 아름다움을 발한다. 그의 문장이 이것을 증명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슈르르까와 제제를 기억한다. 춘희와 점보 코끼리의 이야기는 19금의 소설 속에 작가가 숨겨 놓은 '액자 동화'다. 순수의 파도다. 둘의 대화의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읽는 내내 나는 눈물이 다 났다. 물론 제제를 읽을 때만큼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천명관은 왜 여기에 춘희와 점보의 동화를 보란 듯이 돋을새김 해 놓았을까. 이 책이 부커 후보에 올랐고 곧 수상 발표가 나겠지만, 만약 뽑힌다면 그 8할이 이 액자 동화의 공이 아닐까 싶다.


고래극장에서의 화재로 금복은 죽는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그녀의 딸이었던 춘희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경찰서에 잡혀 왔고 어쩔 수 없이 살인자가 된 그녀는 서명란에 개망초를 그려 넣는다. 흉측한 살인범이 어떻게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있냐고 말하는 동료에게 살인범들이 심성은 더 고운 법이라고 말하는 경찰. 또 다른 고래 이야기 <모비딕>에도 춘희스러운 남자가 있다. 바로 의리의 인디언 퀴퀘그이다. 그가 서명란에 그린 깜찍한 고래 한 마리가 그의 전 생애를 말해 주듯이 개망초꽃 한송이는 춘희를 대변한다. 끔찍한 살인과 적나라한 정사가 난무한 이 책이 어른이동화로 손색없는 이유도 알고 보면 모두 춘희 덕분이다. 말도 못 하고, 말귀도 못 알아듣고, 연필 쥐는 법도 모르고, 먹기만 해서 몸무게가 1톤이나 나가는 그 춘희 말이다. 그러나 코끼리 점보와 대화도 가능한 그 춘희, 유일하게 벌들에게 쏘이지도 않는 그 춘희이기도 하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터키 소설이 있다. 번역가 이난아는 작가의 허락을 받고 이가 왕창 빠져 피 묻은 장면을 원서에 표기된 '옥수수알'이 아니라 '석류알'로 고쳤다. 마잔가지다. <고래> 신선한 충격과 더불어 나는 김민정 번역가의 힘 또한 믿는다. 그리고 부커상 소식을 당연히 기다린다. 아직 이 책의 나머지 서핑을 남겨 둔 오늘, 잠시 숨을 고르고 후반부에 만날 파도를 상상해 본다. 설령 부커상을 받지 못한다 해도 이미 그의 문장은 리드미컬한 파도타기였고 익사이팅의 전개였기에 한 주를 살아낸 내 지친 육신의 드링크제로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안다. 기대 이상이 될 것이란 것도.


한 생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귀하고 거대하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금복이, 춘희, 文, 국밥집 노파, 칼자국, 쌍둥이자매, 점보, 트럭 운전사, 그리고... <고래>의 마지막 등장인물이 되어 다시 이야기를 써 내려갈 나 그리고 그대도. 그 주인공이 될 오늘의 고래 한 마리, 소파에 누이고 작가의 남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럼 이만 나는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