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그렇게 부른다. 어떤 인디언들은...
여름을 겨우 보냈다. 심신이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어 가벼운 소설책 몇 권을 읽었다. 이렇게라도 나를 붙들면 일어설 근육 몇 개는 생기겠지. 다행히 소설 속 문장들이 장마와 무더위에 흩어져 흐물거리는 몸과 마음에 아교가 되었다. 비어 있는 적당한 자리를 찾아 9월을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10월을 넉넉히 살았다.
사람은 한 번의 아교로 단단해지지 않는다. 수시로 강력 접착제가 필요하다. 꽤 무난한 시간이 흘렀지만, 그 공간에는 실핏줄 같은 금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11월, 나는 속도위반으로 수십만 원의 벌금을 물었고, 8월 이후 책들을 다시 손에서 놓았으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숲으로 향했던 나의 일상은 어느새 까마득히 잊혔음을 깨달았다. 동굴에 갇혀 명랑하고 쾌활하고 삶에 적극적이었던 나를 지우고 있는 동안 가을비가 내리고, 또 가을눈이 내렸다. 차고 투명한 빗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린 창틀 아래를 한참 바라보는 일이 지겹지 않았다. 블랙과 화이트, 바람 따라 휘날리던 흑암의 눈발이 벅차도록 마음에 들었다.
순간의 시간들이 나를 깨우고 있었다. 그것은 심폐 소생술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호흡이 살아날 때까지 이어지지 않는. 찰나의 그들은 어느새 사라졌다. 나는 바람 빠진 사람풍선처럼 다시 다리가 꺾이고, 이어 허리와 가슴, 팔다리까지 주저앉았다.
11월 20일 월요일, 나는 침대에서 느릿느릿 일어나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갑자기 숲이 궁금해졌다. 빌 브라이슨은 '나를 부르는 숲'이라 하였다. 밖은 이미 쌀쌀하였고 사람들은 벌써 패딩을 꺼내 입었다. 늦가을이면서 이른 초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온도를 체감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빌딩숲은 찬바람을 막아내지 못하지만, 나무숲은 모든 찬 공기를 갈잎에 가두고 나의 가는 길을 지켜 준다는 것을.
모든 초록이 사라졌다. 늦가을은 무채색이다. 한 가지 색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가을숲. 그 속으로 몸을 들인다. 홀로 걷는 길이 아니다. 바스락거리는 잎들이 내내 벗 되어 함께 걷는다. 묵묵히 잠자던 내 안의 내가 깨어나 함께 걷는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들은 식물과 교감 신경을 나눈다. 자연의 위대한 힘을 그들은 안다. 모든 잎을 떨군 가지 사이로 흐르는 햇 살. 그 햇살을 먹으며 걸어가는 나의 그림자를 씩씩하게 만든다. 여기만 오면 공급받는 자연의 힘, 다시 내 삶의 심폐소생술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