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다. 여름을 지나 가을의 문턱을 넘어 처서와 백로의 절기를 저만치 앞두고 문득, 끊임없이 온다. 하늘로부터 땅까지 쏜살같이 내려온다. 눈 앞의 세상을 흐릿하게 덧칠해버리는 비는, 키가 크다. 덩치도 어마어마하다. 그런 연유로 우리는 힘센 그들을 장대비라 한다.
무릇 내가 이토록 즐거운 것도 비 덕분이다. 창을 열었더니 창틀 아래 빗방울이 대롱대롱, 거침없이 도착한 숲은 생기발랄, 시끌벅적하다. 풀들은 하루가 넘치도록 자라고 들꽃들은 쉴 새 없이 피고 진다.
질퍽거리는 산길을 걷다 보면 여름내 도토리거위벌레가 호작질 해놓은 초록 잎가지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질 않나, 별별 모양의 버섯들이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깜짝쇼를 펼치질 않나, 더위를 처분한 풀벌레들이 가을 온다고 귀뚤귀뚤 찌르르 뭉게구름 타고 온 산을 들쑤시질 않나, 우짖는 산새들의 소프라노에 ‘꾹꾸 국 구우 욱’ 바리톤 산비둘기의 노래는 정확하게 사 분의 사박자이질 않나. 교향곡인지 오페라인지 뮤지컬인지도 모를 공연의 기획자는 도대체 어디서 진두지휘하는 중이신가. 모퉁이 어느 지점에서 나는 감사의 말을 공중에 띄우며 다시 걷는다. 드넓은 자연은 말없이 그들의 공연에 최선을 다하고, 나는 여전히 그 즐거움을 공짜로 누리며 숲의 향연에 오롯이 젖고 또 젖을 뿐.
연분홍 뒤태가 고혹적인 여뀌 부인이 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발길을 붙들고, 올망졸망 핀 옹굿나물이 하얀 꽃잎들을 부챗살로 펼치며 거침없이 덤벼들고, 노란 도깨비바늘꽃 아래 슬며시 자리 잡고는 누군지 맞춰 보라며 쥐꼬리망초와 쥐깨풀이 번갈아 피어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금불초와 쑥부쟁이 흐드러진 숲길에 들어서면 세상 밖의 길을 잊어도 좋으니 여기가 무릇 내 무릉도원은 아닌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숲을 빠져나오면 나 알던 사람들 모두 죽고 300년이 족히 흘렀을 것 같은 어느 책 속의 그 무릉도원 같은.
찍어낸 듯, 재단한 듯, 오려낸 듯. 한 치의 어긋남 없는 모조품과 기성품 일색인 세상을 비웃는 듯. 같은 모양, 같은 색으로도 자유롭게 흔들리고 제멋대로 자라 무수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이들의 세상에 오면 나도 직선과 직각, 모서리를 버리고 어우렁더우렁 느리게 천천히 조금씩 둥글어진다. 아니, 그렇게 되고 싶어 가던 걸음 멈추게 된다. 그뿐인가. 제 명을 다하고 픽 쓰러져 누운 버섯, 흙탕길에 나뒹구는 무수한 잎들, 꽃 지고 열매 맺는 여름 나무, 초록의 대를 끝내 눕히고 길게 누운 무릇의 마지막은 갈 때를 알고 힘을 뺄 줄 아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래야 가을이 온다.
모자 위에 떨어지는 소리, 풀들 위에 내리는 조용한 소리, 우산 위에 후드득 시끄러운 소리, 그늘 짙은 숲에 내리는 장엄한 소리, 연못에 낙하하는 소리, 연잎에 또르르 구르는 소리. 누구를 만나든 무엇에 내리든 타자의 본질을 위해 비는 기꺼이 자신의 모습과 소리를 희생한다. 그런데도 무릇 그 모든 것은 빗소리다. 가볍지 않은 웅혼하기까지 한. 모자를 벗고 우산을 접고 비를 맞는다. 내게도 비가 내린다.
엘사와 안나를 앞세우고 기세등등 걸었다. 산모기 놈들, 이제 꼼짝 말라는 마음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는 언니 스티커, 다리에는 여동생 스티커를, 떨어지지 않게 꼭꼭 눌러 단단히 고정한다. 그녀들의 짙은 향기에 내가 어지럽다. 입 돌아간다는 처서 지난 모기들은 기피제라 이름한 그녀들을 아랑곳않고 팔과 다리에 사정없이 붙어 피를 쪽쪽 빨아댄다. 끊임없는 공격에 내 피부인 것도 잊고 철썩 소리 나도록 때려잡는다. 시커먼 몸뚱이가 납작해지고 손바닥엔 혈흔이 낭자하다.
숲의 끝자락에서 붉게, 누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우듬지를 보았다. 오래 내린 비는 땅속으로 스미어 뿌리의 세계에 닿아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보이는 것을 다 이해할 수도 없는데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여름과 가을 사이, 8월과 9월 사이도 그렇다.